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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월 17일 월요일의 항해

언제까지 내 삶의 배에 탄 바보들과 항해를 계속 할 것인가?

by 마부자

금주 48일째, 오늘도 프로그램된 로봇처럼 몸을 일으켜 눈을 비비며 후츄의 물과 사료를 채워주고 커다란 거실 창가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는데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과 함께 비친 맞은 편 아파트 창문에 비친 한 사람 때문이었다.


동 사이 간격이 좁지 않아 눈이 마주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창문을 열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도 놀랐지만 만약 상대방이 나를 봤어도 많이 놀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정신을 좀 차리고 베란다 앞에 서기 전에 주변을 먼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거실로 옮겨 명상을 시작했다.


뭐라 명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명상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은 체감적으로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이 요즘 명상을 하고 나면 알 수 있다. 일단 예전에는 몇 분만 지나도 엉덩이가 코속에서 시작된 가려움이 얼굴 전체 그리고 등으로 번지며 온몸이 근질근질 했는데 그런 감각은 거의 없어졌다는 것, 그래서 시간이 잘 간다는 것이 큰 변화다.


홍차 한잔을 들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댓글을 확인하다 내 일기에 "블로그 공감에 대한 댓글"을 단이웃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작성한 글을 확인하지 않고 공감만 누르는 블로거들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다양한 의견을 듣고자 하는 내용이었다.


그 의견에 대한 내 생각을 적기에는 아직 내 필력이나 블로그 경험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천천히 읽고 마음으로 공감만 표현하기로 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마우스를 클릭하며 글을 넘기는 순간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어떤 글들은 읽지 않고 공감에 하트 표시만 누르고 넘기고 있다는 사실을…(음 좀 곰곰히 생각을 해봐야겠다)

루틴을 마치고 어제 읽다 잠시 덮어둔 책을 펼쳤다.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들의 배>, 철학적인 내용이지만 사회 풍자와 역사적 사건들을 이용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재미있게 묘사해주는 형식으로 따분함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책의 내용 및 서평은 “마부자의 독서실”에 포스팅하고 생각을 적어본다.


책을 읽고 내 삶의 배에 누가 타고 있는지 궁금해졌고 그 질문은 더 선명해졌다. 탐욕, 허영, 무지, 위선. 브란트가 묘사한 바보들은 53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 곁에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나조차 그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멈춰 서서 되돌아봤다.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 무심코 함께 항해해온 것들.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 애쓰던 시간, 의미 없는 욕망에 휩쓸렸던 순간들.


이 모든 것이 내 배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가라앉히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브란트는 말했다. 바보들은 그냥 내버려 두면 영원히 내 배에 머물 거라고.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서서히 배를 갉아먹고, 결국 침몰하게 만든다고. 생각해보면, 내 삶도 다르지 않았다.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과연 내게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버려야 할 짐인지 고민한 적이 있었던가?

나를 성장시키는 관계와 나를 소모시키는 관계를 제대로 구별한 적이 있었던가?


책장을 넘기면서, 이제는 더 이상 바보들을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떠나보내지 못했던 관계, 미래를 불안해하며 쥐고 있던 불필요한 걱정들, 아무런 의미 없이 반복하던 습관들. 그것들은 과연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인가, 아니면 점점 무거워져 결국 침몰하게 만들 것인가.


브란트는 단순히 바보들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 바보들과 함께 항해할 것인지, 혹은 그들을 배에서 내려보낼 것인지. 그리고 만약 내려보내지 못한다면, 그들을 바꿀 수 있는지 고민해보라고 말한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책장을 덮으며 조용히 다짐했다. 내 삶의 배에 누구를 태울 것인지 더 신중해질 것. 그리고 필요하다면 주저 없이 내려보낼 것. 삶은 더 이상 불필요한 것들에 휘둘리기엔 너무 짧고, 내 배가 향해야 할 곳은 아직 멀다.


우연히 발견한 이벤트에서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문장을 만났다. "내 삶의 배에 탄 바보들"이 얼마나 명쾌하고 솔직한 표현인가.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하라면, 이보다 더 적확한 말이 있을까?



"지금 갑판 위 당신의 삶이라는 배를 보라.
너무나 많은 바보들이 타고 있는가?
그들이 당신 삶의 배를 침몰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다.
그대로 같이 갈 것인가?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마부자^^


앞으로 이 문장을 종종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때론 내 삶의 배에 바보들이 올라타겠지만, 함께 갈지 여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고 더 중요한 건 그 배를 어디로, 어떻게 몰고 가느냐일 테니까.


이 한마디가 주는 통쾌함과 묘한 위안 속에서 주말 동안 쉬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이번 주부터는 강도를 조금 더 높여, 몸속 깊이 쌓인 노폐물들을 배출해내기로 했다. 오늘 운동 중 영상은 밥프록터의 <부의 원리> “가난의 패러다임을 끊어내는 법”에 대한 영상이었다. 총 3부로 나뉜 영상으로 오늘은 1부에 나온 문장을 적어본다


“부자가 될 운명이나, 영화를 누릴 팔자가 따로 존재할 리가 있겠는가?
부유한 사람들은 부자가 될 운명이기 때문에 부유한게 아니다.
부를 얻고, 유지하고, 키우는 일에 몰두했기 때문에 부유한 것이다.

