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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부자 Jan 02. 2025

믿음과 불안을 마주한 하루

 더 나은 희망을 찾는 내 생각은 죄가 되는 걸까?

힘든 날들이 이어진다. 어제도 맥주 두 캔으로 버티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새벽까지 잠은 오지 않았다. 새벽 1시 30분쯤 막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온 것을 기억하니, 그때까지도 나는 제대로 잠들지 못했던 모양이다. 뒤척이며 밤을 보냈고, 알람 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조금만 더." 그 말 한마디로 스스로를 달래며 침대 위에서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5일째 아침을 맞았다.


아침마다 하는 기도를 잊지 않았다.

"신이여, 우주여, 영혼들이여, 와이프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그녀가 어제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도를 끝내 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아내에게 장애가 남으면 어쩌지?" 살려만 달라고 간절히 빌던 내가 이제는 더 많은 것을 바라기 시작했다. 이건 욕심일까? 아니면 지극히 인간적인 염원일까? 생각은 꼬리를 물며 이어졌고, 어느새 나는 나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정말 쓸데없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도 당연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와이프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기도하는 내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걸까?


머릿속에서 온갖 질문들이 얽히고설켜 혼란스럽기만 했다. 모든 것이 희미하게 엉켜 들어와 무게감으로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감사해해야지."


그 단순한 문장을 수없이 되뇌며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지만, 어딘가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려왔다. "그렇지만… 정말 이게 끝이라면? 이후의 일들을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면?"


하루하루를 버티는 아내를 보며 하늘에 기도했던 내가, 이제는 조금 나아진 모습을 보며 또 다른 바람을 품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한 것인지, 아니면 살아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더 나은 희망을 좇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의 혼란은 나를 잡아 끌어 깊은 심연으로 밀어 넣었다. 마치 얌전했던 불안감이 다시 입을 벌리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잠시 평온했던 내 마음을 헤집으며, "만약"이라는 단어가 끝도 없는 상상 속으로 날 데려갔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정말 쓸데없는 걸까? 아니, 어쩌면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조금이라도 지켜내고 싶어 하는 마음의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몰랐다. 아내를 잃을 뻔한 순간, 그녀가 살아 있어주길 빌던 그 시간들은 분명 내가 가장 간절했던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소망 역시 그 연장선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안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들이 쓸데없는 것이라 치부하고 털어내기엔, 그것들은 너무도 날것으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나는 다시금 믿음이라는 이름의 고삐를 움켜쥐었다. 믿음이야말로 내가 이 혼란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테니까. 아내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대어, 내일은 더 나아진 그녀를 보게 될 것이라는 희망에 기댔다.


나는 계속 스스로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내 잘못은 아니라고. 아내가 이렇게 된 것이 내 탓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것이 곧 내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해서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임은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며, 그것은 과거의 원인을 찾거나 후회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효율적이고 상처 없이 마무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장애에 대한 걱정은 지금 할 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아내가 일반실로 내려오는 그날까지, 내 모든 에너지는 그녀의 회복에만 쏟아야 한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상태로 돌아올 수 있도록 나는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오늘 하루도 그러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책임이란 원인을 찾아 탓하거나 후회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다. 책임은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아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애쓰며, 그 감사가 나의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오늘도 아내를 보러 가기 위해 준비를 마쳤다. 그녀의 상태가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작은 신호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히 버텨낼 힘을 얻는다. 내 불안과 걱정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딛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책임은 무겁지만, 동시에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아내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에 대한 나의 약속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그 책임을 떠안고, 아내의 회복을 위해 내 하루를 채우기로 했다.


딸은 출근하고 나서 아들 둘을 깨웠다. 오늘도 어김없이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다. 막내를 흔들며 깨우자, 그는 이불 속에서 고개만 내밀고 물었다.

"왜요?"


그 짧은 한 마디에 순간 울컥했다.

 "왜라니, 엄마한테 안 가?"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러나 막내의 대답은 단순했다. "아~."


아이의 무심한 대답에 한숨이 나왔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화내봤자 우리 모두를 위한 오늘의 계획이 어긋날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막내는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시계는 어느새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졌다. 머릿속에 이런 말들이 떠올랐다.


"내일부터는 일찍 자라."

"아빠 혼자 갔다 올 테니 너희는 집에 있어라."


