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상>2월 26일 수요일의 보상

꾸준함이 나에게 주는 작은 보상, 난 그렇게 믿고 싶다.

by 마부자

금주 57일째. 같은 루틴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정말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아침은 늘 같은 방식으로 시작된다.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켜 후츄의 물과 사료를 바꿔주고, 녀석과 잠시 장난을 친다. 후츄의 따뜻한 체온과 말간 눈빛이 하루의 첫 감각을 채운다. 그 후 화장실을 다녀오고, 정수기에서 물을 한 잔 따라마신다.


베란다에 서서 차가운 공기로 정신을 깨운다. 어슴푸레한 새벽녘, 아파트 단지의 풍경은 매일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르다. 지하주차장에서 빠져나가는 차들, 바쁜 일상의 출발을 알리는 헤드라이트들, 그리고 그 너머로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 그 모든 것이 내 앞을 지나가지만, 나는 그 흐름을 잠시 비켜서서 바라본다.


그리고 6시가 되면 명상을 시작한다. 하루를 어떻게 채울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가고 있다.


명상을 마치고 책상에 앉는다. 30분간의 고요 속에서 정리된 마음을 붙잡고, 나름의 긍정 확언을 한다.

지난달 읽었던 존 소포릭의 부자의 언어. 책을 구매할 때 함께 받은 성공 카드 12장에는 간결하지만 강력한 조언들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카드들을 작은 목소리로 읽어 내려간다. 어쩌면 주문과도 같은 이 문장들이 내 안에 스며들길 바라면서. 그리고 성공 노트를 펼쳐 내가 원하는 목록을 읽는다.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하고 손으로 써 내려가며 나의 의지를 다시금 확인한다.


100일간 목표 쓰기도 이어진다. 매일 100번 쓰는 건 부담스러워서 우선 10번씩. 그러나 10번이라도 꾸준히 한다면, 그것이 쌓여 또 다른 루틴이 되겠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6시 50분이 된다.


어제 정리한 일기를 꺼내 블로그에 포스팅한다. 글을 다듬고, 서평을 작성한다. 아내가 출근한 뒤에는 자연스럽게 책을 집어 들었지만, 이른 아침의 독서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졸음이 몰려왔고, 집중력도 흐려졌다. 억지로 눈을 부릅뜨고 책장을 넘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루틴을 조금 바꿨다. 책의 서평을 수정하고, 포스팅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독서는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로 변경했다. 조금씩 변형을 가하면서도 흐름을 유지하는 것. 나에게 맞는 루틴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여유 시간이 있지만, 사실 할 일이 있다. 브런치에 연재 중인 글을 다시 확인하고, 수정할 부분을 살펴보며, 다음에 올릴 글에 대해 정리하려고 접속했다. 그러던 중, 지난주부터 새로 시작한 연재의 조회수가 6,000회를 넘었다는 알람이 도착했다.


순간, 기쁨과 함께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분명 감사할 일인데, 지난달 1차로 마무리했던 글 중 20,000회를 달성한 글이 있다는 이유로, 6,000이라는 숫자가 예전만큼 감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그저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렜다. 한 줄의 반응에도 가슴이 뛰었고, 작은 숫자에도 벅찼다. 그런데 이제는 더 많은 숫자와 비교하며 무뎌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과분한 관심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 소중함을 당연하게 여기려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신기하기도 하고, 아직 많이 부족한 글이라 부끄럽기도 하고, 그런 다양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숫자가 아닌, 처음 글을 쓰던 그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화면을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복잡한 감정을 뒤로하고 다른 분들의 글을 읽으려고 화면을 내리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상단에는 굵은 글씨로 “요즘 뜨는 브런치북” 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세 번째 자리. 솔직히 이걸 ‘3위’라고 불러야 하는 건지조차 모르겠지만, 낯익은 이름과 제목이 선명하게 보였다.


“by 마부자”


한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내가 아직 잠이 덜 깨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꿈속에서 먼저 보여주는 건가? 혼란스러운 마음에 눈을 비비며 다시 봤다. 그러나 화면은 변함이 없었다.


“요즘 뜨는 브런치북” 목록에, 내 이름이 분명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순간, 새벽의 고요를 깨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니, 정확히는 무의식적으로 이미 목소리가 나와버렸다.


“뭐지! 이게 뭐지?”


