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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부자 Jan 03. 2025

희망의 빛,
내일은 좀더 나은 모습을 기대하며

아이들과 아내에게 내 고마움과 미안함을 더 깊이 새기게 해주는 날

새벽 두 시쯤에야 간신히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막내아들이 새벽에 축구를 보고 들어오는 소리를 들으며 한참 뒤척였으니, 그 무렵에서야 겨우 잠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늘 하던 대로 일어나 기도를 했다. 


"신이여, 우주여, 영혼들이여 감사합니다. 

신이여, 우주여, 영혼들이여 오늘은 어제보다 밝고 회복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신이여, 우주여, 영혼들이여 이 사람 후유증 없이 퇴원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졌다. 어제보다 안정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두 아들을 기다렸다. 어제의 일이 영향을 미친 걸까, 오늘은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나 준비를 마쳤다. 병원으로 향하며 주차장을 떠올렸다. 늘 차들로 가득한 그곳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고, 문득 차를 가져오는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대구역 근처라 차 없이도 충분히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자고 아이들과 약속하며 조금 더 여유롭게 하루를 계획해 보았다.


11시. 복도를 돌며 기도를 되뇌었다. 

"신이여, 우주여, 영혼들이여 어제보다 더 밝고 회복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마리아님, 예수님, 그리고 하느님, 어제보다 더 밝고 회복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몇 번이고 되뇌며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사이, 내 기도는 묵직한 바람처럼 공간을 채우는 것 같았다. 드디어 중환자실 문이 열렸다. 그녀가 보였다. 침대 위에서 눈을 감고 누워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사람 같았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조용히 불렀다. "자기야."


그 순간,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눈동자에 담긴 반가움이 나를 향해 쏟아지는 듯했다. 

어제 우리가 다녀간 기억은 없었지만, 그 맑은 눈빛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빛을 품고 있었다. 

왼손에 씌워져 있던 보호장갑이 풀려 있었고, 그녀의 몸은 어제보다 훨씬 더 편안해 보였다.


그녀는 나를 보며 첫마디로 말했다.

"자기야, 나 힘들어."


그 말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제의 그녀는 마치 삶과 의식 사이에서 떠다니는 사람 같았다. 자신이 꽁꽁 묶여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누워 있던 그녀를 보며 내가 느낀 절망감은 얼마나 컸던가. 하지만 오늘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금 나를 이곳으로 부르는 듯했다. "힘들다."라는 그 짧은 한마디에 그녀의 존재가 다시금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고통조차도 나에겐 살아있음의 징후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말이 반가워서, 그러나 그녀의 힘듦이 안타까워서, 내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어제와는 다른 희망의 빛이 내 마음속에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이제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힘겹게 자신의 세계로 돌아오고 있는 그녀의 눈빛에서, 나는 어렴풋이 예전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연락했느냐고 물었다. 내가 못했다고 하자,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잘했어."라고 말했다. 그 짧은 대답 속엔 어머니를 걱정하면서도 안심시키고 싶은 그녀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친정 식구들 이야기도 꺼냈다. "다녀갔어?"라고 묻더니, 이내 혼잣말처럼 "걱정들 많이 하겠네."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게 세상 밖으로 걸어나오는 듯했다. 지인을 떠올리며 그녀도 잘 있는지 묻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그녀답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녀가 천천히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놓였다. 어제와는 다른 그녀의 말과 행동이 내게는 더없이 큰 희망으로 다가왔다. 나는 속으로 다시 한 번 조용히 기도했다. 

신이여, 우주여, 영혼들이여, 마리아님과 예수님, 그리고 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가 이렇게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그 자리에 단단히 뿌리내린 듯 앉아 있었다. 그녀의 작은 말 한마디, 엷은 표정 하나하나가 나를 살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침대에 누운 채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가 제주도야?" 그 한마디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녀는 이어서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그럼, 제주도에서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온 거야?"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설명했다. 

"아니야, 여긴 대구야. 지금 병원에 있어. 괜찮아지고 있어."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며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여기가 정말 대구야?"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머릿속에는 제주도에 대한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우리의 제주도 여행이 그녀에게 남긴 감각들이 너무도 생생해서,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 기억이 그녀를 붙잡고 있는 듯했다.


몇 번을 설명하고 나서야,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럼 내가 지금 대구에 있는 거네." 


그 말에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녀가 이렇게 천천히라도 인지력을 되찾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작은 희망의 불씨처럼 느껴졌다. 어제와는 조금 다르게, 그녀의 말 속에 어렴풋이 현재를 받아들이는 힘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속으로 기도했다. 신이여, 우주여, 이 사람의 기억과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 작은 변화가 이어져서, 그녀가 더 단단히 현재를 붙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녀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가 다시금 그녀의 삶으로 이어지는 실처럼 느껴졌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현재 그녀의 머리에 있는 관을 내일 막아보고, 상태가 괜찮으면 모레 제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녀의 혼미한 정신은 약 3주 정도 치료를 받으면 90% 이상 회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말은 내게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오랜 시간 움켜쥐고 있던 불안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병원에서 만난 의료진은 각기 다른 얼굴과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외과 과장님과 네 명의 레지던트들은 모두 달랐다. 나는 그 차이를 날카롭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첫날 응급실에서 만난 의사는 냉정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무심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의 태도는 마치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절차에 불과하다는 듯 보였다. 나는 그날 그의 설명을 들으며 가슴 속에 분노가 일렁였던 것을 기억한다. 만약 와이프의 상태가 그때처럼 심각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의 무심한 태도에 따져 묻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만난 의사는 전혀 달랐다. 그의 목소리에는 부드러운 배려가 담겨 있었고, 설명 하나하나에서 희망과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관을 막아보는 것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라는 그의 말은 나를 한결 가볍게 해주었다. 같은 병원 안에서도 이렇게 다른 두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이 묘하게 낯설면서도, 오늘의 따뜻한 태도가 그 어느 날보다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의사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다시 한번 기도했다. 그녀가 하루하루 회복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 기다림이 더 이상 아프지 않은 시간이 되길. 그녀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손길이 그녀의 회복을 돕는 따스한 온기로 남아 있기를 바랐다.


