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감정이 '제2의 고향'이라는 말과 닿아 있다는 걸 깨 달았다.
금주 61일째, 친구 부부의 따뜻한 배려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받았지만, 낯선 침대와 이불, 베개,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공기의 흐름이 내 몸을 낯설게 만들었다. 부드러운 배려 속에서도 어딘가 조금은 어색한 느낌. 공간이 바뀌었음을 내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런 변화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있다. 60일째 이어온 나의 루틴. 어제는 친구들과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고 피곤한 몸을 눕혔음에도, 아침이 오자 내 몸은 언제나처럼 같은 시간에 깨어났다.
장소가 바뀌어도, 환경이 달라져도, 루틴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이번 61일간 몸에 새긴 작은 성취이자, 나를 지탱하는 단단한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몸을 일으켜 거실 앞으로 나갔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앞산이 어둠을 조금씩 걷어내고 있었다. 낯선 공간이지만, 자연은 언제나 같은 리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딘가 안심이 되었다.
창가에 앉아 짧은 명상을 이어갔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동안, 아직 덜 깬 몸과 마음이 천천히 자리를 잡아갔다. 이어 노트북을 열어 일기를 정리했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주변의 낯설음도, 어제의 피로도 모두 잊혔다. 그렇게 내 하루의 첫 순간을 기록한 뒤, 다시 노트북을 덮었다.
방으로 돌아와 조용히 다시 눈을 감았다. 아주 잠깐만 더, 이 평온한 순간 속에서 머물고 싶었다.
늦은 밤까지 친구들을 맞이하고, 떠난 자리까지 정리하느라 우리보다 더 늦게 잠든 친구 부부. 그들의 깊은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조용히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작은 속삭임조차 깨질 듯한 고요 속에서, 현관문이 부드럽게 닫혔다.
이른 아침 공기가 여전히 차가웠다. 아내와 나란히 걸어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후, 광명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이번 여정의 끝자락을 음미했다.
광명역에서 KTX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향하는 동안, 기차의 규칙적인 진동이 온몸을 감쌌다. 짧은 잠에 덮인 몽롱한 피로감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일정한 루틴처럼 이어지는 움직임이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서울을 벗어나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는 길, 한순간 한순간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기차가 서서히 멈추고, 동대구역 광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치며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집에 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아내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집에 오니까 좋다, 그치?"
아직 집 문을 열지도 않았지만, 그녀의 말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대구역에 도착했을 뿐인데도 집에 온 듯한 편안함. 나는 그 감정이 '제2의 고향'이라는 말과 닿아 있다는 걸 깨 달았다.
고향은 단순히 태어난 곳 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익숙한 풍경, 편안한 공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
어머니와 친구들이 있는 인천에서 받은 따뜻한 위로도, 다시 돌아온 이곳에서 느끼는 안온함도 결국 같은 감정의 결이다.
고향은 몸이 먼저 알아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왠지 모르게 따뜻한 안정감을 주는 곳. 그렇다면, 오늘부터 다시 이곳에서 새롭게 위로 받으며 일상을 살아가면 된다. 흔들릴지 언정, 결국 나를 지탱해 주는 건 익숙한 하루의 흐름, 그리고 그 속에서 찾아가는 작은 평온일 테니까.
역 광장에 내려선 순간, 아내는 화장실로 향했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가만히 서서 동대구의 바람을 느꼈다. 차갑지만 익숙한 공기. 폐 깊숙이 들어오며 ‘집에 돌아왔다’는 감각을 되새겨 주는 공기였다.
그때였다. 광장 끄트머리에서 커다란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찬바람 속에서 외치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확성기를 타고 더욱 크게 울렸다.
순간, 내 안의 공기가 흔들렸다. 몸속으로 들어오는 고향의 공기와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이 낯선 풍경이 만들어내는 묘한 간극. 고향은 언제나 따뜻하기만 한 곳이 아니었다. 같은 장소에서도 느껴지는 감정은 결코 한결같지 않다는 걸,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고,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었다. 고향은 공기처럼 변함없이 나를 감싸지만, 그 속에서도 변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그래도 결국 나를 안아주는 곳으로,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막내는 외출 중이었고, 집을 지키고 있던 후츄가 우리를 맞이했다. 두툼하게 부어오른 얼굴로, 이틀 동안 어디를 갔다 왔냐는 듯 서운한 기색을 한껏 담아 냥냥거리며 다그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내를 향해 다그쳤다. 나는 철저히 그의 관심 밖이었다.
서운함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퉁퉁 부은 얼굴로 애교 섞인 불평을 쏟아내는 후츄를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집이 최고다. 그 어떤 낯선 공간도, 그 어떤 풍경도 집이 주는 이 편안함을 대신할 순 없었다.
버스에서, 기차에서, 그리고 지하철에서 내내 이동하며 쌓인 피로가 밀려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후츄의 시선을 아내에게 빼앗긴 서러움을 뒤로하고, 나는 소파에 몸을 기대어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익숙한 공간, 익숙한 공기, 그리고 익숙한 고양이. 비로소 완전히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면서, 우리 셋은 각자의 속마음 속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나는 솔직히 저녁을 차리는 게 귀찮았다. 요리를 하고, 설거지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막내는 이틀 동안 혼자 대충 끼니를 때웠으니 집밥보다는 뭔가 색다른 걸 먹고 싶어 했다. 아내는 빨리 저녁을 해결하고 휴식을 취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셋의 시선이 묘하게 교차되었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였다.
"나가서 먹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돌아온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저녁만큼은 집 바깥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집 밥도 좋지만, 때로는 이렇게 게으름과 편안함을 택하는 것도 삶의 작은 행복이니까.
집을 나서려는데,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에서 조용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불빛 아래 빗방울들이 흩어지며 반짝였다. 우리는 서둘러 우산을 챙겼다.
인근 식당에서 막내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따뜻한 국물 한 숟가락이 몸속으로 스며들자, 긴 하루의 피로가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집밥을 포기한 대신 얻은 작은 여유였다.
돌아오는 길, 찬 바람에 흩날리는 빗줄기가 얼굴을 스쳤다. 손끝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공기. 이 정도면 굳이 일기예보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일도 분명 춥겠구나.
오랜만에 집을 비운 2박 3일간의 짧은 여정이 끝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여운은 제법 묵직했다. 낯선 공간에서의 소소한 불편함도, 익숙한 곳으로 돌아온 안도감도, 그리고 여행의 끝자락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피로까지.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이제 다시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낯익은 공간에서 변함없는 루틴을 이어가며, 내 안의 작은 꾸준함을 쌓아갈 시간. 이틀간 잠시 쉬었던 뇌의 신경망을 다시 깨우기 위해, 오늘 밤은 조 디스펜자의 <꿈을 꾸는 사람들의 뇌> 를 잠시 읽으며 마무리했다. 흐트러졌던 감각을 다시 조율하고, 깊어진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어제의 다소 불편했던 잠자리를 보충하기 위해, 오늘은 일찍 하루를 접기로 했다. 익숙한 침대, 부드러운 이불, 그리고 집만이 줄 수 있는 편안한 공기 속에서. 모든 걸 정리한 뒤 천천히 눈을 감으면, 이틀 간의 여행도, 하루의 피로도 조용히 몸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