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과정을 충실히 밟아가고 있기에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금주 65일째, 몸을 일으켜 앉아 자리를 잡고, 천천히 눈을 감는다.
여전히 희끄무레한 어둠이 창밖을 감싸고 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고요 속으로 스며든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천천히 눈을 뜨면 놀랍도록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좀 전 까지만 해도 어둠에 잠겨 있던 창밖이 어느새 서서히 밝아진다. 미묘한 빛의 변화가 공간을 새롭게 물들이고, 공기 마저도 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요즘은 같은 장소에 앉아 있지만, 명상 전과 명상 후의 세계는 확연히 다르게 다가온다.
이런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지금 이 계절을 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계절이 바뀌고 새벽이 어둠에서 빛으로 바뀔 때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스며드는 이 순간처럼, 나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내면의 나와 대화를 나누고 눈을 뜨면 세상은 어느새 밝아져 있다. 어둠 속에서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눈 뒤 마주하는 이 빛이, 단순한 아침 햇살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아직은 불안한 내게 그 한 줄기 빛이 감싸며 위로하는 듯하다.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모든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고 있다.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순간들이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태도가 내 삶을 조금씩 바꿔놓고 있다.
오늘도 그랬다. 새벽 명상을 마치고 천천히 눈을 떴을 때, 창 너머로 스며든 아침 햇살이 유독 깊이 다가왔다.
이렇게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갈 수 있음에, 그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 마음을 안고 책상 앞에 앉았다.
이웃들과 공감을 나누고 어제 읽은 책 <어린 왕자>의 서평을 작성해 포스팅을 완료했다.
아들에게서 받은 작은 책 한 권이 이렇게 깊은 감동을 줄 줄은 몰랐다. 책장을 넘길수록, 나는 어린 왕자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어른인 내게 조용히 질문을 던졌고, 나는 답을 찾으려 애쓰다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린 왕자가 만난 어른들의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았다. 권력에 집착하는 왕, 칭찬만을 원하는 허영꾼, 의미 없는 숫자에 집착하는 사업가, 현실을 회피하는 술주정뱅이, 무의미한 규칙을 따르는 가로등지기, 직접 경험하지 않고 지식만 쌓는 지리학자.
모두가 어딘가에서 본 듯한, 혹은 내 안에도 있을지 모를 모습들이었다.
아이들은 이런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한때 우리도 어린아이였음을 생각하면, 어쩌면 문제는 ‘더 이상 아이처럼 세상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그렇게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
어린 왕자는 우리가 잊고 있던 질문을 던진다.
"왜 어른들은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할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왕자가 뱀을 만나고 지구를 떠나는 순간.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는 다시 자신의 별로 돌아가 장미와 화산, 별들과 함께할 것이다. 마치 삶과 죽음이 같은 선상에 놓여 있으며, 끝은 새로운 시작임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 장면은 단순히 이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보이지 않더라도 여전히 우리 곁에 있고, 우리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면 그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장면은 얼마전 읽었던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느꼈던 감정이 겹쳐지면서 더욱 내게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 중 하나는, 시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는 점이었다.
비행사의 시점에서는 인생의 성찰이, 어린 왕자의 시점에서는 순수한 질문들이, 꽃의 시점에서는 사랑의 변덕스러움이, 여우의 시점에서는 관계의 깊이가 보였다.
한 권의 짧은 이야기 속에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생텍쥐페리의 깊이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덮으며 다시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떤 시선으로 어린 왕자를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그가 남긴 메시지는 단순한 동화 속 문장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었다.
어린 왕자는 사라졌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어쩌면, 우리도 가끔은 어린 왕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되찾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내게 그 어떤 책보다도 더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단순히 막내가 선물해 주어서가 아니다. 책의 중간중간, 막내가 직접 읽으며 자신의 느낌을 적어 놓은 작은 메모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 속의 깊이 있는 문장을 따라가다 문득 막내의 흔적을 발견했을 때, 나는 두 번 놀랐다. 한 번은 책이 전하는 울림 때문이었고, 또 한 번은 아이의 시선에서 나온 짧은 메모들이 주는 뜻밖의 감동 때문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이 확실히 내가 생각 할 수 없는 순수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막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문장을 읽었을지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그 흔적들이 쌓여, 이 책은 내게 단순한 활자가 아니라 귀한 보물이 되었다.
