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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월 21일 금요일의 과학

에이스 침대의 광고를 보며 발상의 전환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by 마부자

금주 52일째, 루틴을 마치고 책상에 앉아, 3일간 이어진 과학과 성장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유시민이 자신의 딸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었다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딸은 책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씩 나에게 책을 선물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떤 책을 추천해 주면 좋을까 고민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만약 언젠가 딸이 "아빠, 나한테 추천해 줄 책 있어?"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호프 자런의 <랩걸>을 건네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과학서가 아니었다. 삶과 성장, 열정과 집념,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


저자는 씨앗을 심고, 이파리가 돋고, 나무가 자라나는 과정을 통해 인생의 흐름을 풀어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깊은 애정과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담겨 있었다. 그 과정을 따라 읽으며, 단순한 지식을 넘어 한 인간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책을 덮었지만, 그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책의 객관적인 내용과 자세한 줄거리&서평은 브런치 매거진을 참고 바랍니다.)

마지막 장. 드디어 그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기대했던 대로, 호프 자런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조차 그녀 다운 필체로 담백하게 정리하고 지나간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짧은 문장 속에 핵심만을 담아낸 그녀의 표현. 하지만 그 간결함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의미가 전해졌다.



그녀에게 사랑이란 인간과 인간의 감정이 아니라, 생명과 생명의 감정.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로맨틱한 사랑이나 인간관계 속에서의 감정이 아니라, 나무와 흙, 공기와 빛, 그리고 과학과 자연이 서로 주고받는 교감.


그녀는 아마도 사랑이란 생명이 존재하는 모든 순간 속에 깃들어 있으며, 그 연결 자체가 사랑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성장을 마친 생명은 결국 후손을 남기는 것이 숙명처럼 여겨진다.


이것이 진화의 기본 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랩걸>을 통해 다시 한번 그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후손을 퍼뜨리는 일에 소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과정은 여느 동물보다도 더 처절하고, 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씨앗, 곤충을 유혹해 꽃가루를 나누는 과정, 심지어 극한의 환경에서도 뿌리를 내리려는 생명력까지, 이 모든 것이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생명의 순환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주는 과정이었다.


처음 탄생한 지구가 온통 흙으로 뒤덮여 있었던 세상에 언제부터인가 식물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점차 온 세상을 초록으로 물들였다. 나무가 씨앗을 틔우고, 가지를 뻗고, 잎을 피우며 조금씩 성장해가듯, 호프 자런 또한 과학자로서 한 걸음씩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그녀 곁에서 평생을 함께하며 연구를 돕고, 응원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동료 ‘빌’의 이야기였다. 그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었다. 그녀가 힘든 고난과 역경을 견뎌낼 수 있도록 옆에서 묵묵히 버텨준 존재.


그들의 관계를 통해, 이 책은 삶의 길에서 반드시 자신을 믿어주고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약간의 스포일러를 하자면, 저자와 빌은 결국 결혼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그 어떤 파트너십보다 깊고 단단했다.)


혼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도, 사실은 수많은 뿌리와 보이지 않는 연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도 마찬가지 아닐까. 결국 우리는, 함께할 누군가가 있어야 더 단단해질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오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책을 손을 얹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생명과학의 신비, 고난과 시련 속에서의 삶, 동반자의 필요성, 역경을 이겨낸 끝에 찾아오는 성공, 미래를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의무감 등 이 모든 것들이 한 편의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과학이란 단순한 연구의 영역이 아니라, 삶과 닮아 있었다. 한 알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결국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


그것은 식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또한, ‘과학 책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나의 선입견을 깨고,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저자의 필체에 미소를 띠며 읽었던 순간들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과학이라는 것이 단순한 연구와 공식의 세계가 아니라, 삶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들었다.


오늘, 나는 한 권의 책을 통해 새로운 성장의 방향을 발견했고, 무심코 지나쳤던 나무들의 생존 방식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돌아오는 가을이면, 떨어지는 낙엽 한 장도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것 같다.


그저 바람에 흩날려 땅에 쌓이는 잎이 아니라, 나무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생존의 목표로 삼고 있는 이파리. 그 의미를 알게 되었기에, 바닥에 뒹구는 낙엽조차 더 소중한 존재로 보일 것 같다. 그 작은 깨달음 속에서, 내가 또 한 걸음 성장했다는 걸 느꼈다.


끝으로 책의 제목이 왜 <랩걸>인지는 책에 나오지 않았다. 결국 다양한 검색을 통해 <랩걸>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미리 알아도 전혀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혹시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이 나처럼 쓸데없이 랩걸의 의미를 찾느라 집중력이 저하되실지도 모를 다분한 오지랖에 간단히 적어본다.


