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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순간 부끄러운
아빠의 모습을 보였다

손에 담긴 마음보다, 책의 크기에 먼저 시선을 두었다.

by 마부자

금주 64일째, 어제 늦게 잠든 여파는 아침이 되자마자 온몸으로 밀려왔다. 평소처럼 가뿐하게 눈을 뜨는 대신, 무거운 이불 속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밴 탓인지, 작은 변화에도 이렇게 쉽게 흔들린다.


요즘의 루틴은 나름 정돈된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저녁 7시 전에 식사를 마치고, 늦어도 10시 30분 전에 잠드는 것. 그렇게 하면 아침이 가벼웠다.


그런데 어제는 볼링 모임이 길어졌고, 결국 10시가 넘어서야 늦은 저녁을 먹었다. 속이 무거운 채로 집에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인 시간은 11시.


잠시 뒤척이긴 했지만, 다행히 금세 잠들었다. 그러나 몸은 정직했다. 모든 루틴이 세 시간씩 밀린 것을 먼저 감지한 건, 다름 아닌 내 몸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무거운 피로감이 몰려왔고, 그 익숙한 불편함 속에서 나는 곧장 깨달았다. 습관이라는 건 이렇게나 정직한 것이구나.


그래도 6시에는 몸을 일으켰다. 짧게 나마 명상을 마친 후 책상에 앉아 남은 루틴을 하나씩 채워나갔다. 어제 늦게 잤으니 오늘은 늦잠을 자도 된다는 핑계를 대고 싶었지만, 결국 스스로를 설득해 일어났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루틴이 완벽하게 내 것이 되었다면, 늦게 잤어도 아침을 흔들림 없이 맞이했을까? 아직은 내 뇌가 이 습관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머릿속 전두엽에 더 강한 신호를 보내보기로 했다. 꾸준함을 유지하자, 흔들리지 말자. 그런 다짐을 하며 책을 펼친다. 익숙한 종이의 질감, 활자의 고요한 무게가 마음을 다시 단단하게 해주는 것 같다.


어제 완독한 <꿈을 이룬 사람들의 뇌>에 대한 서평을 작성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형광펜 자국과 페이지를 접어둔 흔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 걸려 읽은 만큼, 그 안에는 그 순간순간의 감정과 깨달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밑줄을 그으며 공감했던 문장들을 다시 훑어보자, 당시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마치 그때의 나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몇몇 페이지를 접어둔 이유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순간이 찾아왔다. 불과 5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가물가물해진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 충격이었다. 나는 아직 독서를 깊이 있게 소화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걸까? 잠시 자책하다가, 문득 고명환 작가의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에서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저자는 니체의 사상을 빗대어 독서의 단계를 낙타-사자-어린이로 나누었다.

나는 이제 겨우 100권을 읽었을 뿐인데, 스스로를 사자의 단계에 들어선 독서가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잠시 우쭐했던 나를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독서는 단순히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고 삶에 녹여내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조 디스펜자의 이 책은 올해 목표한 200권을 모두 읽고 난 뒤, 반드시 다시 펼쳐볼 책으로 정했다.


1순위 재독 리스트에 올려두며, 서평을 남긴 책을 조용히 책장에 꽂는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을 때, 나는 과연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까. 지금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이 책을 마주하게 될 날이 기다려진다.

(책의 자세한 내용과 줄거리는 “마부자의 책방”에서 확인 부탁드립니다.)

조 디스펜자 / 꿈을 이룬 사람들의 뇌 / 성.. : 네이버블로그


책을 읽으며 처음 접한 의학 용어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심적 시연, 전두엽, 신경 가소성 이 세 단어는 유독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단순히 흘려듣는 개념이 아니라, 뇌의 변화를 위해 반드시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 핵심 원리처럼 느껴졌다.

첫째, 우리의 뇌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 점을 제대로 활용하면 원하는 변화를 더욱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그동안 나는 ‘생각’이라는 것을 일종의 자기 최면이나 막연한 긍정론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꿈을 이룬 사람들의 뇌>를 통해, 그것이 단순한 희망적 사고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증명된 변화의 도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변화란 무엇으로부터 시작될까? 내가 신, 우주, 영혼과 같은 존재에게 간절히 소망하면, 언젠가 신비로운 힘이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믿음을 과학적으로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간절한 바람이 현실이 되는 것은 신의 개입이 아니라, 내 뇌 속 뉴런들의 시냅스가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행동을 유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외부의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내 안의 에너지다. 심적 시연을 통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이미지는 신경망을 다시 연결하고, 결국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막연함 속에서 불안해하지 않는다. 변화는 기적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둘째, 전두엽의 엄청난 능력이다. 나는 이 작은 뇌의 한 부분이 이렇게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몰랐다. 전두엽은 단순한 사고 기능을 넘어, "뇌의 CEO" 역할을 한다. 논리적 사고, 감정 조절, 자기 통제, 창의적 문제 해결까지, 결국 우리가 원하는 변화는 전두엽이 주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전두엽의 능력을 향상시키면 인간의 잠재적 유전자의 98.5%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타고난 유전자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두엽을 제대로 활용하면, 내가 가진 가능성의 거의 전부를 깨울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열쇠는 내 안에 있었다. 나는 신이나 운명을 탓할 필요가 없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내 전두엽을 어떻게 활성화하느냐가 나의 성공을 좌우한다. 그 것 이야말로 내 삶을 변화시키는 핵심이었다.

