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모험
큰 형수가 조카를 데리고 장을 보러 나가고 다락방에 갇혀있던 나는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창문을 살펴보았다.
창문은 작았지만 덩치가 작고 왜소했던 나는 그 창문으로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어 보였고 다락방의 높이도 그렇게 높지 않아 충분히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어느 날 오후 다락방의 작은 창문으로 빠져나와 지금껏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동네로 무작정 도망쳤다.
국민학교 2학년, 9살의 나이에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당시 살던 동네의 지리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겁도 없이 옆 동네로 도망쳤다.
그야말로 난생처음 가게 된 옆 동네를 방황하며 돌아가는 길도 생각하지 않고 마치 돌아갈 마음이 없는 것처럼 덤덤하게 길을 가던 중 어느 오락실을 발견하곤 그곳에서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아무런 계획도 없이 해가진 줄 도 모르고 오락실에서 멍하니 사람들이 게임하는 걸 구경만 하고 있던 나의 뒷목을 잡는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고
나를 잡아챈 그 손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막내형이었다.
막내형과 나는 9살 차이가 나고 당시의 막내형은 고등학생이었다.
그렇게 9살 꼬맹이의 무모하고 대담한 모험은 반나절만에 막을 내렸고
막내형의 손에 맥없이 집으로 끌려가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나는 죽었다..”
막내형은 나를 원래 살던 집으로 끌고 가는 내내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엄청 혼이 날 생각으로 머릿속에 가득해 막내형의 잔소리를 하나도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아무튼 대략 밤 9-10시 사이쯤으로 기억되는 시간에 원래 살던 집으로 나는 붙잡혀 갔고 결국 또다시 온 가족이 모이게 되었다.
내가 잔뜩 겁을 먹고 있던걸 모두가 알았는지, 아니면 모두가 너무 놀라고 황당한 일을 겪어 그런 것 인지 나를 나무라거나 호통을 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날 찾으려고 막내형이 우리 동네부터 시작해 오락실이란 오락실은 모두 다 뒤지고 다녔다고 했다.
그 당시 동네에 오락실은 참 많았다.
지금의 편의점 수만큼은 있었던 것 같다.
한 동네에만도 그만큼 많은 오락실들을 옆동네까지 모두 다 뒤지고 다녔다니 상당히 고생했었을 것 같다.
난 울면서 큰형 집에서 지내기 싫다고, 다시 원래 집에서 살고 싶다고 호소했고 아버지와 형들은 별다른 이견없이 그렇게 하라고 했으며, 내가 게임에 빠져 학교를 가지 않는다고 생각해 나를 달래려는 목적으로 당시에 제법 비쌌던 가정용 게임기인 게임보이를 사 주었다.
그날 나의 가출은 비록 반나절만에 막을 내린 소소한 해프닝으로 일단락되었지만
만약 그날 밤 내가 막내형에게 잡히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가 있을까 하는 끔찍한 상상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 시절은 정말이지 강한 자만 살아남던 약육강식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9살 꼬맹이의 무모하고 위험했던 일탈은 조기에 진압되었고, 크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생각보다 많이 혼나지도 않았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부터 나는 다시 원래 살던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게임기는 덤으로..
이 자식 이거 괜히 더 혼내고 억압하면 진짜 큰일을 치를 거라 생각들을 하셨을까?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저지른 일에 비해 그날의 결과는 너무나도 관대한 조치였던 것 같다.
내가 당시의 아버지나 형들 중 하나였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일이 있고 난 이후로도 개 버릇 남 못준다고 나의 땡땡이는 그날 바로 고쳐지진 않았다.
등교를 하는 빈도는 점차 조금씩 늘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학교를 가는 척하곤 다른 길로 내 빼
거리를 방황하거나 예전처럼 오락실에서 시간을 때우곤 했다.
집에 게임기가 생겨 물론 좋긴 했지만, 내가 게임에 중독되어 그런 것은 맞긴 하지만, 그것이 내가 학교를 가지 않는 이유의 전부가 아니었으므로 나의 비행은 그 후로도 오래도록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