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 연휴가 지나면 일반실로 갈수도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들었다.
어젯밤도 늘 그렇듯 새벽에 잠에서 깼다. 하지만 오늘은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다. 답답함과 불안 때문에 깨던 이전과 달리, 오늘은 단지 오래된 습관처럼 평소와 비슷한 뒤척임이었을 뿐이었다. 아내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잠에서 깨어 침대에 앉아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김없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기도를 올렸다.
"신이여, 우주여, 영혼들이여 감사합니다.
신이여, 우주여, 영혼들이여 오늘은 어제보다 더 밝고 회복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신이여, 우주여, 영혼들이여 하루빨리 회복하여 일반실로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기도를 마친 뒤, 어렴풋한 평온이 마음을 감싸는 듯했다. 그녀가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느껴지는 작은 희망은, 내게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힘을 주었다.
오늘은 설날이다. 2024년, 새로운 해의 시작. 달력을 넘기며 지난 한 해를 떠올리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내가 아프기 전 새해 결심으로 몇 가지 목표를 세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녀가 병상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내 결심을 조금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올해 나의 최우선 목표는 아주 단순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들로 채워졌다:
아내의 건강 챙기기
아내가 완전히 회복하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것이 올해 내 모든 계획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녀와 함께 더 많은 날들을 보내기 위해 나는 매일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의 건강 챙기기
아내를 돌보기 위해선 내가 먼저 건강해야 한다. 몸도 마음도 튼튼해야 이 과정을 지치지 않고 끝까지 이어갈 수 있다. 내가 잘 버텨야 그녀에게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
독서하기
책을 읽으며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란 속에서도 책이 내게 주는 지혜와 위로는 앞으로의 시간에 큰 버팀목이 될 것이다.
새해는 여느 때보다 차분하게 시작되었지만, 이 결심들은 누구보다 강하게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2024년, 이 목표를 이루며 더 단단해지고, 아내와 함께 평범한 행복을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내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소식은 내게 한 줄기 빛처럼 느껴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불안과 조심스러움이 자리 잡고 있다.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으면서, 나는 그녀가 예전처럼 지낼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또다시 되뇌었다. 그녀가 삶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내가 곁에서 지탱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내 어깨를 묵직하게 짓눌렀다.
하지만 그러려면 내가 먼저 건강해야 한다. 내가 아프면 그녀를 돌볼 수 없고, 그녀의 회복에 필요한 작은 힘조차 잃게 될 것이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나는 내 몸과 마음을 단단히 지켜야 한다. 이 깨달음은 나를 스스로 일으키게 만들었다. 내가 흔들리지 않아야 그녀가 안전하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그녀가 조금 더 나아졌을 때, 더는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여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따스해지는 것 같았다. 낯선 거리에서 그녀와 손을 잡고 걷는 모습,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함께 웃는 모습이 아득히 그려졌다.
"이제부터는 함께 즐기며 살아야 해."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녀와 함께할 날들을 위해 영어 공부도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곳에서 그녀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여행지의 노을 아래에서 그녀와 영어로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는 순간이 나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아침, 아내가 과일을 먹고 싶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부엌에 서서 사과와 배를 정성스럽게 깎았다. 그녀가 좋아할 만한 크기로 먹기 좋게 자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그녀의 손에 다시 이 과일을 직접 쥐게 할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스며들었다. 간호사들과 나눌 간식도 함께 준비하며 시간을 맞춰 병원으로 향했다.
설날이라 도로와 병원 주차장은 한산했지만, 병원 5층은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했다. 매일 마주치는 익숙한 얼굴들과 새로 온 이들의 긴장된 표정이 뒤섞여 있었다. 설날의 따뜻한 인사 대신 걱정과 불안이 가득한 이곳의 분위기는, 나를 포함한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새해 첫날, 나는 다시금 이곳에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 있었다. 나와 같은 마음을 안고 누군가를 위해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존재가 어쩐지 위로가 되면서도, 동시에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기도할 시간이었다. 익숙한 로비의 자리에서 나는 눈을 감고 간절히 되뇌었다.
"신이여, 우주여, 영혼들이여,
오늘은 어제보다 더 밝고 회복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이 기도는 내가 붙잡고 있는 하루의 중심이었다. 아내를 만나기 전, 이 기도를 드리며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하루가 무너질 것만 같았다. 새해 첫날인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더 나은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길 바라는 그 마음 하나로 나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11시 20분, 중환자실의 문이 열리고 오늘도 제일 먼저 병실에 들어서자 아내가 보였다. 그녀는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그녀가 푹 자는 모습을 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작은 소리에도 쉽게 깨던 그녀가, 오늘은 딸과 나의 대화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문득, 그녀가 깊은 잠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더없이 큰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간호사에게 물으니 그녀는 계속 자다 깨다를 반복했으니 깨워도 괜찮다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금세 눈을 뜨며, 익숙한 그 환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그 순간, 나는 또 한 번 그녀의 회복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늘은 양쪽 발의 링거도 제거됐고, 손에 씌워졌던 커버도 사라졌다. 손발은 여전히 느슨하게 묶여 있었지만, 불편함을 조금은 덜어낸 모습이었다. 그녀의 말투와 표정은 어제보다 분명 더 나아 보였다.
그녀의 첫마디는
"자기야, 나 힘들어."였다.
