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성을 만드는 건 의지나 결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마인드 컨트롤
금주 59일째, 루틴을 마치고 책상에 앉아 블로그와 브런치의 이웃들의 글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 오전은 책을 읽지 못한다. 오전 기차를 예매했기 때문에 아내를 깨워 준비를 하고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인천으로 향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달 정기 회의 참석을 위해 인천에 올라가야 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방문해야 했던 곳. 하지만 퇴사 후에는 그마저도 사라졌다. 그렇게 세 달 만에 다시 인천을 찾게 되었다.
인천은 나의 고향이다. 오래된 친구들도, 익숙한 거리들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데 벌써 대구에서 자리 잡은 지 14년. 이제는 인천보다 대구가 더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특히, 세 아이 모두 인천에서 태어났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인천은 ‘자신들의 고향’이라기보다 할머니가 계신 아빠의 고향일 뿐이다. 그 사실이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면, 익숙했던 공간도 멀어지고, 새로운 공간이 내 삶의 중심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인천은 이제 내게 어떤 의미일까? 단순한 출생지가 아니라, 기억이 쌓인 장소라는 점에서 여전히 특별한 곳이다.
매월 만나는 30년 지기 모임이 있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친구들, 이제는 가족만큼이나 익숙한 사이. 하지만 작년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단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이번 모임에 또 안 나오면 제명을 하네, 어쩌네 하는 반 협박(?)이 날아왔다. 농담이 섞여 있긴 했지만, 그 말속에는 꽤 진지한 압박이 담겨 있었다. 이쯤 되면 안 갈 방법이 없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아내와 나의 KTX 왕복 교통비까지 챙겨주겠다는 유혹적인 제안이 더해졌다. 이쯤 되면 거부할 명분이 사라진다.
결국, 그렇게 인천으로 향하는 길. 어쩌면 친구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그만큼 내가 빠진 자리가 허전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단순히 오랜만에 얼굴 보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어찌 됐든, 오랜 친구들과의 만남은 늘 반가운 일이다.
이왕 가는 거, 마음껏 즐기다 와야겠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아내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친구들의 협박(?)보다도 아내의 동의를 얻는 것이 더 걱정이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백령도에 가지 못한 아쉬움도 있으니까, 인천 친구들 얼굴이라도 보고 오자."
다행히도, 아내는 흔쾌히 동의했다. 아마도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동대구역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찾은 동대구역.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것이 작년 11월이었는데, 몇 달 사이에 조금은 달라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 생긴 동상, 그리고 곳곳에 어지럽게 걸려 있는 각종 현수막들. 그 속에는 지금의 현실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이념 논쟁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수많은 시민이 함께 하는 공간에 만들어진 공원이 기왕이면 대화와 협력을 통해 조성되었으면 더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광장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동상의 모습은 오히려 그 의미를 퇴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이 내심 불편했다. 마치 나도 모르게 그 흔적들 사이로 생각이 끌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 서둘러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곧장 플랫폼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 인천행의 목적은 친구들과의 만남이니까.
괜한 불편함에 신경 쓰기보다는, 오랜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로 했다.
동대구역은 언제나 붐빈다. 특히, 내일부터 시작되는 3일간의 연휴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사실 이 기차표도 간신히 예매한 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예상 이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로 이동하려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바쁜 일상을 벗어나 잠시나마 쉼을 찾는 듯한 얼굴들. ‘연휴는 연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연휴란, 단순한 휴식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친구들과의 모임은 내일 저녁.
그래서 오늘은 먼저 인천 어머님 댁으로 향한다.
예전에는 업무차 인천에 올라올 때마다 잠시라도 얼굴을 뵙고 갔는데, 퇴사 후에는 그마저도 어려웠다.
그렇게 3개월 만에 어머니를 뵙게 되었다. 전화도 제때 드리지 못하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 현실.
늘 마음 한구석에 죄송한 마음이 쌓여간다.
아내와 함께하는 기차 여행. 정말 오랜만의 동행이다. 기차 안에서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오늘만큼은 책을 덮고 아내와 대화를 나누며 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기차 여행의 필수 준비물인 간식도 챙겼다. 다만, 냄새가 강한 음식은 다른 승객들에게 민폐가 될 수 있으니 최대한 향이 적은 간단한 간식과 커피만 준비했다.