혼잣말처럼 내뱉었지만, 그 말 속에는 놀람과 흥분, 그리고 어쩌면 조금은 믿기지 않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섞여 있었다. 정말 이런 일이 내게도 일어나는 걸까? 현실인지 확인하려는 듯 다시 한 번 화면을 바라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3위라는 타이틀이 어떤 기준으로 “요즘 뜨는 브런치북” 코너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인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른다. 조회수? 추천 수? 혹은 어떤 알고리즘이 작용한 걸까?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그곳에 내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이름이 올려졌다고 해서 당장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내가 곧바로 ‘성공한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 하나의 타이틀이 내 삶을 극적으로 바꿔놓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 ‘3위’라는 이름으로 올라간 내 글의 의미는 세상 그 어떤 성공한 작가보다도 더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이 감정은 숫자나 결과가 아니라, 내가 걸어온 시간과 과정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일 습관처럼 글을 쓰고, 수정하고, 또 다시 써 내려가는 그 시간들이 쌓여 이루어진 작은 성취. 그것이 지금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순간이었다.


그러니 오늘 하루만큼은 기꺼이 이 감정을 마음껏 누려도 되지 않을까. ‘작가’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니어도, 단순히 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아침의 기쁨을 고스란히 느껴보려 한다.


솔직히, 살짝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게 뭐라고. 단순한 숫자일 뿐인데, 어떤 기준으로 랭크되는지조차 모르는데. 그런데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휴대폰에서, 혹은 PC 화면에서 ‘3위’라는 이름으로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너무나도 벅찼다. 상위 랭크에 올랐다는 성취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써온 글이 누군가에게 닿고 있다는 실감 때문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서재 창밖으로 비추는 새벽 햇살보다 더 강렬한 빛이 나를 비추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랭크가 언제 내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화면을 캡처했다. 그 후 조용히 휴대폰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 순간을 온전히 느껴보기 위해서. 그리고 곧 깨달았다.

이 모든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지난 2년간 꾸준히 써온 일기 덕분이었다.


2023년 11월, 변화를 갖고 싶다는 생각에 일단 시작해보자며 써 내려가기 시작한 일기였다. 그저 하루의 기록을 남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지만 그 일기는 곧 내게 가장 단단한 버팀목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뇌출혈. 이어진 세 번의 수술. 그리고 기적 같은 회복.


그 시간 동안,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물론 가족—세 명의 아이들—이 있었지만, 결국 그 모든 감정과 두려움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건 나 자신이었다. 어디에도 기대지 못한 채, 그저 버텨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 기도했다. 신에게, 우주에게, 영혼들에게. 그리고 그 간절한 기도를 일기에 남겼다.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고. 제발, 다시 눈을 뜰 수 있게 해달라고.


그 기도가 하늘에 닿았던 걸까. 아니면, 아내가 스스로 살아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덕분이었을까. 다행히 아내는 회복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때 내가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포기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힘든 하루를 버티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매일 밤, 그날의 기억을 적어 내려가는 것. 잊을 건 잊고, 희망을 놓지 말자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새기는 것. 그리고 다시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렇게 쌓아온 기록들이 지금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스스로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실행했던 꾸준함. 만약 그 끈질김이 없었다면, 그 시간들은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브런치북 ‘3위’라는 작은 기적이 찾아왔다.


어쩌면 이건, 지난 시간 동안의 나에게 주어진 보상이 아닐까. 무너지고 싶을 때마다 다시 일어나 글을 써온, 그 모든 시간들에 대한 작은 응답이 아닐까.


나의 꾸준함이 나에게 주는 작은 보상!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로봇처럼 매일 같은 루틴으로 시작하는 아침. 익숙한 흐름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에너지가 조금씩 소진되어 가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순서로 움직이고, 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맞이하지만, 어디선가 미세하게 공허함이 스며드는 기분.


그런데 오늘 아침,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내게 강력한 에너지를 보내왔다. 마치 멈춰가던 배터리가 단숨에 충전된 것처럼, 지칠 줄 모르는 로봇처럼, 다시 하루의 루틴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적은 거창한 형태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조용히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내게 온 이 작은 기적을 안고,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 오후부터 읽기 시작한 슈테판 클라인의 《현명한 이타주의자》. 책장을 넘길수록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책을 미리 예상하는 것은 결국 낭패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함께하는 사회, 이타주의 정신, 남을 배려하는 마음. 처음 이 책을 선택할 때, 나는 그런 키워드에 끌렸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마음으로 펼쳤고, 어쩌면 따뜻한 조언과 가벼운 감동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나의 선입견을 단숨에 깨부쉈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었다. 과학서였다. 그것도 생물학과 심리학을 절묘하게 엮은, 철저히 연구와 논리를 바탕으로 한 책. 단순히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지, 그 행동이 사회적·심리적·생물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파헤친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려 했던 나를, 이 책은 과학의 세계로 강하게 밀어넣었다.


