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귀신한테 홀릴 뻔했어
어린 시절 무서운 이야기들이 많이 떠돌았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 한 홍콩할매귀신, 빨간 마스크, 그리고 밤 12시가 되면 학교에 있는 이순신, 유관순 동상이 움직인다는 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 시절엔 사실관계를 확인해 줄 인터넷 검색도 유튜버도 없었기에 누구누구네 친구가, 친척이 그랬었다더라 하면 그 얘길 들은 아이들은 모두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 줄 알았고 그래서 그런지 그런 류의 이야기들은 항상 인기가 많았다.
여름이 되면 항상 그랬듯이 이러한 납량특집 같은 이야기들이 동네 어린아이들 사이에 마치 누군가의 경험인 것처럼 소비되고, 어느 해 여름에도 여느 해처럼 이러한 소문들이 무성해질 무렵 동네에서 아이들의 대장역할을 하던 국민학교 고학년 형들의 주도로 우리 동네에선 독특한 문화가 하나 만들어졌다.
해가지고 저녁이 되면 다들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뒤 8-9시쯤 모여 다 같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국민학교에 가서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일종의 놀이였다.
당시 살던 동네에선 학교까지 도보로 약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학교로 가는 길에는 마을을 좀 벗어난 비포장 산길이 일부 포함된 코스였다.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면 우리는 각 자전거에 두 명씩 타고 대략 5-6대 정도 모여 학교로 가서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와 오늘도 용감했다고 서로 자축한 뒤 헤어지는 일은 반복하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밤에 산길을 지나고, 어두운 학교 운동장을 돌고 돌아오는 과정이 무서운 친구들도 분명 있었겠지만 무섭다고 이 놀이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는 없었다. 마치 여기에서 빠지면 겁쟁이로 낙인찍힐 것 만 같은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학교 운동장을 돌아 다시 동네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산길이 끝나고 동네 입구에 들어설 무렵 당시 동네 초입에 있던 트램펄린 이 놓여있던 자리에 내 눈에 트램펄린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커다란 무덤 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트램펄린은 동네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랐는데 우리는 ‘퐁퐁’이라 불렀었다.
그곳은 학교에서 산길을 지나 동네에 다다를 무렵 산길 바로 옆 공터에 세 개가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었는데 당시 이곳은 우리들에게 산길이 끝나고 이제 마을에 진입한다는 일종의 기준점 같은 장소였다.
그날 하교하는 길에도 멀쩡히, 아니 좀 전에 학교로 가는 길에도 분명 트램펄린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동네로 돌아가는 길에 그 트램펄린들은 보이지 않고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트램펄린 크기만 한 무덤이 세 개가 나의 눈에 들어오자 나는 내 앞에서 자전거를 운전하고 있던 형을 불러 잠시 자전거를 멈춰 세우게 했다.
우리가 타던 자전거가 멈추고, 난 앞자리에서 자전거를 몰던 형에게 저기 보라고, “형 원래 저기 퐁퐁이 있던데 아냐? 왜 저기 무덤이 있지?”
시선을 좀 더 산속으로 돌리자 텃밭이 있는 자리에 쳐져있던 철조망에 흰 천들이 덕지덕지 널려있던 게 눈에 들어왔다.
“형 저기 위쪽에 흰 천이 걸려있는 게 보여? 이상해 저기 한번 가 보자.”
나도 모르게 저기 가 보잔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가 탄 자전거가 멈춰 서 있는 동안 다른 자전거들은 모두 우리를 지나쳐 동네로 들어갔고 나의 얘기를 들은 형은 고개를 돌려 나와 내가 가리킨 곳을 몇 번 번갈아 보더니 이내 아무 말 없이 나를 뒤에 태운 채 자전거를 몰고 그냥 그곳을 빠져나와 동네로 돌아갔다.
나는 산을 좀 올라가서 그 흰 천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뒷자리에 탄 입장이라 나의 의지로 자전거에서 내리기 전 운전대를 잡던 형이 출발을 해 버리는 바람에 미처 내려서 확인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동네 도착지에 모두 모였고 그곳에서 내 앞에 자전거를 몰던형이 입을 열었다.
“너 도대체 뭘 본거야? 나는 네가 얘기하는 거 하나도 못 봤어, 퐁퐁도 그대로 있었고 네가 얘기한 흰 천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
등골이 오싹했다.
내가 뭘 본거지? 난 분명히 무덤 세 개와 위쪽으로는 텃밭 철조망에 걸려있던 수많은 흰 천들을 분명히 보았는데...
하지만 나는 내가 굳이 거길 가 보자고 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고, 만약 그때 내가 자전거에서 내려 그곳으로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상당히 무서웠다.
“너 귀신한테 홀릴 뻔했어.”
다음날이 되어 학교로 등교하는 길에 나는 어제 봤던 무덤 세 개와 흰 천 같은 게 있는지 확인해 보았지만 그곳엔 평소와 같이 퐁퐁 세 개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산 위쪽의 텃밭에 있던 철조망에도 역시나 흰 천 같은 것은 걸려있지 않았다.
나는 지금은 귀신을 믿지 않는다.
물론 귀신같은 존재가 무섭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몸이 허약하면 정신도 허약해져 헛것을 본 것이라 지금도 믿는다.
하지만 그때 내가 본 것 또한 분명히 진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