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금주 67일째, 66일을 지나왔다는 사실이 몸을 가볍게 한다. 여전히 아침마다 작은 싸움을 치르지만, 오늘은 비교적 쉽게 몸을 일으켰다.
명상과 루틴을 마친 뒤 자연스럽게 책상 앞에 앉는다. 습관이 된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 어떤 날은 의지가 필요하지만, 또 어떤 날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어제 오후, 잠시 덮어두었던 책장을 다시 펼친다.
그리고 나는 1909년 10월의 하얼빈으로 이동한다. 안중근 의사의 숨결이 닿아 있던 그 순간으로. 책을 읽을 때마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기분이 든다. 종이 위에 적힌 문장들은 단순한 활자가 아니라,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는 마법 같은 통로처럼 느껴지는 이 순간이 좋다.
생각을 적어본다.(책의 자세한 줄거리는 “마부자의 책방”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처음 이 책을 추천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단순했다.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라면 그의 삶을 관통하는 더 직접적인 제목도 가능했을 텐데, 왜 하필 하얼빈일까?
책장을 넘기면서도 그 질문은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책을 덮은 순간, 나는 그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한 명의 독자로서,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일 뿐이지만.
하얼빈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자, 하나의 결심이며, 한 인간이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담긴 장소였다. 그리고 어쩌면, 그곳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김훈의 하얼빈은 1909년 10월 26일, 그 운명의 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이 나온다는 건 당연한 흐름이지만, 정작 그 순간은 몇 페이지 만에 휘몰아치듯 지나가 버린다.
처음에는 조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야기의 정점이 너무 빠르게, 너무 조용히 끝나버린 것처럼. 이토 히로부미를 향한 방아쇠는 한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을 향해 걸어온 안중근의 시간은 길고도 무거웠을 것이다.
하얼빈은 그저 한 발의 총성이 아니라, 그곳으로 걸어 들어간 한 인간의 모든 감정과 신념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얼빈으로 향한 사람은 안중근 혼자가 아니었다.
김훈의 하얼빈은 단순히 한 명의 의거를 조명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죽으러 가는 자와 죽이러 가는 자, 그리고 그들의 삶과 맞닿아 있던 가족과 주변인물들까지 소설은 그들의 발걸음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따라간다.
하얼빈은 그저 한 장소가 아니라, 어떤 이들에게는 끝이자 시작이었고, 어떤 이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마주침이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신념을 안고 갔고, 누군가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갔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 사건이 남긴 파문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김훈의 하얼빈을 ‘하얼빈으로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석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수많은 이들의 궤적이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풍경이었다.
하얼빈으로 향하는 길 위에는 각기 다른 목적과 운명을 짊어진 사람들이 있었다.
대한민국을 무너뜨린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안중근과 그의 동지 우덕순.
조선을 일본의 영토로 완전히 편입시키기 위해 마지막 확인을 받으러 가는 이토 히로부미.
남편의 연락을 받고, 그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예감을 안고 하얼빈으로 달려가는 김아려와 세 자녀.
그리고 동지의 부탁을 받아 안중근의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정대호.
비록 직접 하얼빈에 가지는 못했지만, 안중근이 그곳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알면서도 말리지 못했던 신부 빌렘. 그는 단지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얼빈에서 전해져 올 소식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안중근의 가족들.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얼빈을 향해 있었다. 누군가는 직접 발을 디뎠고, 누군가는 멀리서 그곳을 바라보았으며, 또 누군가는 돌아올 수 없는 길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했다.
하얼빈은 단지 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각자의 이유로 모여든 하나의 지점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날을 향해 걸어갔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결단과 흔들림, 그리고 그들이 남긴 여운이 켜켜이 쌓인 곳.
그래서 나는 김훈의 하얼빈을, '하얼빈으로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기억하게 되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이는 안중근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김훈의 하얼빈은 그 한 발의 총성이 울리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싸운 수많은 독립 영웅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았다.
그날 그 자리에 안중근이 서 있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은 그의 신념과 결단뿐만 아니라, 그를 돕고 지탱한 수많은 사람들의 힘이었다.
책을 펼치고 첫 장을 읽는 순간부터 가슴이 뜨거워졌다.
일본 천황 메이지가 대한제국의 황태자 이은을 맞이하는 장면. 그것은 그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읽는 이의 심장을 거칠게 흔드는 현실이었다.
나라를 빼앗긴 황태자가 정복자의 궁정에 끌려가 맞이하는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그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분노를 느꼈다.
이 책을 읽는 대한민국의 독자라면, 아마 누구나 비슷한 감정을 경험할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이고, 잊어서는 안 될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하얼빈은 한 사람의 의거를 넘어, 그 시대를 함께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 책이 다른 역사 소설과 결을 달리하는 지점은 단순히 독립운동가들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중근과 동지들이 하얼빈으로 향하는 장면만큼이나, 작가는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으로 가는 여정을 촘촘히 따라간다.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 아니 대한제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토의 시점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소설이 가지는 특별한 무게다. 한 나라를 집어삼킨 제국의 권력자가 바라보는 식민지 조선의 풍경, 그의 머릿속에서 조선의 운명이 어떤 계산 아래 놓여 있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감정을 외면할 수 없다.
가련한 대한제국의 황태자 이은을 마치 동정이라도 하듯 측은하게 바라보는 이토. 고려가 망한 마지막 장소에서 사진을 찍으며 조선도 같은 운명이라며 비웃는 이토. 조선의 불행을 ‘선진국’ 일본이 책임져야 한다고 자부하는 이토. 문맹국 조선을 발전시키기 위해 자신이 애쓰고 있다고 스스로를 ‘영웅’이라 칭하는 이토.
