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폭염이 내리쬐는 한여름 창가 앞. 이제는 낯익은 자리가 된 병실 책상 앞에 앉아 조금은 좋아진 컨디션을 유지하며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창밖에서는 태양이 유리를 뚫고 들어올 듯한 기세로 열기를 밀어 넣고 있었고 실내에서는 낮게 틀어놓은 에어컨이 겨우 숨통을 틔워주고 있었다. 이 극단적인 온도의 경계에서 나는 오늘도 책을 영상으로 만났다.


오늘의 책은 조 디스펜자의 <꿈을 이룬 사람들의 뇌>. 이미 한 차례 완독했던 책이지만 오늘 영상은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소개된 영상을 클릭하게 했다.


낯선 공간에서 다시 만난 이 책은 익숙한 내용임에도 묘하게 다르게 다가왔다. 책은 뇌과학과 심리학을 넘나들며 우리의 생각, 감정, 행동의 연결고리를 설명한다.


그 중에서도 오늘 나를 붙잡은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사람들을 언제나 뒤도 돌려놓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익숙한 그 감정은 ‘불안과 걱정’이다. 경험상 불안과 걱정의 시작은 보통 심한 감정적 압박을 받은 어떤 사건에 의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경험을 반복적으로 생각하면서 앞으로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와이 디저택 제공


불안.


이 단어는 낯설지 않았다. 아니, 요즘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단어와 함께 숨을 쉬고 있었다. 불안은 예고 없이 다가온 병, 그리고 그 이후의 치료와 회복이라는 여정 속에서 끊임없이 고개를 들었다.


조 디스펜자는 말한다. 불안은 감정이 아니라 기억이라고. 우리가 어떤 강한 감정적 충격을 받았을 때 그 감정이 뇌에 각인되고 그것이 반복적으로 재생되면서 불안이라는 감정이 만들어진다고.


말하자면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기억이 만든 환영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나에게 낯설면서도 위안이 되었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불안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아니라 이전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지금이라는 시간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것일 뿐이라는 사실.


그러니 내가 지금 할 일은 그 그림자를 직시하고 그것을 조용히 지워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병실에서 아침을 맞았다. 그리고 오늘도 치료는 계속되었고 주사 바늘은 내 팔을 지나 링거 줄을 타고 내 몸 속으로 무언가를 흘려보냈다.


그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나는 어제보다는 덜 무서웠다. 이유는 하나. 내가 느끼는 불안이 ‘현실’이 아니라 ‘기억’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불안은 언제나 미래를 위장한다. 마치 곧 닥칠 것 같은 고통처럼, 준비되지 않은 위기처럼, 실체 없는 공포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과거의 상처가 만든 상상이다. 우리가 그 상상에 사로잡히는 순간 현실은 왜곡되고 행동은 마비된다.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새로운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반복된 과거의 감정 위에 또 다른 감정이 덧칠되지 않으면 뇌는 여전히 같은 회로를 활성화시키고 우리는 같은 생각, 같은 행동, 같은 감정 속을 무한히 순환하게 된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작은 행동이다. 이전과는 다른 감정의 흔적을 만들어내기 위한 의도적인 실천.


예를 들어 어제 두려웠다면 오늘은 그 두려움을 조금 덜어보는 일. 어제 울었다면 오늘은 잠시 웃어보는 일. 그렇게 감정의 지도를 다시 그려나가는 것이다.


나는 매일 치료를 위해 병원을 나선다. 그리고 힘들어도 그 감정을 글로 적으려 노력한다. 이것은 단순한 루틴이 아니다.


불안을 반복시키지 않기 위한 의식적인 선택이다. 내가 감정을 통제하지 않으면 감정이 나를 통제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병실에서의 삶은 나에게 말한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스려질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이 내가 매일 새롭게 훈련하는 이유다.


나는 오늘 ‘불안’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불안은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잊히지 않은 과거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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