가슴 깊이 그 따뜻함을 담아두고, 나는 조용히 운동을 시작했다.
어제 접속 불량으로 보지 못한 BJ포그의 <습관의 디테일>에 관한 포그 행동모형의 2부를 연결해 시청을 시작했다. 첫 날 B=MAP라는 공식으로 행동을 시작하려면 필요한 세가지 방법에 대한 이야기 중 첫번째 동기와 능력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고 오늘 2부는 자극(신호)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1. 스타터 단계를 받아들일 것
2. 행동을 축소할 것
행동을 하기 위한 자극(신호)를 받기 위해 우리는 너무 큰 목표를 정하고 결국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도한 목표로 인해 포기하는 악순환을 계속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조급하게 기대치를 올리지 말고 작은 스케줄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작은 행위를 당장 시작하는 것으로 행동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완벽 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시작하라는 것, 예를 들면 달리기를 하는 목표를 정했는데 도저히 달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일단 운동화라도 신으라는 것이다.
이 작은 행위는 저자의 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이미 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성공적인 행동 방식이었기에 더욱 공감이 갔다.
운동을 하려고 마음먹는 순간, 내 머릿속 전두엽은 어김없이 유혹을 시작한다. ‘무릎이 좀 불편한 것 같은데?’, ‘아, 맞다. 해야 할 일이 있었지!’, ‘빨래도 아직 안 했잖아.’ 온갖 합리적인 핑계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나는 이 패턴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다짐한다. 좋아, 그럼 일단 운동복을 입고 빨래를 하자!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옷을 갈아입는 순간 빨래는 뒷전이 되고, 자연스럽게 런닝화를 신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자전거 위에 올라탄 나를 발견한다.
나는 매일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쌓아가고 있다. 그러니 저자의 말이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이미 내 일상에서 검증된 진실처럼 다가온다. 행동이 모든 걸 바꾼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몸으로 배우고 있다.
영상과 내 생각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순간, 나는 더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땀이 흐르고, 근육이 뜨겁게 반응하는 그 감각이 나를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운동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재빨리 집안일을 끝냈다. 오늘은 오후에 오랜만에 특별한 약속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 직장에서 함께했던 소중한 후배 두 명이 대구까지 나를 만나러 온다. 우리는 같은 직장에서 20년 가까이 함께하며 끈끈한 우정을 쌓아왔다. 비록 지금은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 인연은 변함이 없다.
전라도 광주에서 올라오는 후배는 같은 업종에서 사업을 시작해 사장이 되었고, 울산에서 오는 후배는 완전히 다른 업종으로 이직해 임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길을 만들어온 그들이, 오늘 나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우리는 예전처럼 마음껏 웃고,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변하지 않은 우정을 확인할 수 있겠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람들. 오늘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사실 나이 차이도 크지 않고, 직장에서 서로 허물없이 지내던 사이였기에 ‘후배’라는 표현이 낯설 정도로 편한 친구들이었다. 함께 일하던 시절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간을 보냈지만, 퇴사 후에는 연락도 제대로 못 하고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 거리에서 일부러 나를 보러 와 준다니. 그 배려와 정성이 너무 고마워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물론 아무리 가까운 친구들이라도, 금주만큼은 확실히 지킬 것이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내가 금주를 실천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술자리로 인해 신경 쓰일 일은 없다. 오히려 서로 응원해 주는 분위기 속에서 더 편안하게 만남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만남이 더없이 소중한 이유는, 우리가 오랜만에 함께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삶을 묵묵히 걸어온 시간들 속에서도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금주든, 새로운 도전이든,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사이니까.
모든 루틴을 마치고, 샤워를 한 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을 한 번 비추어 보고는 집을 나섰다. 오늘을 위해 미리 예약해 둔 숙소로 친구들을 픽업하러 가는 길, 오랜만에 만날 생각에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숙소 앞에서 두 사람을 마주한 순간,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며 자연스럽게 웃었다. 반가움이 온몸으로 퍼졌다. 악수를 나누고, 가볍게 포옹하며 인사를 건넸다.
