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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사랑이 가장 아프다(1)

by 진아름



큰 딸이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하루 24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느낄 수 있도 록 해주고 싶어서 둘이 빈 배낭을 하나씩 메고 후쿠오카로 훌쩍 떠났다.


인천공항에서 새벽 6시 20분 비행기로 출발하여 1시간 10분 만에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나카스카와바타역의 유명한 라멘집에 도착해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섰을 때가 아침 8시 50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집이었다면 함께 아침을 맞이했을 동생이 지금 막 일어났다는 연락을 받은 큰 아이가 보여준 신비로운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는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고, 그때 아이가 보여준 표정으로 '미션 성공'을 직감했다.


소소한 것들로 배낭의 작은 주머니까지 꽉 채워 후쿠오카발 오후 6시 40분 비행기로 돌아와 집으로 향하는 공항버스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쭉 뻗었다.

집 근처 24시간 운영하는 해장국집에서 얼큰한 국밥을 한 그릇씩 먹으면서,

시간이 없는 만큼 나름대로 엄선하여 방문했던 후쿠오카의 맛집보다 우리 집 앞 소머리국밥집이 찐 맛집이었다는 감탄 또한 서로가 피곤해 말이 없어도 표정으로 나눌 수 있었다.


국밥집에서 우리 집이 얼마나 멀게 느껴지던지, 직전의 새벽에 인천에서 후쿠오카까지의 물리적 거리를 단숨에 이동시켰던 '설렘'의 주인은 마음을 소진하고 집으로 돌아올 힘을 남겨둘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겨우 집으로 돌아와 겨우 겨우 씻고 배낭 속 내용물쏟아내다시피 하고 덜렁 누워버렸다.


그때 아이가 했던 말,


"엄마, 몇 시간 전까지 일본에 있었다는 게 실감이 안 나. 오래전 같아"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 지 21시간이 지난 때였다.


살다 보면 가까운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내게는 가장 최근이면서도 기억이 너무나 흐릿한 나머지 조기치매를 의심했던 30대가 그랬다.

신체든 정신이든,

갑작스럽게 많이 소모해야 할 어떤 일이 생기면 숨어있던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그 시간을 통과한다.

무사히 안정기지에 도착했다고 느낄 때, 온전히 안정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제서야 지난날의 힘들었던 감정이 떠올라 서러운 마음이 몰려오기도 한다.


지난 새벽에도 5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출근하는 남편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바로 어제인데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남편을 배웅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누구보다도 일찍, 성실하게, 힘든 내색도 없이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이의 노고 덕분에 아이들과 내가 안온하게 살고 있으니 말할 수 없이 고맙고, 나는 하느님이나 부처님보다 남편에 대한 감사함이 더 커서 은혜롭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스물여덟 살 예쁘고 어린 내가 아이 둘을 낳아 기르고, 덕분에 사회에서 어느 날 갑자기 지워지고, 아이들이 자란 이후의 내 삶을 위해 새로운 공부를 하며 학사 학위 2개를 더 만들어 두 개의 국가자격증을 '언젠가' 대비용 보험으로 삼을 동안, 시간을 자산으로 만들고자 애쓰는 동안, 친정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듣도 보도 못한 32주의 진단을 받아 투병과 재활하시는 동안, 아버지 병간호 하시던 친정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진 동안, 그 모든 것이 안정기지에 도달하는데 15년 넘는 세월이 우리 사이에 그저 흘렀을 뿐인데.


본인의 몸이 축나는 데도 묵묵히 일만 열심히 해온 고마운 당신과 보낸 시간을 들여다보면 슬픈 마음이 든다.


나 아무래도 고장 났구나.





삼재를 살아가는 오늘의 생각_17)


결혼이 미친 짓은 아니지만

가끔 사람을 미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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