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감사하자.
새벽 다섯시반 허름한 옷차림으로 아파트 현장으로 들어가는 노가다 일꾼들을 봤다.
20여년전 여름방학때 나도 그중의 일원으로 아르바이트 한적 있어서 감개가 무량하다. 내 상하신을 내려다 봤다. 20만원 넘은 신에 사치하지는 않지만 결코 싸지 않은 옷차림에 그럼에도 난 뭐가 그리도 항상 부족함에 목마를까. 난 왜 항상 불안함에 휩싸일까.
불안정한 사무직 일보다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이 조직생활도 가끔은 아주 지겹다. 당장 떠나 힘으로 때우는 일들이던가. 요리든 용접이든 50넘어도 할수 있고 안정적이지는 않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충동을 애써 잠재운다.
집에서 5분거리고 딸애 학교에서 15분거리고 딸애한테 요리 해줄수 있고
주말에 데리고 놀러 다녀줄수 있고
다른 돈으로 환산 안되는 이점들이 많은 까닭이라 생각 한다.
이렇게 이런 저런 꿈들은 몇년째 떠오르다 사라져 가고 그러기를 수십번 반복한다.
그리고 언제든지 노가다에 다시 뛰어들 각오를 하고 있는 중이고 일 자체에 계급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받는 보수가 다르고 일하는 방식과 스트레스의 차이가 있을뿐 어떤 일이 고상하고 어떤일이 하찮고 그런 차이는 없다. 다만 남들이 하기 싫어 하는 일들은 좀 더 보수를 받는게 맞다고 생각 한다. 현실은 일용직 일거리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또다시 생각해보면 북한이란 곳에서는 이런 일자리 기회조차 없을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른 아침에 운동길에서 일출도 보고 참 천마행공처럼 여러가지 생각들을 주저리 주저리 적어 봤다.
이 아침운동을 견지하느라면
내 꿈에 대한 확신도
꿈을 이루기 위한 체력도 기타 다른 준비도
마무리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