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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월 24일 월요일의 시간

시간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어주었다고 생각했다.

by 마부자

금주 55일째, 모든 루틴을 마치고 책상에 앉았다. 이제는 습관처럼 자리 잡은 이 시간이 제법 익숙하다. 최근 새롭게 추가한 루틴이 하나 더 있다.


책상 앞 벽에 붙여둔 포스트잇에 적힌 문장들을 한 번씩 읽어보는 과정이다. 한 권의 책을 완독할 때마다 한 줄씩 더해지는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책을 읽었을 때의 감각과 여운이 다시금 살아난다. 마치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처럼.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곧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한 권, 또 한 권, 읽을 때마다 나는 이전과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벽에 붙여둔 문장들처럼, 책 속에서 건져 올린 말들이 내 삶에 흔적을 남긴다. 언젠가 지금의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어떤 문장을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책을 펼치기 전, 어제 읽었던 <고전이 답했다>의 내용을 정리했다. 독서를 취미로 삼는 사람이라면 고명환 작가의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는 개그맨에서 시작해 요식업 대표가 되었고, 자기계발 강사로도 활동하며 이제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사람들은 그를 ‘독서 전도사’라고 부른다.


요즘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가 점점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고전’이라는 장르에 자연스럽게 끌리고 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만 접했던 고전 작가들의 이름이 이제는 낯설지 않고, 그들이 남긴 문장들이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고전에 대해 꽤 오랫동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서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을 거야’, ‘지루하고 따분한 책일 거야’라는 선입견이 강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생각이 얼마나 짧고 편협했는지 부끄러워졌다.


수백 년, 심지어 수천 년 전에 쓰인 글들이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건, 그만큼 그 안에 담긴 진리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이 고민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실감하게 된다.


고전이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는 점도 새롭게 다가왔다. 오히려 고전은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들의 통찰이 담긴 책이며, 우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길을 안내하는 지도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는 고전을 읽는다는 것이 마치 과거의 지혜로운 스승과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고명환 작가는 고전을 단순한 옛 문헌이 아니라, 인간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남긴 지혜의 기록이라고 강조한다. 그동안 나는 고전을 ‘문학’으로만 바라보았지만, 사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누군가의 삶과 경험이 축적된 ‘기록’이었다.


인류가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운 것들,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힌트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종종 ‘책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듣지만,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독서를 통해 절망의 순간을 이겨내고,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그 이야기를 보며 나도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나 자신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과정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고전을 어렵고 지루한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 고전에 대한 흥미가 더욱 커졌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적인 고민이 담긴 책들이라면, 분명 지금의 나에게도 해답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는 고전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더 많은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필요한 답을 찾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오늘 책꽂이에 꽂혀 있던 고전을 꺼내 들었다. 사실 이 책은 3월의 첫 책으로 읽으려고 주문해 두었던 세계문학 전집 중 한 권이었다. 올해 목표 중 하나로 매월 한 권씩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을 읽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다짐을 지켜나가며, 나는 차곡차곡 책장을 채워가고 있다.


지금까지 헤르만 헤세, 헤밍웨이, 사뮈엘 베케트, 그리고 조지 오웰의 작품을 읽었다. 세계문학이라는 거대한 숲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 정한 기준은 단순했다.


"누구나 알 법한 유명한 작가의 책을 읽을 것." 낯설고 어려운 작품보다는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작가들의 책을 먼저 읽으며 세계문학에 대한 감각을 익혀가기로 했다.


그렇게 선택한 다음 책은 톨스토이의 작품이었다. 얼마 전 "여르미 도서관"님이 추천해 주신 책. 톨스토이라는 이름은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그의 작품에서 늘 많은 것을 배워왔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준비해두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오늘 <고전이 답했다>를 읽으며, 나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책꽂이에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꺼냈다. 제목을 다시 한 번 음미했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묵직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쉽게 외면한다. 무겁게 느껴졌지만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고명환 작가의 <고전이 답했다>에는 수많은 작가와 작품이 등장한다. 그런데도 유독 이 책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대한 내용을 읽고 작가는 깊은 울림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담긴 문장들을 예로 들었고, 나는 그 구절들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생각에 잠겼다.


책을 꺼낼지 말지 망설이는 것도 잠시였다. 이 책을 책꽂이에 일주일 동안 더 둔다면, 궁금증에 잠을 못 이룰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책을 손에 들었다. 표지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나는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까?


아무 연결고리도 없을 것 같은 책들이 묘하게 맞물려가는 감정을, 오늘도 다시금 경험했다. 우연히 펼친 한 권의 책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또 다른 질문을 품게 만드는 흐름. 마치 보이지 않는 실로 얽힌 듯한 이 감각이 언제나 신기하고 흥미롭다.


그렇게 나는 생애 처음으로 톨스토이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 책은 내가 읽어온 책들 중 가장 얇았다. 작품 해설을 제외하면 본문은 고작 104페이지. 하지만 그 무게감만큼은 여느 4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보다 훨씬 더 묵직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가슴이 서서히 조여왔다. 이 얇은 책이 이렇게 깊은 울림을 줄 줄이야.


그래서일까. 이 책은 내가 처음으로 하루에 두 번 읽기로 마음먹은 책이 되었다.


오전에 단숨에 읽었지만, 책을 덮은 뒤 서평을 쓸 수 없었다. 아니, 쓰지 않았다. 내 안에 형성된 감정을 그대로 두고 싶었다. 서둘러 글로 옮기는 순간, 그 여운이 흩어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오후에 다시 읽기로 마음먹었다. 책을 잠시 책상 위에 내려놓고, 운동을 시작했다.