그의 독백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숨이 턱 막힌다. 그것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제국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만행을 정당화하는 방식 자체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논리는 치밀했고, 자신들이 행하는 약탈과 지배를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데 능숙했다.
만약 작가가 이토 히로부미의 내면을 이토 자신이 바라보는 방식 그대로 묘사한 것이 독자들에게 분노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면, 최소한 나에게는 그 의도가 완벽하게 성공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이 인간을 내가 언제 죽일까!"
안중근 의사가 방아쇠를 당기던 그 순간이 오기까지,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수십 번, 수백 번의 총성이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1909년 10월 26일 오전 이토를 향해 안중근 이사가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 나도 그의 옆에 함께 있었다.
이런 면에서 책에서 작가는 단순한 선악의 구도를 그리지 않는다. 대신, 이토의 시선을 통해 제국주의의 논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그 논리 속에서 조선이 어떤 방식으로 무너져 갔는지를 독자에게 체험하게 한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것은 단순한 여정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세계관과 신념, 그리고 역사의 필연성이 부딪히는 과정이다. 결국, 하얼빈은 안중근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를 이루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각자가 향하던 길을 따라가는 소설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나는 한동안 숨을 고를 수가 없었다.
밀려오는 감정들이 너무 강해서, 잠시라도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의자에서 일어나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래야만 겨우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울분과 먹먹함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평을 쓰면서도, 책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둔 부분을 다시 옮겨 적으면서도, 몇 번이고 울컥했다.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깊고, 너무 아팠다. 김훈의 문장은 차갑고 담담한데, 그 속에서 느껴지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혹시 시간이 된다면, 독후감 포스팅의 책 속에서 인용한 문장들만이라도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25.03.08(토)-1909년 10월 26일.. : 네이버블로그
그 문장들은 단순히 활자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외침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목소리다.
물론, 가능하다면 책을 직접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 더 좋을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하얼빈이 말하고자 했던 진짜 이야기가 마음 깊숙이 스며들 테니까.
마지막에 김훈작가가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책에 대한 생각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그의 몸은 대의와 가난을 합쳐서 적의 정면으로 향했던 것인데, 그의 대의는 후세의 필생이 힘주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오늘은 주말. 피로했던 근육을 쉬게 하는 날이다.
책상 위에 흩어진 책과 노트를 정리하고 거실로 나왔다. 마치 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가 소파에 앉아 반갑게 나를 바라본다. 평일에는 서로 바쁜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기 일쑤였는데, 이렇게 주말이면 다시 같은 공간에서 여유롭게 마주할 수 있다는 게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제야 일어난 막내도 부스스한 머리로 거실로 나온다. 아직 잠이 덜 깬 듯한 얼굴로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귀엽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향했고, 간단한 메뉴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책 속에서 치열했던 시간에서 빠져나와, 이렇게 조용하고 평온한 주말을 맞이하는 것이 어쩐지 묘한 대비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일상의 균형이야말로, 다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것 아닐까.
아내는 테블릿을 들고 볼링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볼링장에 갈 준비를 했을 텐데, 오늘은 집에서 쉬기로 결정을 내렸다. 주말 오후 두시, 아내와 나의 공식 일정 같은 볼링이 취소된 건 꽤 드문 일이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시간이 생겼다.
책상에 앉아 다음 주에 연재할 브런치 글을 작성했다.
사실 아직 완성해놓은 글이 많지 않아, 독서 시간을 줄여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원고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을 읽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던 중, 아내가 오늘은 볼링장에 가지 않기로 하면서 예상치 못한 시간이 생겼다.
덕분에 나는 글을 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얻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오후 내내 글을 썼다. 창밖에는 늦겨울과 초봄이 뒤섞인 날씨가 스며들었다. 가끔씩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생각보다 글이 잘 풀렸고, 그렇게 시간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시간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어떻게든 만들어내려고 하면 더 모자란 것 같고, 어느 순간 뜻하지 않게 주어지면 오히려 넉넉하게 느껴진다.
오늘 얻은 이 여유가 다음 주의 글 속에 어떤 흔적으로 남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꽤 만족스럽다.
저녁 시간이 되었다. 아내 덕분에 충분히 글을 쓸 수 있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저녁을 준비할 차례였다.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묻자, 아내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김밥 싸줘!" 김밥이라니.
재료도 마땅치 않고, 저녁에 하기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 하지만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쓸 시간을 선물받은 만큼, 나도 뭔가를 돌려주고 싶었다.
냉장고를 뒤적이니 제법 구색을 갖출 만한 재료들이 보였다. 햄, 계란, 어묵 그리고 김치까지. 빠르게 준비를 시작했다. 손끝에서 익숙한 김밥 말기가 이어졌고 정신 없이 만들다 보니 어느새 김밥 15줄이 완성되었다.
마침 학원에서 돌아온 막내가 주방을 슬쩍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이 시간에 웬 아빠표 김밥이죠?"
그러더니 이내 방긋 웃는다. 김밥을 한입 베어 물고는 연신 맛있다는 말을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손이 많이 간다는 생각은 어느새 잊혀졌다.
결국 김밥 15줄은 순식간에 클리어되었다.
배를 가득 채운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음료를 들고, 소화를 시키며 여운을 즐겼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오늘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도, 이렇게 예상치 못한 따뜻한 순간들이 스며드는 게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