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한여름의 폭염은 바람조차 숨을 죽이게 만든다. 병원 창을 열지 않아도 매미 울음은 끈질기게 창틀을 뚫고 들어와 이곳이 분명 여름 한복판임을 실감케 한다.


에어컨의 일정한 바람 속에 앉아 있으면서도 땀방울처럼 느릿하게 흐르는 시간 앞에 나는 이 움직임이 내 안의 흐름을 살리는 유일한 루틴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어제에 이어 조 디스펜자의 <꿈을 이룬 사람들의 뇌>를 영상으로 다시 만났다. 오늘 내 눈을 멈추게 한 문장은 명확했고 냉정했다.


“당신의 마음을 진짜로 바꾸고 싶다면 더 이상 익숙한 것에 얽매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결국 그것을 해내야 한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불편함을 감수하면 된다. 변화는 불편하다.”하와이 대저택 제공



불편함.

이 단어는 오래도록 피하고 싶은 감각이었다.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 즉, 누구도 자발적으로 불편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부분 편안함을 추구하며 산다. 익숙한 장소 익숙한 관계 익숙한 생각. 그것이 나를 안전하다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그 익숙함이 때론 변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병상에서 배우고 있다.


불편함을 견디는 시간은 내게 치료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병원이라는 공간 병이라는 존재 낯선 치료 낯선 사람들 낯선 리듬. 모든 것이 불편했다.


입맛을 잃은 입과 잠들지 못하는 밤. 눈앞에서 줄어드는 체중과 거울 속에 낯설어진 내 모습.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조금씩 깨닫고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결심을 했을 때마다 삶은 늘 약간의 불편함을 내게 요구했다. 그것은 이직이었고 새로운 관계였고 낯선 공부였으며 때로는 오해와 단절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견뎠을 때마다 나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살아 있었다. 불편함은 고통스럽지만 거기에는 생명력이 있다.


그것은 고여 있던 내 생각을 흐르게 만들었고 정체된 감정을 움직이게 했다. 그렇게 나는 불편함 속에서 조금씩 나를 바꾸어 나갔다.


병실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매일 아침 치료실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여전히 가볍지 않다. 주사 바늘 하나에도 움찔하고 링거 줄 하나에도 예민해진 내 몸은 여전히 이 모든 과정을 낯설어한다.


그러나 몸의 불편함을 통해 나는 마음의 감각을 다시 되찾아가고 있다. 전에는 당연하게 여기던 식사 한 끼 말 한마디 한 문장 한 줄이 이제는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진다.


불편함이 나를 예민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더 섬세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변화의 징후라는 생각이 든다. 불편함을 피하려는 본능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다.


그러나 모든 생존이 유지만을 위한 것일 수는 없다. 살아 있다는 것은 단지 숨 쉬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다.


방향을 선택한다는 건 결국 기존의 경로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그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제 나는 이 불편함을 온전히 감당해보려 한다. 피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묻기보다는 이 과정을 통과하며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묻기로 한다.


그 질문이야말로 변화의 시작점이 아닐까.


나는 오늘 ‘불편’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불편은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가장 정직한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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