오늘 영상은 故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 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는 부도직전인 회사에 입사해서 회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이끌어낸 교세라의 창업주였다.


사람이 진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 뒤

이제는 진짜 하늘의 천명을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자신할 만큼 모든 힘을 쏟아내 본 자만이

‘빌어볼 자격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냈는가?
몸이 부서질 정도로 자신이 하는 일 하나 하나에 영혼이 스며들게 해보았는가?

이제 남은건 하늘이 도와주는 길 뿐이라고

이 생각이 들만큼 해보았냐는 질문이다.

하와이 대저택

그동안 봤던 영상들은 주로 ‘생각을 바꾸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오늘의 영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생각을 바탕으로 한 노력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나모리 가즈오. 그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인물이다. 그는 마치 노력이라는 개념을 초월한 사람처럼, ‘무서울 정도로’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단순히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을 행동으로 연결해야만 변화가 온다고.


사실, 이 부분은 대부분의 자기계발서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성공은 실행을 전제로 한 생각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마부자의 생각^^

결국,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생각을 바꿨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성장했다고 착각하곤 한다. 진짜 변화는 그 이후부터인데 말이다.


단순한 행동이 아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행동.


오늘의 영상은 바로 그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한 반복적 노력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안젤라 더크워스의 <그릿>, 안데르스 에릭슨의 <1만 시간의 법칙>에서도 말했듯이, 그 어떤 재능도 꾸준하고 깊이 있는 노력을 이길 수 없다. 타고난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밀어붙이는 과정이다. 결국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진부한 문장이 진리가 되는 순간이 있다.


오늘 본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노력의 질"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새로운 곳에서 찾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그것을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를 던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새로운 환경을 찾는다.

반면, 어떤 사람은 현재 위치에서 변화를 만들어낸다. "어디에서" 노력할 것인가?


결국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태도일지도 모른다.

진짜 노력은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니까.


오늘도 주말에 쉬었던 몸을 뜨겁게 달구기 위해 강도를 높인 페달의 무게를 이겨냈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한 후 간단히 배를 채우고 소파에 앉아야 했지만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오전에 완독한 책을 다시 펼쳐 읽기 시작했다.


두 번째 읽는 것 때문인지 형광 펜으로 그어 놓은 밑줄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충 넘기지 않았는 데도 오전보다 빠른 속도로 두 번째 완독을 아내 퇴근전에 할 수 있었다. 일단 머릿속에 남는 내용들을 독후감 파일에 두서없이 적어 내려갔다.

삶, 죽음, 성공, 증오, 후회, 의문, 배신, 결혼, 연민, 눈물, 내면, 성장 등 내가 아는 모든 감정을 문장으로 적어 내려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했다. 단어 하나로 담아내기엔 감정이 너무나도 복잡했고, 문장으로 풀어내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둘 단어를 적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문장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감정을 분석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몰두했다. 문득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아내가 퇴근할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저장 버튼을 클릭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책과 글 속에서 헤매던 생각들을 잠시 접고, 이제는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주말 동안 미리 준비해둔 음식으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기로 했다. 사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오늘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저녁을 차리는 것도 귀찮았고, 무엇보다 책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는 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머릿속에서 여운이 가시기 전에 온전히 글로 풀어내고 싶었다.


아내가 퇴근하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책상으로 향하려던 순간, 아내가 나를 붙잡았다. "잠깐 얘기 좀 해요."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나누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예전 같았으면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미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내와의 대화라는 것. 문득, 나 스스로에게 늘 되뇌던 한 가지 원칙이 떠올랐다.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말 것."


그 잠재의식이 나를 자연스럽게 아내에게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이 조금은 대견스러웠다. 늘 중요한 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오늘 다시 한 번 배우는 시간이었다.


아내의 고민은 직장에서의 부서 이동에 관한 것이었다.


오늘 아내 회사의 부서장이 아내에게 직접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얼마 전 타 부서 직원이 퇴사하면서 새로 입사한 신입사원이 아내가 현재 맡고 있는 업무에는 경험이 있지만, 타 부서의 업무에는 익숙하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반면, 아내는 타 부서의 경험이 있어 업무를 변경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변화였기에 고민이 깊어 보였다.


한 시간 정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걱정이 많았지만, 차근차근 대화를 이어가면서 결국 할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스스로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듯했다.


"고마워."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얼른 들어가서 책 봐. 시간 뺏어서 미안해."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아내와 나눈 대화는 그 어떤 페이지보다 더 의미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나는 웃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언제든 고민이 있으면 말해."

오늘의 이 1시간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하기로 했다. 내가 아내를 위해 내어준 이 1시간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내가 내일 아침 출근할 때까지 품고 있을 걱정을 덜어주는 시간이었고, 동시에 내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시간이었다.


생각해 보면,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작은 인식의 차이가, 오히려 나에게 더 충분한 시간을 선물했다.


‘시간을 빼앗긴다’고 생각하지 말고,
'시간을 내어준다고' 생각 하자!

마부자의 생각^^


이 경험을 절대 잊지 않기로 했다. 문득, 어제 고명환 작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남을 위해 하면, 그게 곧 나를 위해 하는 일이 된다."


오늘 아내의 고민을 덜어준 내 행동이 결국 내 시간을 늘려주었고, 덕분에 이렇게 글을 더 길게 쓸 수 있는 기회까지 얻었다. 오늘 이 감사의 시간을 기억하기로 했다.


자리로 돌아와 아직 정리하지 못한 책의 감정을 조용히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글을 마무리한 뒤,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는 아내에게 다가가 가만히 인사를 건넸다.


"잘 자. 먼저 들어갈게."

아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를 마지막으로, 나는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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