"Lab"은 실험실(Laboratory)의 줄임말로,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Girl"은 저자인 호프 자런이 여성 과학자임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즉, "랩걸(Lab Girl)"은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여성 과학자를 상징하는 제목입니다. 아주 명쾌한 해석이고 정말 이 책은 제목에 아주 충실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신과 감성의 성장 이후 근육과 육체의 성장을 위해 오늘도 페달을 밟기 위해 준비를 마치고 운동을 시작했다. 직장을 다닐 때만 해도, 유튜브 영상을 외출하거나 출장 중에도 자주 시청했다. 데이터를 이용해 보곤 했기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프리미엄을 구독해 광고 없이 시청했었다.


그러나 퇴사 후, 독서를 중심으로 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영상 시청의 빈도도 줄어들었다. 물론 경제적 이유도 조금 있다. 이제는 운동할 때를 제외하면 거의 집에서만 유튜브를 보고, 그것도 와이파이를 이용하는 정도.


그렇다면 굳이 프리미엄을 유지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고민 끝에, 지난 1월부터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을 해제했다. 예전에는 필수처럼 느껴졌던 것이, 지금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삶의 방식이 바뀌면, 소비의 기준도 자연스럽게 변하는 법.


거의 1년을 광고 없이 영상을 보다가, 요즘은 수시로 등장하는 광고에 불편함을 느끼긴 한다. 하지만 한 달 13,000원이라는 금액을 떠올려 보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싶다.


1시간짜리 영상을 보며 네 번 정도의 광고를 클릭하는 것쯤은, 손가락 운동도 될 겸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의지를 만들어낸다. 예전에는 광고가 방해 요소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 몇 초를 기다리는 것도 나름의 연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자전거 페달을 밟는 동안에는 광고를 건너뛰기 위해 일부러 내려서 클릭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되면 운동의 흐름이 끊기고, 리듬이 깨진다.


결국, 광고가 끝날 때까지 그냥 보는 것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루틴처럼 자리 잡고 있다. 뭐, 보다 보니 오히려 잠시 숨을 고르는 휴식 시간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중, 며칠 전부터 계속 눈에 들어오는 광고 하나가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여성이면 모두가 좋아하는 그 남성.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나 역시 팬이 되었던 배우, 박보검.


그가 모델로 나온 “에이스침대” 광고였다.

광고가 나올 때마다, 나는 건너뛰지 않고 자연스럽게 화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 글을 쓰기에 앞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다.

나는 에이스침대로부터 어떤 후원도 받지 않았으며, 그 회사에 아는 사람도 없다. 심지어 우리 집 침대도 에이스침대가 아니다. 나는 단지, 오늘 본 광고에 대한 내 생각을 적을 뿐이다.

에이스침대는 기성세대들에게는 당시 가정의 필수품이었다.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문구는 대한민국에서 너무도 유명했고, 침대 브랜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본 광고가 내 눈에 들어온 건 단순히 박보검이 등장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광고 속 실험과 그 내용이 나에게 너무도 공감되었기 때문이었다.


“침대 과학은 수면 시 에너지 소비를 줄여줄 수 있을까?”


광고는 이 질문을 던지며, 흥미로운 실험을 보여주었다. 잠을 자는 동안 몸을 좌우로 뒤척일 때, 조금이라도 더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침대의 스프링 구조가 설계되어 있다는 내용. 단순한 편안함이 아니라, ‘수면 중 에너지 소비’라는 개념을 접목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깨어 있는 시간 동안만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잘 때도 몸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광고는 바로 이 점을 짚어내며, 침대가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수면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걸 강조하고 있었다.


순간 영상을 보며, "정말,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들었다.

비염이 심한 나는 한쪽으로 누워 자면 반드시 그쪽 코가 막힌다. 그래서 밤새 여러 번 뒤척이며 잠을 자는 편이다. 그런데 반대쪽으로 돌아누울 때마다, 억지로 힘을 써야 하다 보니 몸에 긴장이 들어가며 잠을 깨곤 한다.


그렇다면, 만약 침대의 스프링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살짝 밀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 뒤척일 때 정말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불현듯, 광고 속 실험이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실제로 중요한 연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광고처럼 정말 자연스럽게 잠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밀어주는 기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침대가 단순한 편안함을 넘어, 수면의 효율성까지 고민하는 제품이 될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흥미로웠다.


중요한 것은, 이 광고가 단순한 제품 홍보를 넘어선다는 점이었다. 이 아이디어가 나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브레인스토밍을 거듭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 또는 주변의 친구의 경험담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는 이런 말을 흘려듣지 않고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발상의 전환의 시작이며, 혁신의 출발점이 아닐까?


나처럼 비염 또는 어떤 이유로 밤에 뒤척이며 잠 못 이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분명 그 의견에 공감하며 흥미를 느꼈을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 본다.


그러니 광고로 나왔겠지만…


늘 우리 곁에 존재하는 불편함을, 실생활 속에서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 만약에 내가 에이스침대의 임원이나 대표였다면, 난 이 아이디어를 낸 직원에게 특별 포상이나, 심지어 승진 이상의 보상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한 광고 이상의 가치를 가진, 작지만 위대한 아이디어. 이런 발상이야말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내 모든 생각의 기본 전제는 ‘정말 그런 기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실제로 그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광고는 그저 매력적인 콘셉트일 뿐이다.