그렇게 인천행 KTX에 몸을 실었다.
기차가 출발하자, 창밖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있는 시간을 갖는다.
오늘 이 여행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아내와의 오랜 대화 속에서 기억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기차의 가장 좋은 점은 정확한 시간을 지킨다는 것이다.
예상대로 광명역에 정확히 도착했고, 우리는 다시 광역버스를 타고 인천 어머니 댁으로 향했다.
현관 앞에서부터 반갑게 웃으며 맞아주시는 어머니.
어머니는 나보다 아내의 안부를 먼저 물으셨다.
"한약은 잘 먹고 있니? 몸은 좀 괜찮아졌어?"
아내는 활짝 웃으며,
"어머님 덕분에 한약 먹고 힘이 넘쳐요."
라고 대답했다. 아내의 환한 미소에 어머니도 환하게 웃으셨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시더니 갑자기 표정이 걱정스러워지셨다.
"너는 왜 이렇게 살이 빠졌니?"
나는 급히 변명하듯 말했다.
"걱정 마세요. 극강의 다이어트로 뺀 살이에요."
그제야 안심하신 듯 다시 웃으며 우리를 반기셨다.
저녁엔 외식을 하려고 했었는데, 우리가 온다는 소식에 이미 음식을 잔뜩 준비하신 어머니. 결국 외식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 앞에 셋이 나란히 앉았다. 오랜만에 함께 앉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나까지. 그 순간만큼은 살찌는 것 따윈 전혀 걱정하지 않고, 배가 터지도록 맛있게 먹었다.
고향이라는 말속에 느껴지는 따뜻함은 이런 장면 속에 숨어있는 게 아닐까 싶다. 따뜻한 식탁, 그리고 마주 보며 나누는 소소한 대화들. 비록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콘크리트 건물 속 아파트에 있지만 오늘의 저녁은 그런 고향의 풍경이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어머니께서 슬쩍 말씀하셨다.
"저녁 메뉴는 낙지볶음 만들어 놨는데 한잔하려면 사 오던가~."
낙지볶음이라...
술 없이는 절대로 먹을 수 없는 음식.
낚지 볶음 자체보다도, 그것과 곁들이는 한 잔이 더 익숙했던 내게는 어머니의 말씀이 다소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하지만 나는 단호했다.
"저, 술 끊었어요."
어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곧 폭풍 질문이 쏟아졌다.
"왜? 어디 아프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네. 정말이야?"
나는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했다.
"네!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가요."
그 순간, 어머니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리고 따뜻한 미소와 함께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잘했다. 여태껏 아들한테 들은 말 중에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내가 술을 끊은 것이 단순히 나만을 위한 변화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오랫동안 바라던 소식이었고, 진심으로 기뻐할 일이었다는 것.
어머니는 오랫동안 아버지의 술 문제로 인해 큰 고통을 겪어온 분이었다. 단순한 술 버릇을 넘어선 깊은 상처가 있었고, 그 상처는 아직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술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자리를 피할 정도로, 어머니에게 그것은 더 이상 마시고 즐기는 것이 아닌 두려움과 고통의 상징이었다.
그런 어머니 앞에서 아들과 며느리는 오랫동안 알코올중독에 가까운 수준의 주당이었다. 어머니는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변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 아들과 며느리가 동시에 술을 끊었다.
어머니에게는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없었을 것이다.
그 기쁨은 어머니의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단순한 생활 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그토록 바라던 변화가 찾아온 순간이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지 않자, 예상치 못한 여유가 찾아왔다.
아내는 기차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일찍 잠들었고, 방 안은 조용했다.
그 고요 속에서, 그는 노트북을 꺼내 일기를 정리하고, 책을 펼쳤다.
오늘 첫 장을 넘긴 책은 조 디스펜자의 <꿈을 이룬 사람들의 뇌>를 선택했다.
얼마 전 하와이 대저택에서 소개했던 책으로 내용을 보자마자 장바구니에 담았던 책이다.
