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나의 과거를 돌이켜 나는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왔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비록 대단한 인생은 아니지만 나의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초석이 될 거라 믿기에 이렇게 글로써 나의 과거를 회상해 보려 한다.
1981년 추운 겨울 나는 8남매의 막내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내 어머니는 나를 낳으실 때 출혈이 많아
당시 열악한 의료환경에서 수혈한 피에 문제가 있어
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내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나셨다.
그래서 내 기억 속엔 엄마의 얼굴이 남아있지 않다.
오히려 다행인 걸까?
그때의 나의 형, 누나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막내형과 막내누나는 그 당시 국민학생이었을 텐데
차라리 나는 엄마의 기억이 없었으니 엄마가 세상을 떠나실 때의 슬픈 기억 또한 없다.
물론 ‘엄마 품’이라는 따듯할 것 만 같은 그런 좋은 기억도 함께 없다.
보통의 사람들은 몇 살 때부터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3살? 5살?
나는 정말이지 아무리 기억을 짜 내어도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7살 때의 일부 기억 말고는 그 전의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5살 전후로는 기억한다고 하는데
나는 마치 7살 때 즈음부터 내 몸에 나의 영혼이 들어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로 간 걸까 나의 유년기 시절의 기억은..
나의 유년기는 엄마 없이 막내누나와 함께 시작되었다.
당시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던 막내누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해 나를 업고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비록 1980년대의 오래전 이라고는 하지만
6,70년대도 아니고 당시에도 어린 동생을 업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흔치 않은 때라 막내누나의 고충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한창 친구들과 놀고 열심히 공부하기 바쁠 때 막내누나는 나를 돌보기 위해 중학교 진학도 포기했다.
아마 매일같이 나는 막내누나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며 누나인지 엄마인지도 모른 채 떨어지지 않으려 했을 것 같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내가 국민학교에 취학하기 전의 일이었다.
하루는 누나가 보고 싶어 아무것도 모르는 그 어린 마음에 누나를 찾아가겠다고 누나랑 자주 갔었던 큰 누나집으로 무작정 버스를 타고 울면서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 누나가 큰누나 집에 간 건 알았던 것 같다. )
당시 버스를 한 번은 갈아타고 가야 하는 곳 이어서 내가 어떻게 버스를 정확히 잘 찾아 타고 환승도 해 가며 큰누나 집으로 가는 제법 먼 길을 잘도 찾아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 어린 나이에 그 먼 길을 찾아온 나를 본 큰누나와 막내누나의 놀라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울면서 버스에 탔을 때 놀라던 버스 기사의 모습도 어렴풋이 기억은 나지만 내가 버스요금을 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