간호사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 말 많죠?" 


그 질문에 간호사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네, 많으세요!"라고 답했다. 그 반응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가 다시 예전처럼 말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반갑고, 조금은 안도감을 주었다.


다시 물었다. 

"잠은 잘 자나요?" 


이번에는 간호사가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밤에 잠을 잘 못 주무시고 계속 뒤척이세요. 가끔은 옆에 있는 기계를 쓰러뜨리기도 하셔서 저희가 자주 돌봐드려요." 그 말을 듣자 순간 마음이 아릿했다. 


그녀가 밤마다 뒤척이며 깊은 잠에 들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자기야, 밤에는 잠을 좀 자야지. 너무 뒤척이면 힘들잖아." 


내 말에 그녀는 조금 멋쩍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수면 안대 좀 사다 줘."


그녀의 말에 순간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필요한 것을 솔직히 말하는 모습이 반가웠다. 그녀가 자신의 불편함을 인지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모습은 마치 그녀가 조금씩 삶의 리듬을 되찾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어, 안대 꼭 사다 줄게." 그 약속은 내게 단순한 구매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녀의 회복을 돕는 작은 발걸음 중 하나일 테니까.


그녀가 자신의 상황을 조금씩 인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고마웠다. 

그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예전의 그녀를 떠오르게 하며 희망의 조각을 모아주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그녀는 문득 말했다.

"돈 많이 들겠네. 나 보험 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쩐지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이제 정말 그녀가 다 나은 것만 같았다.


농담처럼 말했다.

"돈 걱정하지 마. 차 팔면 되지."


그녀는 깜짝 놀란 듯 "아니야, 그러지 마."라고 말했다. 


그녀의 반응에 나는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이런 대화가 오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몇 날 며칠 동안 그녀를 바라보며 느꼈던 무거움이 한순간에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그녀가 더 이상 돈이나 병원비 같은 걱정이 아닌,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그리고 이 농담처럼 그녀의 회복도 더 밝고 가벼워지기를.


간호사가 비타민 C가 부족하니 오렌지 주스를 가져오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곧장 1층 매점으로 내려가 오렌지 주스와 요플레를 사서 간호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작은 것이라도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느껴지며 병원을 나섰다.


집에 돌아오니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이 나를 맞았다. 그런 순간이 오면 두려움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머릿속은 어지럽고, 마음은 바닥에 가라앉는 기분. 나는 그 감정에 잠식되지 않으려 애써 무언가를 했다. 두 아들의 점심을 만들어주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렸다. 손과 몸을 움직일수록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금씩 가라앉는 듯했다.


시간이 남아 쇼파에 앉아 영어공부를 해보려 했지만, 책장을 넘기던 손이 곧 멈췄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결국 책을 옆에 두고 잠시 눈을 붙였다. 내가 견디고 버티기 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아마도 이렇게 짧은 쉼의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는 내일 부대로 복귀하는 장남과 함께 식사하기로 했다. 고기집에서 아이들과 마주 앉아 지난 6일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간만에 웃을 수 있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이 상황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가슴이 찡해졌다.


아이들은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그들의 밝은 웃음과 일상 속 작은 이야기들이 내게는 커다란 위로였다. 눈앞에서 고기를 굽고 서로 장난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참 대견하다. 자랑스럽다." 그동안 내가 말하지 못했지만, 아이들도 마음고생을 많이 했으리라.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 힘든 시간을 버티기 위해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애써 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자리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무겁기만 했던 지난날을 잠시 내려놓고, 조금은 가볍게 숨을 쉴 수 있는 작은 여유였다. 나는 그저 아이들이 이 시간을 견디며 앞으로도 더 단단해지길, 그리고 우리가 함께 이겨낼 수 있길 바라며 조용히 그 순간을 마음에 새겼다.


저녁 자리에서 딸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이번에 엄마 아프고 아빠 하는 모습 보니까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말은 마치 내 마음을 가만히 두드리는 것 같았다.


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한마디에 담긴 진심과 그녀가 느꼈을 감정들이 그대로 전해졌다. 아프고 힘든 시간 속에서도 가족으로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자 애쓰는 모습을 딸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 말을 되새기며 나는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내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고는 했지만, 이 시간을 견디며 스스로를 다독인 아이들의 마음고생은 얼마나 컸을까. 그리고 병상에서 천천히 회복 중인 아내에게, 내가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옆에 있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하루가, 아이들과 아내에게 내 고마움과 미안함을 더 깊이 새기게 해주는 날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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