셋째, 신경 가소성이라는 단어다. 이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우리의 뇌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하는 유기적인 존재라는 사실. 쉽게 말해, 반복적인 훈련과 경험을 통해 뇌의 구조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나이가 들면 뇌가 굳어버린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현대 뇌과학은 그 믿음을 뒤집었다. 뇌는 평생 동안 변화할 수 있으며, 우리가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신경 회로가 새롭게 구성된다. 다시 말해, 습관과 의지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앞으로 "나이를 먹어서 머리가 굳었다"는 말을 평생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것이 단순한 핑계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중년인 내게 ‘나이 핑계를 댈 수 없다’는 현실은 씁쓸한 두려움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또 다른 희망이기도 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그것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는 점에서 이 깨달음은 더욱 깊게 와닿았다.


나의 뇌는 여전히 성장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내가 그것을 얼마나 꾸준히 활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500페이지의 모든 내용을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3일간의 일기를 통해 핵심을 정리하는 과정 자체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책을 읽고 그대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 되새기고 정리하는 시간이야말로 진짜 내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자연스럽게 연재 아닌 연재 형식을 빌려 일기를 썼다. 때로는 기록이 단순한 개인적인 회고를 넘어, 더 넓은 의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을 글로 남기는 과정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내가 더 나아지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다시금 확신했다. 읽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포스팅을 마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뜨거워진 뇌를 식히는 시간을 가졌다. 글을 쓰는 동안 온 신경이 집중되었던 탓일까.


커피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책을 펼쳤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이 책을 읽게 된 건 막내 덕분이다.

어제 저녁, 고3이라는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책상을 정리하던 막내가 뜬금없이 나에게 물었다.

“아빠! 어린 왕자 읽으셨어요?”


나는 순간 멈칫했다. 이토록 유명한 책이지만, 아직 읽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직 못 읽었는데 곧 읽으려고, 왜요?”


그러자 막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이거 제가 읽었는데 아빠도 꼭 읽어보세요.”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두 권의 책을 내밀었다. 그중 한 권이 바로 <어린 왕자>였다.

나는 순간 묘한 감정을 느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사실 이 책은 내가 조만간 읽어보려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책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선물 아닌 선물을 받게 된 것이다.


막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자신이 먼저 읽고 감동했던 책을 아빠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 그 따뜻한 마음이 감사해서, 책을 손에 쥔 순간 한동안 묵직한 감정을 느꼈다. 한 권의 책이, 그저 책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이 되어 전해질 수도 있구나.


그런데 막내가 건네준 <어린 왕자>는 일반 책과는 달리 작은 미니북이었다. 순간 나는 크기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이건 요약본인가?” 하고 지레짐작했다. 손에 쥔 순간, 뭔가 기대와 다르다는 표정이 나도 모르게 드러났던 모양이다.


그때 막내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바로 말을 덧붙였다.

“휴대하기 편하게 작게 나온 거예요. 내용은 똑같아요!”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작은 크기의 책이라는 이유로 요약본일 거라고 단정 짓던 내 모습을.

어떤 것은 작아도 온전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막내에게 사과했다.

책의 크기를 보며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은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아빠에게 자신이 읽었던 책을 건네는 아이의 손은 자랑스럽고 대견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손에 담긴 마음보다, 책의 크기에 먼저 시선을 두었다.

이 얼마나 사소하고도 어리석은 선입견이었을까.


막내가 내민 책을 다시 손에 쥐었다. 이제는 조금 더 조심스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책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의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걸, 그리고 책을 건네는 마음이 더 소중하다는 걸, 오늘 막내에게 배웠다.


그렇게 소중한 책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첫 장을 넘겼다.