마치 ‘책을 쉽게 예단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 단단한 문장과 논리로 나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나는, 이런 예기치 못한 충돌이 싫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 책은 오늘 안에 완독할 수 없었다. 충분히 읽고 정리한 후 포스팅하려 했지만, 책 곳곳에 남긴 플러그와 밑줄이 너무 많았다. 결국 완독은 저녁으로 미루고, 서평도 내일 작성하기로 결정했다.


이타적인 삶. 그리고 그 반대말인 이기적이라는 단어.


나에게 ‘이기적’이라는 단어는 늘 부정적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처음 과학의 세계에 발을 들였던 나는, 이기적이라는 개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며 성장했다. 이기심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며, 자연의 법칙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의미의 ‘이기’를 마주했다. 도킨스가 말한 유전자의 자기 복제적 본능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인간 사회 속에서의 이기와 이타의 의미. 그리고 결국 이기보다 이타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꾸준함이 만들어낸 감사의 마음, 그리고 새롭게 충전된 에너지를 힘껏 이용해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함께한 영상은 롭 무어의 <결단>.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는 상태가
가장 최악 중에 최악이다.

모든 사실이나 변수들을 속속들이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결정을 미루지 마라."

하와이 대저택


그의 목소리가 화면 너머로 또렷하게 흘러나왔다.


롭 무어는 <레버리지>로 유명한 작가다. 지난달, 나 역시 오랜만에 그 책을 다시 펼쳤었다. 파산 상태에서 단 3년 만에 백만장자가 된 그의 출발점은 바로 결단. 그리고 그 결단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점이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단순한 원리 같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결정을 미루고 망설인다. 나는 어떤가? 지금 내 삶에서, 나는 진정한 의미의 결단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을까?


롭 무어는 진리와 같은 성공 법칙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다짐했다.

미루지 말 것, 생각만 하다 끝내지 말 것, 행동할 것.


페달을 밟는 내 다리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운동과 나머지 루틴을 모두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오늘 하루 정도는 그냥 이 감정을 더 만끽하고 싶었다. 이 작은 성취를 조금 더 오래 누리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동시에, 나도 어쩔 수 없는 욕심 많은 인간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혹시 그 사이에 1위로 올라가지는 않았을까? 하는 어리석은 기대감.

마치 아이처럼, 괜한 설렘을 품은 채 브런치에 접속했다. 그리고, 확인한 결과는—


6위에 자리해 있었다.


충분히 만족했고, 그 사실만으로도 다시 한번 감사했다. 목표했던 자리에 닿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만약 1위를 했다면? 아마 오늘 하루 종일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을 것이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반응을 확인하느라 초조하고 들뜬 마음으로 시간을 허비했겠지.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였다. 스스로에게 다시금 다짐을 하듯, 주방으로 향했다. 손을 움직이며 잡념을 정리하고, 더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했다. 오늘의 작은 결과가 내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아직 충분하지 않으니, 다시 집중하라고.


아내와 막내에게 저녁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작은 성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내가 크게 떠들 일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특히 아내의 눈빛에는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애정과 응원이 가득했다. 그 순간, 작은 성공이 얼마나 커다란 행복과 감사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며 따뜻한 식탁을 함께했다.

저녁을 먹고 식탁을 치우려던 참에, 아내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웃음이 잔뜩 묻어 있는, 익숙하면서도 늘 정겨운 그 목소리였다.

“어이구, 3위 작가님! 오늘 식탁은 제가 치울 테니 들어가서 글 쓰시지요~”



순간, 나도, 막내도, 아내도 동시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한마디가 우리를 그대로 무장해제시켰다. 특히 막내와 나는 너무 웃어 배를 잡고 몸을 숙일 정도였다. 작은 유머 하나로 온 집 안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아내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 ㅇ작가는 이만 들어갑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일기를 정리하며, 오늘 하루를 차분히 마무리했다. 문득, 이런 날들이 쌓여가는 것이야말로 내게 가장 큰 성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따분하게 흘러갈 수도 있었던 하루가, 작은 성취 하나로 인해 온 가족이 함께 웃고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다. 어쩌면 내게는 그 어떤 결과보다도 이 순간이 더 소중한 선물이 아닐까.


혼자였다면 그저 지나갔을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아내와 막내가 함께 기뻐해 주고, 웃음을 터뜨리며 의미를 더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삶의 빛나는 순간들은 대단한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소소한 기쁨을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나눌 때 찾아오는 것 같다.


그렇게 감사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천천히, 조용히 마무리한다.







keyword
이전 25화<일상>2월 25일 화요일의 이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