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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66일의 법칙
습관이 뇌에 자리잡는 과정

이제 나의 뇌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익숙함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by 마부자

금주 66일째, 늦게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밤새 깊이 잠들지 못했다. 몸이 무거웠다. 하지만 더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창가로 가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짧은 순간, 몸은 깨어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몽롱한 상태였다.


거실에 앉아 눈을 감았다. 오늘은 명상이 아니었다. 오롯이 한 사람을 위한 기도로 하루를 열었다.


어제 오랜만에 만난 후배들에게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농담으로 전할 내용이 아니었기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떤 위로도 의미 없을 것 같아 우두커니 침묵을 지켰다.


내게는 인생의 멘토 같은 분이 있었다. 늘 지혜롭고 단단한 말로 내 길을 밝혀주던 분. 그런데 그분이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었다. 혼수상태라고 했다. 설 명절 전부터 쓰러졌다고 하니, 벌써 한 달이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지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혼수상태, 폐렴, 중환자실. 불과 1년 전, 그 단어들은 내게 너무도 선명하고 잔인한 현실이었다. 누워있는 아내를 보며 의사가 내 결정을 재촉하던 순간, 나는 망설이며 그 단어들을 바라 보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그 말들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 번 다시 기억 속에서 꺼내고 싶지 않았던 단어들이었다.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다시는 나와 가까운 누군가가 그 단어 안에 갇히는 일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분이, 내가 존경하던 그분이, 지금 그 단어들 속에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 충격과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기도를 하면서도 간절한 바람과 불안한 마음이 뒤섞였다.

다시 한번 누군가를 향한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천둥벌거숭이 같던 20대 초반의 나를 다잡아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앞뒤 재지 않고 무작정 부딪치던 내가 꾸준히 자기계발을 하도록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은커녕 하루를 그저 흘려보내기 바빴다.


그런데 그분이 내게 끊임없이 말했다.

"네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네 스스로를 먼저 준비해야 해."

그 말에 힘입어 나는 야간대학을 졸업했고, 중국어를 배웠다.


결국, 중국 주재원이라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 모든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분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 현재 삶의 큰 부분이 그분으로 인해 가능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014년, 그분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다. 회사 오너와의 충돌, 조직 내 불미스러운 일들이 겹치면서 결국 퇴임을 선택했다. 이후 새로운 사업을 운영하며 지낸다는 이야기를 간간이 들었지만, 정작 나는 직접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나 역시 퇴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대해 알지 못한 채 각자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이제야 그분의 소식을 들었고, 그것도 이런 방식으로 알게 될 줄은 몰랐다. 마음 한구석이 무겁고도 먹먹했다. 나는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은 아닐까. 후회가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분은 누구보다 건강을 잘 챙기던 분이었다. 늘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며 생활하셨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에 누구보다 엄격하셨다. 그런 분이 지금 병상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내가 그분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이 간절한 기도뿐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저미듯 아팠다.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손을 잡아드릴 수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중환자실의 차가운 침대 위에서 죽음과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을 그분을 떠올리며, 나는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신이여, 우주여, 그리고 모든 영혼들이여.

그분이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그분의 가족들이 더 이상 슬픔에 잠기지 않도록 해주세요.


내 바람이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며 기도했다. 정말로,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명상 기도를 마친 뒤, 책상에 앉아 조용히 다짐을 적었다. 마음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지만, 기록하는 행위는 나를 정돈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책을 펼쳤다.


사실 마음속으로 정해 둔 책이 있었다. 하지만 어제 들은 소식이 나의 감정을 무겁게 만들었고, 결국 그 감정에 어울리는 책을 선택했다.


김훈의 장편소설 하얼빈.

이 책을 알게 된 건 얼마 전 블로그 이웃인 "여르미 도서관" 님 덕분이었다. 삼일절을 맞아 읽으면 의미가 깊을 것 같다며 추천해 주셨고, 나는 그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언젠가 읽으려고 잠시 미뤄둔 책이었는데, 오늘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책장을 넘기기 전, 잠시 숨을 골랐다.

이 책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 알 수 없었지만, 묵직한 마음을 그대로 끌어안고 읽어보기로 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하얼빈이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있을 것이다.

바로 독립운동가 안중근.


그렇다. 김훈의 하얼빈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민족 영웅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다. 하지만 단순한 일대기가 아니다. 이 책은 청년 안중근이 조국의 현실 앞에서 고민하고, 결심하고, 마침내 행동에 나서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간다. 그의 총성에 이르기까지의 길을 깊이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나는 책을 손에 쥔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 사람의 신념과 선택이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 선택의 무게는 얼마나 막중했을지. 그리고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내 삶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고민하게 될 것 같았다.


최근 책을 읽을 때마다 부끄러운 감정을 자주 마주한다. 독서를 통해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특히 역사에 관한 책을 읽을 때는 그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내가 역사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책을 펼치기 전, 안중근 의사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떠오른 건 단편적인 기억뿐이었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인물, 왼손 약지를 자르고 ‘대한독립’이라는 글자를 피로 쓴 인물. 그 것만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밀려드는 죄책감을 누르며 책의 첫 장을 펼쳤다. 나의 부족함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지만,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더 알아야 했다. 단순한 이름과 사건이 아니라,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을 위해 싸웠으며, 어떤 마음으로 총을 들었는지를.


책장을 넘기며 다짐했다. 이번에는 그저 ‘읽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 되기를.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성공한 후,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군에 체포되어 여순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감옥에서 일본 형사와의 3개월간의 취조가 이어졌다. 나는 그 과정을 읽어 내려가며 몇 번이고 숨을 고르고,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추었다.


이 감정들을 지금 정리하는 건 무리였다. (자세한 책의 내용은 내일 적기로 했다.)