말들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꾹 눌렀다. 지금 화를 낼 필요가 없었다. 사실 오늘의 일정은 10시 20분 출발이었다. 그저 내가 마음이 급해서 일찍 준비를 했을 뿐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결국 막내는 10시 18분에야 준비를 마쳤다. 그제야 나는 내 속이 부글부글 끓었던 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일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화를 참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만약 화를 냈더라면,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 모두에게 불편하고 힘든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하며 나는 생각했다. 감정을 조절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특히 지금처럼 힘들고 민감한 시기에, 불필요한 갈등은 더 큰 상처를 남길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막내가 가끔은 아이답게, 너무 느슨하고 태평해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어쩌면 그 아이만의 방식으로 이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속도와 내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에 맞추려는 마음이 필요하리라.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엄마를 만나러 가는 오늘의 시간을 조용히 이어갔다.


병원에 도착해 차를 주차한 뒤, 면회 시간을 기다리며 조용히 기도했다.

"신이여, 우주여, 영혼들이여, 그녀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밝고 회복된 그녀를 만나게 해주세요."


짧지만 간절한 기도를 마친 뒤 면회실로 들어섰다. 드디어 네 번째 면회였다. 그녀가 있는 병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문틈 너머로 그녀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간호사를 부르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물었다.

"왜 그래?"


그녀는 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어, 자기야! 나 너무 불편해. 나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어제는 손발이 묶여 있어도 그 불편함을 호소하지 않던 그녀였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안쓰러웠다.


막내가 먼저 병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막내를 보자 반갑게 손을 내밀며 환한 얼굴로 맞았다. 

그러나 이내 나를 향해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나 왜 여기 있는 거야?"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머리가 아파서 병원에 왔고, 수술을 받았어. 지금은 괜찮아지고 있어."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여전히 불편하다는 듯 투덜댔다.

"모르겠어. 그냥… 불편해."


그녀의 투정은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이 투정이야말로 그녀가 조금씩 제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이 아팠다. 불편하다는 그녀의 말 속에 담긴 혼란과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잡으며 말했다.

"조금만 참아. 곧 다 나아질 거야."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낯선 병실의 분위기와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녀가 완전히 회복될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조용히 믿음의 끈을 붙잡았다.


그녀는 어제 우리가 병문안을 왔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직 혼란스러운 그녀의 상태를 알기에, 나는 마음을 다잡고 최대한 평온하게 대하려 애썼다. 

그런데 그녀는 전혀 다른 말을 꺼냈다.

"여기가 제주도지, 그치?"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여기는 병원이야. 당신 머리가 아파서 수술받았잖아. 지금 괜찮아지고 있어."


그녀는 내 말을 이해하려는 듯 잠시 멍한 눈으로 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때 간호사가 다가와 말했다.

"쥬스나 과일을 드실 수 있으니 사다 주시면 드릴게요."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뭐 먹고 싶어?"


그 순간, 그녀의 대답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술!"


나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안 되지. 술은 나중에 나아서 마셔."


그녀는 금세 다른 말을 덧붙였다.

"그럼… 보쌈? 아니면 닭발!"


그녀의 대답은 갈팡질팡했고, 말을 이어가면서도 약간 횡설수설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낯설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이전의 활기가 조금씩 돌아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마음속에 새겼다. 그녀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비록 지금 그녀의 기억은 흐릿하고, 말도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바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알았다. 그저 그녀가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녀가 예전의 모습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 곧 괜찮아질 거야."


그녀의 말 속에 담긴 작은 혼란조차도, 이제는 회복의 한 부분으로 보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조금만 더 힘내줘. 우리는 기다릴게."


짧은 면회를 마치고 병실을 나섰다. 문을 닫는 순간에도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조금 더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혼란 속에 있는 것 같기도 한 그녀.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안도와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복도로 나가니 간호사가 다가와 말했다.

"요플레를 잘 드시더라고요. 사다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1층 매점에서 요플레 몇 개와 쥬스를 사서 다시 간호사에게 건넸다. 요플레를 좋아한다는 그녀의 소식에 왠지 모르게 작은 안심이 되었다. 그녀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병원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를 꺼내는 데 20분이나 걸렸다.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차창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 자신을 되돌아봤다. 오늘도 하루가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는 아들들과 가벼운 대화가 오갔다. 아이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서로 장난을 치며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우면서도, 저 작은 어깨에 지워진 감정의 무게가 얼마나 될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오늘 하루라도 아이들이 평온하기를 바라며 대화에 맞장구를 쳤다.


저녁을 준비하려던 계획은 아이들의 요청에 의해 중식으로 바뀌었다. 만둣국을 만들어 주려 했지만, 외식을 하자는 아이들의 말에 나는 기꺼이 따라주었다. 나는 여전히 밥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몸은 고단했지만, 그녀가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도 그녀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그리고 내일은 더 나은 모습으로 그녀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자."


그녀의 회복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후유증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는 또 한 번 마음속에 작은 희망의 불씨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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