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부터 최고의 옷은 자세가 만들고,
최고의 동안은 총기 어린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년미라고 생각했다. 나는 요즘 보기 드물게 귀를 뚫지 않았는데 밝은 곳에서는 하늘의 별이 눈에 잘 띄지 않듯이 사람의 귀에서 액세서리가 반짝이면 상대적으로 눈빛이 약하게 보일 것만 같았다.
대신 나는 금반지를 끼고 있다! 두 개나!!
꼿꼿한 자세,
청년미를 담은 총기 있는 눈빛,
자연스러운 흰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이 들어가는 것은 내가 바라는 외형적인 노년의 모습이다.
TV에서는 자연스러운 흰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멋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배우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거의 모든 어르신들이 염색을 했다.
'내가 모르는 불편사항이 있을 수 있지' 생각하면서도 상상 속 노년의 내 모습은 언제나 백발숙녀이다.
어느 날 미용실 원장님과 자연스러운 흰머리카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중요한 사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가 상상하는 흰 머리카락을 위해서는 정교한 커트나 충분한 영양공급등의 머릿결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TV에서 본 멋진 백발은 한마디로 '염색 빼고 할 것 다 한'스타일이라는 것이다.
타고난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은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심한 곱슬이라 주기적으로 매직 스트레이트파마를 하는 나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큰 충격과 동시에 거의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머리카락의 색깔이 하얗게 변하는 건 자연의 이치라 나에게도 당연히 일어날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곱슬머리카락..! 이런 몹쓸 머리카락! 시멘트바닥에 새겨진 방정맞은 발자국처럼 일평생 나에게 괴로움의 흔적을 남기더니 그것만으로는 모자라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온 꿈의 한 조각마저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또렷하게 이런 소리를 들은 것 같다. 파사삭!!!!!
흰머리카락일수록 멋스럽게 보이려면 머릿결이 건강하고 윤기가 있어야 한다는데, 고등학생 때부터 연 2~3회의 매직스트레이트 파마를 꾸준히 해왔으니 여러 번 열펌을 당한 내 머리카락의 상태는 좋을 리가 없었다. 때가 되면 잘라내는 것으로 손상된 머릿결을 처리했다. 그렇게 정해진 머리카락 길이와 스타일로 20여 년을 넘게 살아왔다.
때마침 나에게는 흰머리가 생기고,
머리숱은 2/3 수준으로 줄고,
머리카락의 굵기도 눈에 띄게 가늘어지는
[code name. 노화]의 신호가 잡히기 시작했다.
큰 마음을 먹고,
(한 번으로는 부족해서 세 번 정도 큰 마음을 더 먹어야 했다.)
머릿결 관리법도 익힐 겸 20년 만에 매직스트레이트 파마를 멈추었다.
비가 오는 날에
곱쓰리 들은 외출을 최소화하고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어야 한다.
습한 날도 곤란하다.
땀이 많이 나도 곤란하다.
습하고 더운 장마철에는..
아름이 없으니 찾지 마시라...
내 기억 속 나의 곱슬머리는
90년대 미스코리아들이 내 머리를 모티프 삼았나 싶을 만큼 창창한 수사자 스타일이었는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숱도 많이 줄고 머리카락도 가늘어져 다만 한 마리의 나이 든 수사자가 되어있을 뿐이었다.
도저히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 싶어서 미용실로 뛰어가고 싶은 날도 많았지만
무조건 버티기 작전으로 5년이 지난 지금까지 탈매직을 유지하고 있다. 나이 40이 넘어서야 내 머리카락의 실체와 온전하게 친해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무려 이런 소리를 들었다.
"파마 아니고 곱슬머리라고? 정말 예쁘네!
머리숱은 또 어쩜 이렇게 많아~~~"
이웃 언니는 소싯적에 긴 생머리 찰랑이며 청순미를 뽐내고 다녔지만 지금은 노화 3 콤보와 함께 물미역 스타일로 변신하여 파마를 하지 않고는 외출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세상에나
내가 머리카락 칭찬을 받아보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란 말이 저절로 나오는 밤이다.
삼재를 살아가는 오늘의 생각_16
고진감래 흥진비래(苦盡甘來 興盡悲來)
슬픔이 다하면 기쁨이 오고, 기쁨이 다 하면 슬픔이 온다.
다가올 미래는 오늘보다 좀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