어제 읽었던 슈테판 클라인의 현명한 이타주의자가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100번째 포스팅 된 책이 되었다. 2023년 12월,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을 첫 번째 책으로 시작한 독서가 어느덧 100권이라는 숫자에 닿았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2024년 후반부터였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중요한 순간은 그보다 훨씬 전, 2023년 11월에 있었다.
그때의 나는 결심을 했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다짐. 그리고 실제로 첫 책을 펼쳤다. 그 작은 행동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만약 그때 주저했다면, 만약 변화를 미루었다면,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한 해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고, 또 후회하며, 스스로를 원망하며 새해를 맞이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2025년에도 똑같은 패턴을 반복했겠지.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100권이라는 숫자가 중요하다기보다, 나는 100번의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책을 읽을지 말지, 시간을 낭비할지 투자할지, 과거의 나로 남을지 조금이라도 더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작은 순간들이 쌓여 여기까지 왔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꾸준함이 내게 힘이 되어주었다. 이제 나는 새로운 날을 준비하고 있다. 25년간 망설이기만 했던 도전에 마침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독서였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쌓여 어느덧 100권이라는 숫자에 도달했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더 값지게 느껴진다.
100번째 책 포스팅을 기념하며 ‘베스트 10’, ‘가장 감명 깊었던 책’ 같은 이벤트를 혼자서라도 해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내가 세운 목표에 도달한 것도 아니고, 과정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어쩌면 숫자로 무언가를 정리하는 것보다, 그동안 책을 통해 성장해 온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생각했다. 책으로 시작한 여정이라면, 그 보상도 책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 자신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결론을 내렸다. 새로운 책을 펼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보상이 될 것이다.
100권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올해의 목표는 200권, 그리고 곧 1년 300권이라는 숫자에 도달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숫자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목표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결국 지속성을 만드는 건 의지나 결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마인드 컨트롤이다. 나는 이제 그것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능력이라는 걸 절실히 깨닫고 있다.
지피지기 백전 불태.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이 말이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내가 다스려야 할 ‘나 자신’. 더 정확히 말하면, 내 뇌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목표를 세우고도 작심삼일로 끝났던 순간들, 집중하려 해도 잡념에 휘둘렸던 경험들, 하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몸이 움직이지 않았던 날들. 결국 나는 내 뇌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도 모른 채, 단순한 의지만으로 그것을 통제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뇌를 알면, 내게 필요한 마인드 컨트롤의 방식도 보일 것이다.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 이제, 그것이 다음 목표다.
오늘 선택한 이 책 조 디스펜자의 <꿈을 이룬 사람들의 뇌>는 100권이라는 작은 이정표를 조용히 축하하면서도, 그저 기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음 200권을 향한 준비 과정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 결심을 담아,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첫 장을 펼쳤다.
낯선 공간. 어쩌면 새로운 목표를 세울 때는 환경을 바꾸는 것도 중요한지도 모른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습관을 반복하는 것은 편안하지만, 때로는 익숙함이 나를 정체시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인천이라는 낯선 책상 앞에서 펼치는 한 권의 책을 시작하는 나의 뇌 속에 따스함이 전해오는 느낌이었다.
꿈을 이룬 사람들의 뇌.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결국 내가 궁금한 것도 그거다. 나는 나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꾸준함을 유지하고, 나 자신을 컨트롤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법. 단순한 의지나 결심이 아니라, 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이 책이 그 실마리를 줄 수 있을까? 책장을 넘기면서 기대와 설렘이 스며든다.
2월 예정한 목표의 독서량을 채웠기 때문에 절대로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한 줄 한 줄 의미를 새기며 읽어 내려갔다. 깊은 밤 중간 즈음 마무리하며 오늘 책을 덮었다.
잠자리에 누워 잠시 생각해 보니, 인천 어머니 댁에서 술에 취하지 않은 채 잠든 기억이 거의 없었다.
항상 술 한 잔이 곁에 있었고, 취한 채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익숙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처음으로, 아주 투명한 정신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난 책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는 감사함도 느끼는 마무리였다.
그는 문득, 이 밤이 단순한 하루의 끝이 아니라
그의 삶에 있어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