그 말에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그렇지, 힘들지. 하지만 조금만 더 참아줘. 이제 정말 다 나은 것 같아."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고통이 말끝마다 묻어나왔지만, 그 와중에도 그녀는 자신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그녀와 나눈 짧은 대화 속에서도, 그녀가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는 희망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녀의 힘겨운 순간들이 곧 끝나고, 우리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나는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이 왜 병원에 있는지, 어떻게 여기 왔는지를 물었다. 어제보다 더 자주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그녀가 자신의 상태를 조금씩 더 이해하고 파악해가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병원에 누워 있는 것도 체력이 있어야겠어. 많이 힘드네."
그녀의 농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몸은 힘들고 지쳤을 텐데도, 그녀는 여전히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고 있었다.
준비해온 배를 건네자 그녀는 한 조각을 입에 넣고는
"이거 진짜 맛있다. 이건 제철배네."라며 계속 달라고 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그녀다워서, 나는 배를 깎아오던 아침이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절반 정도를 먹은 후에야 멈췄다. 간호사가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알려주자 그녀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배를 맛있게 먹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예전 건강했던 그녀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작은 변화지만, 그녀의 밝은 모습과 식욕은 분명 회복의 신호였다.
나는 그 모습만으로도 오늘 하루를 더 힘낼 수 있는 이유를 찾았다.
의사가 병실로 와서 그녀의 상태를 설명했다. 뇌출혈의 후유증인 수두증은 어제 관을 제거하며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 했다. 그 말에 안도하면서도, 그의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했다. 다만, 혈관 수축증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어, 일주일 동안 주사로 치료제를 맞으며 경과를 지켜봐야 하고, 이후에는 약으로 예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반가운 소식은 연휴가 끝나는 화요일쯤 일반실로 옮길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그 안에 어떤 합병증이나 문제가 없을 경우에만 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그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무거운 돌덩이가 조금씩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중환자실이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긴장감과 무거움이 이제 점차 가벼워질 것만 같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며 연신 인사를 건넸다.
의사는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그 순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녀를 위해 노력했는지 새삼 떠올렸다.
이제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가 일반실로 옮기고, 조금 더 편안하게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 작은 변화가 우리의 희망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알기에, 나는 의사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하며 감사의 마음을 깊이 새겼다.
짧은 면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며, 처음으로 답답함이 아닌 안도감을 느꼈다. 가슴 속에 차오르던 불안이 오늘만큼은 희미하게 사라져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병원을 떠났다.
딸이 말했다.
"엄마가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는데,
이렇게 웃으면서 만날 수 있는 게 믿기지 않아요."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마음도 딸과 다르지 않았다. 아내의 손을 붙잡고, 그녀의 농담에 웃고, 배를 맛있게 먹는 그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그 몇 초의 대화 속에서도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늦잠꾸러기 막내도 생각났다. 아침마다 힘겹게 눈을 비비며 일어나 병원에 함께 가주는 막내의 모습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 작은 성의와 노력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힘으로 다가왔다.
차창 너머로 스쳐가는 풍경 속에서, 나는 우리가 지금까지 버텨온 시간들을 떠올렸다. 오늘의 안도감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겠지만, 오늘만큼은 그 감정을 마음껏 느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아내가 더 나아질 미래를, 그리고 그 순간까지 함께 버텨주는 우리 가족의 단단한 결속을 믿으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점심은 간단히 패스트푸드로 해결했다.
조용히 햄버거를 먹고 있는 딸을 바라보며, 이 평범한 한 끼에도 묘한 공허함이 스며 있음을 느꼈다.
무언가를 삼키는 내내, 아내의 빈자리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문득 말했다.
"요즘은 하루를 두 번 사는 것 같아요. 엄마를 만나기 전, 그리고 엄마를 만나고 난 후."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내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딸이 대신 꺼내준 것 같았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의 시간은 그저 공허하고 답답했다. 그녀를 만나기 전의 나는 반쪽짜리 하루를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병실에서 그녀를 보고,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에야 비로소 내 하루는 채워졌다. 그러나 그 만남 뒤에는 또다시 공허함과 미안함이 몰려왔다.
나는 티비를 보며 웃는 것도 죄스러웠다. 어쩌면 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렴풋이 지친 흔적이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내가 병상에 있는 동안, 딸도 어딘가에서 고통과 싸우며 버티고 있다는 것을.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엄마가 퇴원하면…"
나는 속으로 결심했다. 딸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그녀가 이 시간을 견디며 애써 웃고 있지만, 그 안에 감춰진 고통은 우리가 함께 극복해야 할 몫이었다. 아내가 퇴원하면 딸을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하거나, 딸과 함께 특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다짐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저녁은 며칠 전 본 장으로 해결했다. 이제 아내가 일반실로 옮길 수 있다는 소식 덕분에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어 어머니께 명절 안부 전화를 드렸다.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를 나누며, 아내의 상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짧은 통화 뒤에도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어머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였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며칠 전 퉁명스럽게 통화를 마쳤던 형님이 문득 떠올라,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형님은 받지 않았다. 그저 짧은 신호음만이 이어졌다. 순간 실망감이 스쳤지만, 곧 마음을 추슬렀다. 모든 것을 내가 신경 쓰기에는 지금의 나에게 여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더 이상 이 문제에 마음을 쓰지 않기로 했다.
저녁은 며칠 전에 본 장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간소한 식사였지만, 마음속에는 묘한 편안함이 자리 잡았다. 와이프가 곧 일반실로 옮길 수 있다는 소식 덕분이었다. 중환자실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거운 그림자에서 벗어나, 조금 더 밝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오늘은 그저 이만큼의 안도감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