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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월 19일 수요일의 국민성

되돌아온 막내의 지갑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러워졌다.

by 마부자

금주 50일째, 창밖에서는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연신 창문을 두드렸다. 밤사이 얼어붙은 공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듯, 도시 전체가 한 겹 더 싸늘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분명 달라진 점이 있었다. 이제는 새벽이 완전히 어둡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빛이 하늘 한쪽을 물들이고 있었다.


명상을 마치고 책상에 앉았다. 고요한 아침, 머릿속이 정리된 상태에서 책을 펼치는 이 시간이 좋다. 오늘 손에 든 책은 호프 자런의 <랩걸>. 이 책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유시민 작가가 한 쇼츠 영상에서 “글을 정말 잘 쓰고 싶다면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한 책이었다. 그의 말에는 언제나 무게가 있었고, 그래서 고민 없이 도전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솔직히, 이 책을 내가 스스로 선택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저자도 생소했고, 제목조차 낯설었다. 게다가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이라는 부제까지 붙어 있었다. 과학과 나무라니, 과연 내 취향과 맞을까? 그런 의문이 스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읽어봐야 하는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평생토록 관심을 두지 않았을지도 모를 이 책이, 지금 내 손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최근 책을 읽으면서 가끔 신기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마치 책과 책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읽다 보면 예상치 못한 접점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단순히 읽고 싶어서, 혹은 추천을 받아 선택한 책들인데, 어느 순간 펼쳐든 책 속에서 이전에 읽었던 책의 저자나 내용이 다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책에서도 뜻밖의 연결점이 발견된다.



이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묘한 필연성이 느껴진다. 마치 책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를 이끌어가며, 하나의 흐름 속에서 다음 읽을 책을 자연스럽게 안내하는 것 같다. 그런 연결이 이어질 때, 독서는 단순한 행위를 넘어 하나의 여정처럼 느껴진다.



비슷한 주제나 장르의 책이 아니라도, 이런 연결은 계속된다. 단순한 우연이라기엔, 마치 보이지 않는 실이 책과 책 사이를 엮어주는 것만 같다.

예를 들어, 호프 자런의 <랩걸>은 유시민 작가의 추천으로 선택한 책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펼쳤을 때,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고 말았다. 첫 장을 여는 순간, 추천사 맨 위에 호프 자런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브링리의 책이 에세이고, <랩걸>이 회고록 형식이라는 점에서 장르적인 유사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작가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이 발견은 단순한 우연 이상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낯설기만 했던 호프 자런 이라는 이름이 조금은 친숙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름 하나가 익숙해졌다는 이유만으로도, 묵직한 책의 두께와 작은 폰트가 덜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오늘도 자연스럽게 그녀가 만든 새로운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직 이 책의 제목이 왜 <랩걸>인지 알 수 없었다.


책장을 넘기며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지만, 정확한 의미는 아직 감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보거나, 미리 답을 알고 싶지는 않다. 책을 읽어가면서 그 의미를 자연스럽게 발견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혹시 이 일기를 보시는 분들 중에 아시는 분이 계셔도, 제 궁금증을 해결해 주시려는 배려는 절대로 하지 말아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오전까지 많은 분량을 읽지 못해 책의 내용을 깊이 정리할 수는 없었지만, 확실한 건 있었다. 호프 자런의 필체에서 나오는 묘한 매력.


왜 유시민 작가가 "글을 쓰려면 호프 자런처럼 표현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 좋다"고 했는지, 몇 페이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문장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나는 그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호프 자런의 글에는 내가 좋아하는 임경선 작가의 건조함이 묻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 양귀자 작가의 <모순> 속 주인공 안진진의 무뚝뚝한 유머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시니컬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헛웃음을 자아내는 그 특유의 문체. 마치 내가 앞으로 한 권의 책을 낸다면 꼭 닮고 싶은 필체들을 한 권에 집약해 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의 내용은 분명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이었지만, 초반부를 읽으며 묘하게 에세이와 의학서적의 경계를 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도 어렵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문장이 유려해서일까, 아니면 그녀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서일까. 페이지를 넘기는 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자칫 오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읽을 뻔했다. 하지만 오전에 다 읽지 못할 것이란 걸 알기에, 아쉬움을 남긴 채 잠시 책을 덮었다. 그리고 몸을 움직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책은 천천히 읽어도 된다. 중요한 건, 이 매력을 오래도록 즐기는 것.

오늘도 어제에 이은 밥 프록터의 책 <부의 확신>을 정리한 영상이었다. 3일간 이어지 밥프록터의 영상을 보고 난 후 그의 책도 어느새 다음 목록에 들어가 있었다.