여기서 부끄러운 사실을 하나 더 고백하자면, 나는 이번이 <어린 왕자>를 처음 읽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너무 유명한 책이기에, 언젠가는 읽었을 것만 같은 착각 속에 있었지만, 실은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이라고는 "다른 별에서 온 어린 왕자가 지구에 와서 겪는 이야기" 정도였다. 블로그에서 좋은 글귀 필사로 몇 번 스쳐 지나갔거나, TV 프로그램에서 가끔 본 기억이 전부였다. 정작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막내가 건넨 미니북을 펼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처음으로 읽는 <어린 왕자>.


그 작은 책 속에 담긴 메시지는 예상보다도 훨씬 깊고 철학적이었다.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가득한 이야기였다.


주인공과 어린 왕자가 나누는 문답을 따라가며, 나는 자연스럽게 세대를 넘어선 시선 차이를 느꼈다. 어른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해 어린 왕자는 의문을 던지고,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심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열렸다.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이 책을 읽는 시점에 따라 느끼는 것이 다를 수도 있겠구나. 어릴 때 읽었더라면 그냥 예쁜 이야기로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서평은 내일 작성하기로 했다.


오늘은 책이 내게 던진 여운을 조금 더 깊이 느끼며, 그 감정을 충분히 머금어두기로 한다.


운동을 시작했다. 늘 유튜브 영상을 보며 운동을 하던 터라 자연스럽게 앱을 실행했는데, 뜻밖에도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오늘 올린 서평 영상이 문제였던 걸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쩌면 오늘은 영상 없이 운동하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용히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귀로 들려오는 음악도, 눈앞에 펼쳐지는 영상도 없이,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까 읽었던 <어린 왕자>가 떠올랐다.

어린 왕자가 지구별에서 만났던 사람들.

왕, 허영심 많은 남자, 술꾼, 사업가, 가로등을 켜는 사람, 지리학자…


그들과의 대화를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나는 이 인물들이 현실 속 누구를 닮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혹시 나는 그들 중 하나처럼 살고 있지는 않을까? 세상을 너무 복잡하게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은 깊어졌고, 몸속에서는 땀이 흘러나왔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아니라, 내면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운동을 마치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오늘은 오히려 영상 없이 운동하길 잘한 날이었다.

때로는 외부의 자극 없이 스스로의 생각에 집중하는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린 왕자가 내게 던진 질문들을 조금 더 곱씹으며, 그렇게 오늘의 운동을 마무리했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책상에 앉아 미뤄두었던 책, 생필품, 소모품들을 주문했다. 원래는 금방 끝날 일이라 생각했지만, 요즘 온라인 쇼핑을 하다 보면 가격 부담이 꽤 크다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된다.


퇴사 후 아직까지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운 상황은 아니지만, 물가 상승이 체감적으로 주는 압박은 상당하다. 생필품 하나를 사더라도 예전처럼 가볍게 장바구니에 담을 수가 없다.


후추 모래, 점심 대용으로 먹을 계란과 두유, 칫솔과 치약.

늘 쓰던 것들이지만, 하나같이 작년 말보다 가격이 올랐다.

장바구니에 하나씩 담을 때마다 가격표를 다시 확인하게 되고, "이렇게까지 올랐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장바구니에 담기가 무서울 정도"라는 말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작은 소비에도 신중해지는 나 자신을 보며, 지금은 아껴야 할 시기라는 걸 다시금 되새긴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하는 습관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겠다.


아내가 퇴근을 하고, 우리는 둘만의 저녁을 먹었다.

막내 없이 둘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게 어색한 감정이 든다.

불과 몇일전까지 늘 저녁은 셋이서 함께 했었다.

그러나 막내는 오늘부터 고3이 되어 야간 자율학습을 위해 학교에서 저녁을 먹는다.


예전엔 온 가족이 다섯 명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던 날들이 있었다.

큰아이가 독립하고, 둘째는 군에 가고, 이제 막내마저 저녁을 함께하지 않는다.

올해가 지나 막내까지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 아내와 나, 우리 둘만의 저녁이 더 많아질 것이다.


오늘도 특별한 음식이 아니었다. 늘 먹던 반찬, 익숙한 상차림이었다. 그런 음식들을 내 앞에 마주 앉아 맛있게 밥을 먹는 아내의 모습이 문득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괜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내는 내가 갑자기 웃자, 장난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뭐 묻었어?”


나는 그냥 웃으며 대답했다.

“밥 먹는 게 예뻐서 쳐다보는 거야.”


아내는 눈을 찡긋하며 되물었다.

“왜 그러냐! 또 뭔 사고 쳤냐?”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나는 그냥 웃었고, 아내도 피식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소박하지만 배부른 저녁을 먹고, 정리를 마친 후 소파에 앉아 오늘 하루를 나누었다.

아내는 볼링대회를 시청하고, 나는 책상에 앉아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마무리했다.


조용한 저녁이었다. 하지만 함께 여서, 충분히 따뜻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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