책의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서야, 이 분노와 희열의 실체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운동을 시작했다.

오늘의 영상은 BJ포그의 <습관의 디테일>에 관한 3부중 마지막 영상이었다.

행동 설계를 위한 7단계에 대한 내용이었다.


1단계 열망을 명확히
2단계 행동 선택지 탐색
3단계 딱 맞는 행동 골라내기
4단계 아주 작게 시작하라
5단계 적절한 자극을 준다
6단계 성공을 축하하라
7단계 반복하라, 확대하라

하와이 대저택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은 성공 경험이 쌓여야 하고, 이를 위해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단순한 의지만으로는 변화를 지속할 수 없고, 우리가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 말을 곱씹으며 운동을 마쳤다.

어쩌면 나도 지금 이 작은 루틴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샤워를 마치고 집안일까지 마무리한 뒤, 소파에 몸을 기댔다.

이번 주도 변함없이 동일한 루틴대로 운동을 했지만, 이상하게 졸음이 밀려왔다.

피곤함이 온몸을 감싸왔다. 잠시 눈을 감았다.


어제 늦게 귀가한 것도 모자라, 예상치 못한 소식에 밤새 뒤척였던 탓인지 잠은 금세 깊어졌다.

몸이 잠을 원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제법 긴 낮잠을 잤다.


눈을 떴을 때, 아내의 퇴근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잠시 머릿속이 멍했다. 짧은 꿈을 꾼 것 같기도 했지만 기억은 흐릿했다. 기분 좋은 휴식과는 조금 다른, 묘한 나른함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깊이 잠든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정신을 차릴 시간이었다.


아내가 퇴근을 하고, 우리는 둘만의 저녁 식사를 일찍 마쳤다.

막내 한 명이 식탁에 없을 뿐인데도 반찬의 가짓수가 줄었고, 식사 시간도 평소보다 절반이나 짧아졌다.

한 명의 빈자리가 이렇게 나 크게 느껴질 줄이야.

항상 곁에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없을때 바로 드러나는 것이 사람의 빈자리인 것 같다.


저녁을 마친 후, 아내와 함께 차를 한 잔 했다. 아내는 어제 만난 후배들 과의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간단히 이야기했더니, "술도 안 마시고 12시 넘도록 수다를 떨다 들어온 얘기치고는 싱겁네?"라며 웃었다.


나는 그냥 따라 웃었지만, 사실은 차마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다.

아내에게 그분의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나만큼이나 아내도 그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분이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야 한다면, 작년 아내가 겪었던 상처를 다시 건드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말이, 어떤 소식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오래된 아픔을 다시 불러낸다는 것을.

나는 그 상처를 굳이 꺼내고 싶지 않았다.

아내가 이 소식을 모른 채 조금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이야기를 마치고 우린 같은 공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정리한다.

아내는 볼링, 난 일기와 독서



일기를 정리하다 보니 오늘이 금주 66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 숫자는 내게 의미가 크다.

책이나 유튜브, 블로그를 보면 습관이 자리 잡는 데 최소 21일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많다.


단 3주만 지속하면 우리의 뇌가 그것을 습관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 말을 믿고 금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전 한 책을 읽다가 그 믿음이 흔들렸다.

놀랍게도, 이 21일 법칙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니었다.


게다가 흥미롭게도, 이 사실을 알려준 책이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프랭클린 글쓰기 비법이었다.

그 책에서는 습관이 뇌에 자리 잡는 데 걸리는 시간이 66일이라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었다.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챗GPT에게 물었다. 답변은 다음과 같다.

"습관이 형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1일이다"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지만,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이는 다소 단순화된 주장입니다.


실제로 습관이 형성되고 뇌가 이를 기억으로 인정하는 평균적인 기간은 약 66일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 연구는 런던 대학교 UCL의 심리학자 필리파 렐리

박사가 2009년에 발표한 것으로, 사람들이 새로운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기까지 걸리는 평균적인 시간을 분석한 것입니다.


왜 66일이 걸릴까? 뇌의 변화 과정

습관이 형성되는 과정은 뇌의 신경 가소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새로운 행동을 반복하면, 뇌 속 신경 회로가 강화되면서 점점 자동화됩니다.

초기(1~21일): 의식적 노력이 필요 새로운 행동을 시작할 때는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함 이 단계에서 포기할 확률이 가장 높음

중기(22~66일): 행동이 점점 자동화됨 반복할수록 행동이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익숙해짐 실천하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기 시작

후기(67일 이후): 습관이 완전히 정착 별다른 노력이 없어도 습관이 자동으로 실행됨 뇌가 해당 행동을 "기본 설정(default mode)"으로 인식


즉, 66일 동안 꾸준히 반복하면 우리의 뇌는 이 행동을 "습관"으로 인식하고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신기하게 여기서도 “신경 가소성”이라는 말이 나온다. 끌어 당김의 법칙의 연속성의 대단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66일간의 금주. 이제 나의 뇌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익숙함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별다른 노력이 없어도 습관이 자동으로 실행된다는 챗GPT의 이 문장만으로도 내일이 기다려졌다.


무엇보다 이 금주는 철저한 계획이나 사전 준비 없이, 단 한 번의 결심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뿌듯했다. 모든 일을 시작할 때 신중한 준비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이렇게 아무런 계산 없이 “일단 시작해보는 것”이 더 강한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나는 사실 지금껏 변화를 다짐할 때마다 지나치게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그 무게에 짓눌려 좌절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 맞은 66일의 작은 기적은 정반대의 접근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작게 시작하고, 작게 성공하며, 그 성공을 축하하라.

이 66일이라는 숫자가 주는 감동을 나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한 내 인생에서 의미 있는 발자국이다.

생각지도 못한 감사함 속에서, 나는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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