“성공은 95%의 마인드 셋과 5%의 전략으로 이루어 진다.”


영상 속에서 저자는 마인드란 결국 패러다임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패러다임의 변화야말로 성공한 인생으로 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오늘도 목이 쉬어라 강조했다.


수없이 들어온 단어였지만, 저자가 해석하는 ‘패러다임’의 의미를 듣는 순간, 그의 사고능력에 감탄했다. 그의 설명은 단순한 개념 정의를 넘어, 패러다임이란 것이 얼마나 깊이 우리 삶에 뿌리내린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 인생에 새겨진 모든 말과 소리,
우리가 본 것과 만진 것의 총체, 거대한 습관,
여러 세대를 거슬러 내려온 유전자 풀의 집합체,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

하와이 대저택


그동안 수없이 들어왔던 패러다임이라는 단어. 하지만 오늘 영상을 통해 그 의미를 더 깊이 새겨볼 수 있었다. 단순한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각인된 습관과 경험, 심지어 세대를 거쳐 내려온 사고방식까지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패러다임의 변화. 다시 한번 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울리는 말이었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끝낸 뒤, 평소처럼 루틴을 이어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막내가 방에서 급히 나오더니,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며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어디 가는데?"

짧게 물었지만, 막내는 "다녀와서 말씀드릴게요!"라는 말만 남기고 황급히 현관문을 닫았다.


순간 불안한 마음이 스쳤다. 무슨 급한 일이 생긴 건가? 하지만 막내의 표정이 어딘가 들떠 보였기에, 심각한 일은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괜한 걱정을 하느니, 평소처럼 나머지 루틴을 진행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잠시 지나고, 막내가 10분도 채 되지 않아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얼굴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함박웃음이 번져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묻자, 막내는 신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얼마 전에 잃어버렸던 지갑을 찾았어요!"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급히 뛰어나간 것도, 돌아오며 짓고 있던 그 밝은 웃음도. 순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던 하루에, 예상치 못한 반가운 소식이 하나 더해졌다.


막내의 지갑 분실 사건은 사실 지난주, 아내의 생일에 외식을 하고 난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어제 주차장에서 내릴 때 지갑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막내는 아침부터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분명 식당에서 나올 때까지는 지갑을 가지고 있었으니, 주차장에서 차에 타고 내리는 사이 어딘가에 떨어뜨린 게 분명했다. 하지만 차 안을 뒤져 봐도 없었고, 주차장 주변을 샅샅이 살펴봐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지갑은 그렇게 사라졌다.

다행히 아직 미성년이라 지갑 속에 중요한 카드나 신분증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막내가 유독 속상해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지갑이 작년 생일에 할머니가 면세점에서 큰맘 먹고 선물해 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학생이 가지고 다니기엔 다소 과한 브랜드였지만, 그래서 더 애착이 컸던 것 같다. 지갑을 잃어버린 걸 알게 된 후, 막내는 며칠 동안 눈에 띄게 시무룩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지갑은 잊혀가는 듯했다. 그런데 오늘,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다. 지하철 분실물센터에 막내의 지갑이 보관되어 있다는 것!


막내가 갑자기 뛰쳐나간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몇 날 며칠을 속상해하던 지갑을 찾았으니, 10분도 되지 않아 돌아오면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잃어버린 물건이 이렇게 다시 돌아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더구나 마음을 붙였던 소중한 물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 오늘 막내가 그토록 기뻐하는 것도 당연했다. 분실과 재회, 작은 사건 하나가 하루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그리고 덕분에 이 평범한 하루가 조금 더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정말 궁금했다. 잃어버린 지갑이 일주일 만에 돌아온 것도 신기한데, 집 주차장에서 사라진 지갑이 어떻게 지하철 분실물센터까지 가게 되었을까? 누군가 주워서 거기까지 가져다준 걸까? 아니면 전혀 예상치 못한 경로를 따라 흘러간 걸까?


그런데 여기서 더 신기한 건, 이 지갑이 지하철 분실물센터에 있다는 걸 알게 된 계기였다. 막내가 직접 찾은 것도 아니었고, 센터에서 연락이 온 것도 아니었다. 바로 막내의 친구 덕분이었다.


막내의 친구 역시 얼마 전에 지갑을 분실했다. 지하철에서 잃어버린 것 같아 직접 분실물센터를 찾았고, 직원이 여러 개의 지갑을 보여주며 "혹시 본인 것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우리 막내의 학생증이 들어 있는 지갑을 발견한 것이다.