혹은, 이미 다른 제품에 반영된 기술이었다 해도 이 기능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고, 이를 광고로 기획해낸 과정 자체가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내가 감탄했던 것은 단순히 제품의 기능이 아니라, 이 기능을 ‘광고’라는 형식으로 풀어낸 기획력까지 포함한 생각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능이든, 기획이든 기존의 것들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


그 발상의 전환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시작점이 아닐까 싶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나는 절대로 ‘에이스침대’와 연관이 없는, 그저 한 명의 유튜브 광고 시청자일 뿐이다. 그저 광고를 보며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했을 뿐, 이 제품을 홍보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이제, 이 제품에 대한 생각은 여기서 마무리한다. 광고는 흘러갔지만, 오늘 떠올린 생각들은 내 안에 조금 더 머물 것 같다. 생각해 보니, 과학에 대한 책을 읽고 난 직후라서 더더욱 ‘과학’이라는 단어에 끌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꺼내 쓰지 않았던 ‘과학’이라는 개념.


어쩌면 그것이 잠재의식 속에 깊숙이 숨어 있다가, 이번 책을 통해 다시금 자극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일까.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광고 문구가 평소보다 더 강하게 다가왔던 것도, 결국, 최근 읽은 책이 내 사고방식에 미묘하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 아닐까.


무언가를 읽고, 생각하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이 또한 내가 하고 있는 독서가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같은 광고를 보면서도 다른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내 뇌 속에 잠재되어 있던 단어와 개념들이 독서를 통해 이끌려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지금 광고 속 ‘과학’이라는 단어가 내 사고를 자극할 수 있었다면, 앞으로 다가올 더 중요한 순간에는 어떨까?


언젠가 어떤 기회가 찾아왔을 때,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들 속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그 지식이 내 능력이 되어 발휘되는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신념이 생겼다.


독서는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내 안에 숨겨진 가능성을 끌어내는 과정.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금주를 시작하고 금요일은 나에게 이제 불금이 아니다 월요일과 별반 다름없는 루틴을 지속하는 하루다. 그러나 직장에 출근을 하는 아내는 나와 상황이 다르다. 일주일 동안 추위에 고생을 한 자신에게 위로를 해주는 날이라며 오늘은 반드시 외식을 해야 한다는 뜻을 비춘다. 사실 딱히 연관성은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결국 아내가 얼마 전부터 유독 먹고 싶다고 하는 주꾸미볶음을 저녁 메뉴로 선택을 하고 아내의 직장으로 막내와 함께 이동을 했다. 이 또한 내가 금주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동선이다.


아내를 픽업하고 식당으로 가는데 시간을 보니 저녁을 먹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었다. 또한 인터넷으로 확인을 해보니 브레이크 타임이 걸려있었다.


우리 셋은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던 중에 같은 건물에 당구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낸 아내는 당구도 제법 잘 치는 여성이다. 기존 점수로 이야기하면 80 정도 친다고 보면 될 듯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잘 치는 여성이라고 난 생각한다.


최근 프로 볼링대회가 아직 개최되고 있지 않아 조금씩 다시 당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아내 그리고 친구들과 당구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 막내가 요즘 TV에서 프로당구 대회를 둘이서 소파에 앉아 자주 보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내가 물었다.


“우리 당구 한게임 치고 저녁 먹으러 갈까?”

아내와 막내 동시에 “좋죠!”라고 외친다.


참고로 우리 막내는 고3이다. 그러나 어차피 서연고서한성을 못 갈 바에 얼마 남지 않은 방학 충분히 즐기라는 나만의 논리로 그리고 가족의 화목이 성적보다 중요하다는 말도 되지 않는 논리를 혼자 새기며 우리는 당구장으로 향했다.

나름 당구를 잘 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150 정도의 실력으로 자신만만하게 게임비 내기라고 큰소리를 친 나는 “대대”라는 당구대와 3구라는 생소한 환경에 좌절했고 막내의 학업성적이 왜 그렇게 노력하는 것만큼 오르지 않는지를 깨닫는 데 1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난 1시간 30분 만에 아내에게도 지고 결국 내 지갑에서 게임비를 계산하며 당구장 사장님과 눈을 맞추며 씁쓸함과 어색한 미소를 나누고 당구장을 빠져나왔다.


순간 내가 그동안 지불한 막내의 학원비가 당구장 주인의 계산대 속으로 들어간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감정을 내려놓고 우린 식당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먹는 주꾸미볶음의 맛은 일품이었다. 당구장 사건은 매운 주꾸미로 인해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씻어내며 잊어버리고 웃음이 가득한 감사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막내는 TV에서 나오는 당구 대회를 보며 오늘 당구 시합을 복기한다.


난 서재로 들어와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어처구니 없이 패배한 당구 결과를 잊고 책을 펼친다. 그리고 일기를 정리하며 오늘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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