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서 밀려든 한여름 햇살과 방 안에 들어온 바람을 느끼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팔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잠시 침대에 누워 바라본 창가에서 오늘은 바람보다 빛이 강했다.
7월의 마지막 주말. 기상청은 하루 종일 폭염 특보와 경보를 예보했고 그 말처럼 태양은 일찍부터 병실 창을 두드렸다.
오후 한낮에는 마치 유리를 녹일 듯한 강도로 빛이 내리꽂혔고 병실의 공기마저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난주 세 번째 항암주사의 여운 속에서 움직임은 더뎠고 생각은 멈춘 듯 흘러갔다.
그런 흐름을 다시 붙잡기 위해 지난 주 쉬어 두었던 글쓰기의 루틴을 회복해보기로 했다. 영상으로 만나는 책 한 권.
오늘 다시 찾은 책은 다카하시 히로카즈의 <끌어당김의 법칙>이었다. 화면 너머에서 흘러나온 말은 단순하지만 묘하게 날카로웠다.
“당신은 지금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양자역학적 관점으로 지금 당신이 처한 현실은
당신이 과거에 한
선택과 결정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상태에서
인생을 바꾸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부자가 되겠다라는 결심이다.”
하와이 대저택 제공
결심.
결심은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물리적 현실을 바꾸는 에너지의 시작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모든 것은 이미 존재하며 그것을 현실로 끌어오는 힘은 '결심'이라는 작은 내면의 출발점에서 비롯된다고.
결심은 희망보다 더 선명하다. 희망은 막연히 좋은 미래를 기대하는 감정이라면 결심은 그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체적인 명령이다.
결심이 없는 희망은 언제나 남의 일이 되고 만다. 하지만 결심은 현재를 변화시킬 구체적인 행동의 지점을 요구한다.
나는 오늘 그 지점을 생각했다. 단순히 병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은 희망이지만 치료의 고통을 견디고 매일의 루틴을 반복하며 나아가겠다는 다짐은 결심이다.
결심은 단단한 감정이다. 감정보다 앞서는 생각이고 생각보다 우선하는 태도다.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으면서도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이 치료를 받기로 한 건 누구였는가. 내가 결정했고 내가 감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고통도 내가 끌어온 결과이며 동시에 지나갈 것이다.
이 병의 결과가 삶의 새로운 단계를 열어주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오늘 내게서 다시 태어난 결심이었다.
결심은 반복적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고통 앞에서 무너지는 감정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감정은 파도일 뿐이다. 그 파도 위에 결심이라는 닻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파도가 아무리 흔들어도 중심은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 항암 4회, 방사선 18회를 지나며 어느 정도의 무기력과 두려움을 경험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치료의 끝에 있는 회복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그 방향을 정한 것도 나고 그 길 위에 선 것도 나다. 그렇기에 나의 회복도 나의 결심에서 시작될 것이다.
결심은 실천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하루 한 번 더 가글을 하고, 한 모금 더 물을 삼키며 목의 통증을 견디는 일.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며 지금의 감정을 끌어안는 일.
모두가 나의 결심을 현실로 바꾸는 과정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된다. 결심은 본질적으로 타인을 위한 선언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책은 물리학이라는 과학의 언어로 우리의 삶을 설명하지만 그 핵심은 여전히 인간의 마음이었다.
어떤 세계를 끌어당길 것인가.
어떤 현실을 선택할 것인가.
그 모든 시작은 하나의 생각, 하나의 믿음, 그리고 하나의 결심에서 비롯된다.
나는 오늘 ‘결심’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결심은 감정이 아니라 실천을 부르는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