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병실 창으로 들어온 햇빛은 여전히 한여름의 열기를 품고 있었다. 창문을 조금 열자 미세한 바람이 스며들었지만 뜨겁게 달궈진 공기는 쉽게 식지 않았다.
이런 날씨는 몸의 피로를 더 무겁게 만들지만 동시에 나를 사유의 자리에 앉힌다. 오늘의 생각은 책 속 문장이 아니라 어제 병원에서 있었던 한 장면에서 시작되었다.
어제 그 공간에 공지가 붙었던 공지(자세한 내용은 29일 일기를 참조해주세요).
공용 휴게실의 테이블과 의자를 모두 철거한다는 내용. 이유는 한 병실에서 제기한 민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웃음소리와 음식 냄새가 작은 위안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 공지를 두고 병실 안에서는 두 가지 의견이 오갔다.
“공용시설인데 왜 한 사람의 불편 때문에 모두를 막는가.”
“쉬고 싶은데 소음과 냄새가 힘들다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해야 한다.”
배려.
배려는 언제나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실천하려 들면 가장 어려운 덕목이다. 왜냐하면 배려는 나의 기준이 아니라 상대의 기준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내가 생각하는’ 좋은 행동을 배려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진짜 배려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입장을 상상하는 데서 시작된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그 점에서 배려의 집약체다. 치료라는 목적 하나로 모였지만 각자의 몸 상태도 다르고 감정의 결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함께 있는 것에서 힘을 얻고 어떤 사람은 고요 속에서 안정을 찾는다. 배려는 이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것은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조정이다.
나는 어제의 공지를 보며 ‘배려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곱씹었다. 누군가에게는 의자와 테이블의 철거가 불합리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잠시라도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다.
배려는 이런 상반된 입장 사이에서 언제나 흔들린다. 그래서 배려는 정답이 아니라 상황마다 균형을 다시 맞추어야 하는 끝없는 협상이다.
배려에는 계산이 없다. 다만 조금 더 조용히 말하고 조금 더 천천히 움직이며 다른 이의 고통을 가늠해 보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한 발 물러섬으로써 상대가 한숨을 덜 수 있고 누군가는 조용히 옆에 있어 줌으로써 보이지 않는 힘이 되기도 한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내가 본 배려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숨결 같은 것들이 모여 서로의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
나 역시 이 병실에서 매일 그런 배려의 연습을 하고 있다. 치료 중인 내 몸의 불편을 앞세우고 싶은 순간에도 옆 침대 환자의 고통을 바라보면 나의 불편은 잠시 뒤로 밀린다.
이 작은 훈련이 어쩌면 나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배려는 거창한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한 걸음 멈추고 다른 사람의 자리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우리가 병원이라는 낯선 공동체에서 배우는 가장 큰 교훈은 어쩌면 이 조용한 시선의 이동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배려’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배려는 균형을 찾아가는 조용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