”하와이 대저택 - 밥프록터


그 문장은 우리의 삶이 이미 결정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태어난 순간부터 운명이 정해져 있고, 자신은 그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강렬한 한마디. 인생 결정론을 믿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일깨워주는 문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지금 내 몸에서 흘러내리는 이 땀이 바로 그 믿음을 깨뜨리는 증거라는 것을. 삶은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매일 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몸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결국 삶도 바뀐다.


흘러내리는 땀방울 속에서 그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삶은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다." 땀을 닦으며 조용히 되뇌었다. 내 인생은 바꿀 수 있고, 바뀌어야만 한다. 나는 오늘도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정리를 시작했다. 주말 이틀 동안 가사일을 잠시 미뤘을 뿐인데, 집안 곳곳에 후츄의 흔적이 가득했다.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아내는 후츄를 빗길 때마다 빠진 털을 모아 작은 탁구공 하나를 만들 정도로 정성스럽게 관리하는데도, 이틀만 카펫을 청소하지 않으면 온 방이 털로 뒤덮인다. 햇빛이 들어오는 각도에 따라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털들이 보일 때면, 후츄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존재감만큼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털 한 올 한 올을 치우면서도 미소가 지어졌다. 이 작은 생명이 남긴 흔적들이 귀찮으면서도 정겹다. 어쩌면 후츄는 우리가 자신을 잊지 않도록 이렇게 매일 작은 신호를 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운동까지 마치고 밀린 가사일까지 정리하고 난 후, 하루 루틴이 끝나갈 무렵, 잠시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었다. 별다른 목적 없이 뉴스를 훑어보았는데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한 젊은 여배우의 자살 소식 이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듯 본 기사였지만,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너무도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세상에 남긴 그녀의 흔적들과,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무게를 생각하니 쉽게 화면을 넘길 수가 없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과는 무관하게 무관하게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녀에게 명복을 빌 뿐이다.


요즘 대한민국은 끝없는 대립과 분열 속에서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있다. 이념의 대립은 극단으로 치닫고, 언론은 저마다의 성향에 맞춰 편향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래서 뉴스를 멀리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기 위해,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뉴스를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우연히 마주친 한 줄의 기사로도 마음이 무너진다.


이제는 정말 더 멀어져야겠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한동안은 뉴스에서 한 발짝 더 떨어져 있어야 할 것 같다.


얼른 휴대폰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향했다. 더 이상 뉴스를 보고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차라리 손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만드는 게 마음을 다스리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오늘 저녁은 닭볶음탕으로 결정했다. 며칠 전 사두었던 닭 한 마리와 남아 있던 고구마를 활용한 간단한 요리다. 이미 한 번 만들어 본 적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준비할 수 있었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말한다.

"해가 지면서 바람이 더 차가워졌어요. 오늘 진짜 추워요."


그러면서도 곧장 환한 얼굴로 웃으며 덧붙였다.

"근데 집에서 너무 좋은 냄새가 나네요~!"


부엌을 한 바퀴 둘러보던 막내가 저녁 메뉴를 묻는다.

"닭볶음탕!."


내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막내는 웃으며 말했다.

"씻을 시간 없어! 배고파!"


그 말에 아내까지 합세해 식탁으로 달려왔다.

막내는 손을 씻을 겨를도 없이 자리에 앉았고, 뜨끈한 국물 한 숟갈을 떠먹더니 감탄하며 역시 과도한 리액션으로 말한다. "이거 너무 맛있는데요~"


그렇게 세 식구가 둘러앉아 저녁을 나누었다. 각자의 하루를 이야기하며, 소소한 기억들을 공유하며,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뜨거운 닭볶음탕처럼 우리의 하루도 따뜻하게 마무리되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난 후, 아내는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몸을 푹 기대며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더니, 문득 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동료들이 넷플릭스에서 '중증외상센터'라는 드라마가 재밌다고 하더라고. 다들 완전 푹 빠져서 보고 있대."

아내의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묻어 있었다.


이내 내 쪽을 돌아보며 살짝 웃었다.

"같이 볼까?"


나는 미소만 지으며 정중하게 고개를 저었다.

"난 괜찮아. 보고 싶으면 편하게 봐."


드라마가 나쁘다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의 나는 다른 곳에 집중하고 싶었다. 이미 저녁을 준비하며 하루의 감정선을 정리했고, 이제는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리모컨을 눌렀고, 나는 조용히 책상으로 향했다. 거실에서는 드라마의 오프닝 음악이 흘러나왔고, 책상 앞에 앉은 나는 조용히 새로운 책을 꺼내 책장을 넘겼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같은 집 안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이 평온함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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