그 즉시 친구는 막내에게 연락했고, 덕분에 막내는 집 근처 지하철 분실물센터에서 지갑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도 우연의 연속이라,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한 것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이 잃어버린 지갑을 찾으러 갔다가, 또 다른 사람의 잃어버린 지갑을 발견하게 되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저 흩어진 것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일 뿐인데, 그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기묘한 연결을 경험한다. 오늘 이 작은 사건이 남긴 건 단순한 ‘지갑을 찾았다’는 기쁨이 아니라, 어쩌면 인연도 물건처럼 길을 잃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어떤 희망 같은 것이었다.


함박웃음을 짓고 기뻐하는 막내의 모습과 달리, 나는 이 거짓말 같은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함을 넘어 놀라움을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이런 우연이 겹쳐질 수 있을까?


잠시 논리적으로 추론해봤다.


아파트 주차장에 떨어진 지갑을 누군가 발견했을 것이다. 하지만 파출소에 맡기기엔 부담스럽고, 지갑을 주운 사람이 우연히 지하철을 이용할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때 마침 분실물센터가 눈에 띄었고, 그냥 거기에 맡기는 것이 가장 간단한 해결책처럼 보였을 것이다.


문제는, 학생증은 있었지만 주소나 연락처는 없었다는 것. 결국 분실물센터에서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보관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한동안 잊혀져 있던 지갑은 당사자가 아닌, 막내의 친구에 의해 발견되었다. 친구 역시 자신의 물건을 찾으러 갔다가, 직원이 보여준 여러 개의 지갑 속에서 막내의 학생증이 들어 있는 지갑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즉시 막내에게 연락을 했고, 지갑은 다시 주인을 찾아왔다.


이렇게 설명하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나 정교한 우연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 잃어버린 지갑이 같은 공간에서 다시 발견된 것도 아니고, 주인이 직접 찾은 것도 아닌데도 결국 딱 맞는 순간, 딱 맞는 사람을 통해 다시 돌아왔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세상에는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없는 인연 또는 사건들이 있다. 그냥 사라졌어야 할 물건이 다시 돌아오고, 연결될 수 없는 실들이 엮여 기묘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결국, 잃어버린 것들이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 이건 물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음… 이런 것이 운명이란 것인가? ㅎㅎㅎ


막내에게 “이제 너와 이 지갑은 평생을 함께할 운명이다”라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막내는 크게 웃었지만, 그 말 속에 나도 모르게 진심이 섞여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직함과 배려심 그리고 국민성!!!


주운 물건을 아무렇게나 버리거나 가져가지 않고,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번거로운 과정을 감수해 준 어떤 사람이 있었기에 이 지갑이 돌아올 수 있었다. 단순히 습득자가 아니라, 지갑을 찾으러 갔던 친구까지, 이 일련의 과정 속에는 누군가의 작은 배려와 양심이 쌓여 있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둘로 갈라져 끝없는 갈등 속에 있지만, 사실 배려와 협력이라는 가치 역시 우리 국민들의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오늘 이 작은 사건처럼, 번거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남을 돕는 따뜻한 마음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면, 지금의 혼란도 결국 지나가고 우리는 다시 협력하는 일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돈이 든 것도 아니고 명품 지갑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해석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오늘 이 사건은 단순히 지갑 한 개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사라진 것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남을 위해 기꺼이 수고를 감수할 줄 아는 사람들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돌아온 막내의 지갑은 내게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가진 묵직한 신뢰와 자부심을 다시금 되새겨준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민족적 자부심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향했다. 문득 “이 민족성을 느낄 수 있는 저녁 메뉴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대한민국이라면 역시 김치. 그리고 김치가 들어간 음식이라면… 김치찌개!


이 메뉴라면 오늘 느낀 대한민국의 정직함과 따뜻한 배려의 정서를 저녁 식사까지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이런 거창한 이유보다는 다른 메뉴를 만들기 위해 들여야 할 번거로움을 ‘민족성’이라는 핑계로 대체하겠다는 의지가 더 컸다.


결국, 가장 한국적인 동시에 가장 간단한 선택. 김치찌개를 끓이기로 했다.


오늘의 국물은 자부심과 편리함, 그리고 따뜻함이 어우러진 맛이 될 것 같다.

비록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한 대체 음식이었지만, 김치찌개는 언제나 옳은 선택이다.


우리 셋은 함께 둘러앉아 오늘의 지갑 사건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며 웃었고, 아내는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막내는 여전히 지갑을 찾은 기쁨이 가시지 않은 듯, 몇 번이고 그 순간을 떠올리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하루 동안의 일상을 나누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호프 자런의 문장들 속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금주의 효과는 체중 감소라는 현실적인 이점도 크지만, 이렇게 저녁 시간을 온전히 독서에 몰입할 수 있다는 매력이야말로 이 생활을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조용한 밤,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상태에서 다시 한 페이지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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