퇴사하기 전에도 바빠서 자주 보지 못했으니, 거의 1년 만에 만나는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무색할 만큼, 우리는 여전히 편안했다.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동안, 찬 바람이 옷깃을 스쳤다. 하지만 그 바람조차 우리의 반가움을 식히지 못할 만큼, 우리 만남은 따뜻했다. 자연스럽게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 두 사람이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선배, 살이 너무 많이 빠진 거 아니에요?”
“그러게, 괜찮아요? 어디 아픈거 아니죠? 근데 사실 얼굴빛은 더 좋아졌네요.”
그들은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곧 밝게 웃으며 덧붙였다.
“확실히 술 끊은 효과인가 보네요.”
나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자신도 느끼고 있는 변화였다. 몸은 가벼워졌고, 머리는 맑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같은 날을 더욱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내가 되어 있었다.
나이를 떠나, 정말 오랜만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만난 친구들이었다. 직장에서는 상사와 부하 직원이라는 역할이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그저 오랜 인연을 공유하는 친구로 마주 앉았다.
한때는 함께 일하며 기쁨도 나눴지만, 때로는 서로에게 서운했던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시절의 이야기들을 꺼냈다.
“그때 진짜 서운했어요, 선배.” 장난스럽게 말하면서도, 그 말 속에는 묵혀 두었던 감정이 살짝 묻어 있었다.
나 역시 그 시절을 돌아보며 웃었다. “그래, 나도 너희한테 미안했던 거 많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감정을 가볍게 풀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더욱 값진 것이었다.
눈앞의 친구들은 더 이상 내 부하 직원이 아니라, 어엿한 개인사업자로, 혹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임원이 된 당당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말과 태도에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노력해 온 시간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 이렇게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났다. 더 이상 직장의 울타리 안에서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각자의 길을 걸으며, 서로를 응원하는 관계가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당당한 모습에, 나는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마치 성공한 제자가 스승을 찾아왔을 때 밀려드는 감정이 이런 것일까?
나는 잠시 그런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함께 치열한 시간을 지나왔고, 서로의 성장 과정을 지켜봐 왔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더 큰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당당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이제는 각자의 길 위에서 빛나고 있는 모습이 그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정말 고맙다. 이렇게 일부러 찾아와 줘서.”
나는 다시 한번 두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전했다. 긴 거리도, 바쁜 일정도 마다하지 않고 나를 보러 와 준 그들의 마음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눈 대화와 웃음들이, 앞으로도 우리 사이를 단단히 이어줄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우정이 있다는 것, 그리고 함께 성장해 갈 수 있다는 것. 그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순간이었다.
아직 이른 나이에 회사를 떠난 내가 걱정스럽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후배들. 하지만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어설픈 강한 척이 아니라, 진짜 당당한 마음으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패배자가 아니다. 세상의 어려움에 밀려 도망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세상을 위해 잠시 뒤로 물러서 전열을 정비한 상태였다.
전쟁 같은 삶 속에서, 나는 부족한 나를 발견했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계속 싸운다면, 결국 진짜 패배자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스스로 한 걸음 물러나 내 부족한 점을 채우는 것.
누구도 나를 세상 밖으로 밀어낸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의지로 잠시 멈추었고, 고민했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과정을 충실히 밟아가고 있기에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후배들은 나의 말을 조용히 듣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스러운 눈빛은 어느새 사라지고, 대신 이해와 응원의 눈빛이 번졌다. 나는 그제야 안심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 자리는 서로가 살아온 시간을 나누는 자리였고, 나는 그 속에서 내 걸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었다.
20년의 추억을 단 몇 시간 안에 모두 풀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이야기 끝에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졌고, 웃음소리와 가끔씩 나오는 깊은 한숨까지도 서로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3차까지 자리를 옮겨가며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내일이 되기 전. 아쉽지만 이제는 인사를 나눠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짧지만 묵직한 인사말들이 오갔다. 손을 흔들며 뒤돌아서는데, 괜히 가슴 한쪽이 뻐근해졌다.
내일이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오늘만큼은 우리는 20년 전 젊은 시절의 직장 동료로 돌아가 있었다. 한때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고민을 하며 버텨냈던 시절. 그리고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금. 그 모든 시간이 모여, 오늘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음을 느낀다.
아쉬움을 가득 안고, 나는 조용히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이 추억을 마음 깊이 새긴 채, 다시 내 걸음을 이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