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새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하 생략."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하 생략.(이미지 첨부)"
문자메시지가 쇄도한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전국의 정치인들이 새해 인사를 보낸다.
잠깐의 착각, 나는 과연 셀럽이군.
"네, 00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답하는 문자는 보낼 필요 없다.
보낸 사람도 이를 기대하지 않는다.
이따금 개인적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카톡으로 새해 인사를 보낸다.
이 경우는 읽씹 하기가 곤란하다. 상대방의 성의를 무시하는 결과가 된다.
내용이 길수록 부담은 커진다.
별로 할 말이 없어도 ‘내가 당신의 성의를 잘 알고 있소’라는 마음이 전달될 문구를 짜 내야 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읽고, 재답문자를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쉬운 일이 아니다.
"올해는 로또에 꼭 당첨되길 비는 마음으로 1천 원 보냈습니다."
"새해에 더 파이팅 하시라고 커피 쿠폰 보냈습니다."
"아직은 재미없는 글이지만, 앞으로는 재밌게 써 보시라는 뜻으로 1천 원 응원하고 갑니다."
이런 마음을 덧붙인 새해 인사는 아직 없었다.
뭐라 얘기할까 고민하며 카톡창을 보다 보니, 어라, 바로 위에 얼마 전 그에게 보낸 문자가 있었다.
“네, 선생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지난 한 해는 정말 다사다난했습니다...”
2025년 1월 1일이었다.
‘복사하기’와 ‘붙이기’로 그치면 너무 티가 날 거 같아서, 약간의 수정을 하는 성의를 더했다.
과연, 참 편리한 세상이다.
마음에 돈을 더해서 응원하는 인사가 아니라면, 새해 인사를 한 해에 두 번씩 하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들은 자기가 알든 모르든 확보한 휴대폰 번호로 새해 인사 문자를 두 번 보내려고 하면 얼마나 비용이 많이 들겠는가. 이미지를 첨부하면 문자 한 통에 1백 원 정도 하는 것으로 안다.
음모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것은 대량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업체들의 로비가 아닐까.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가장 매출이 많이 발생하는 날일테니, 한 번으로 줄면 경영에 심각한 타격이 올 것이다. 로비는 아니어도, 원하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나라의 경제를 생각해서 '새해 인사를 한 번만 하면 안 될까'하는 나의 주장은 철회하기로 한다.
무엇보다 경제가 중요하다.
이렇게 불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하나씩 줄여가면, 나비효과처럼 이것도 줄여야 하고, 저것도 줄여야 하고, 결국에는 경제규모가 확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약은 이따금 나쁜 결과를 가지고 온다.
소비 진작!
금연, 금주를 하기 힘든 이유가 바로 경제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살다 보면 정말로 이해가 안 되는 비합리적인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있다.
저 사람은 자기에게 해가 되는, 왜 저런 이야기를 할까.
텔레비전 건강프로에 출연한 의사 선생님 왈, “건강을 위해서 술과 담배를 끊어라.”
많은 사람들이 진짜 술과 담배를 끊어서 건강해지면, 환자가 줄어 의사는 지금보다 먹고살기 힘들어질 텐데?
폐 관련 치료약을 만드는 제약회사, 영양제를 제조하는 회사도 힘들어지고.
술 만드는 회사가 망할 수도 있고.
수많은 근로자들이 직장을 잃을 위험이 있다.
여하튼 부정적 영향을 받는 경제 섹터가 아주 많다.
특히 국가는 치명적 타격을 입는다.
20개비 궐련 1갑이 4,500원인데, 이중 각종 명목으로 국가가 가지고 가는 게 3,323원(73.84%)이다.(술도 절반 가까이 국가가 가져감.)
술과 담배가 의미 있게 덜 팔리면, 조세 수입에 큰 빵꾸가 난다.
빵꾸를 메꾸기 위해 다른 세금을 올려야 한다.
국민과 싸워야 한다.
이런 정도면 '술과 담배를 끊어라'라고 선동하는 의사를 국가 전복 기도 혐의로 구속시켜야 되는 거 아닐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처럼 경제와 나라의 재정을 걱정하는 우국지사들이 이 나라를 가득 채우고 있다.
PS. 옛날에 oo 담배회사로부터 자문 의뢰를 받은 적이 있다. 담배가격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세금이 늘어나니까 기재부도 싫어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이때 담배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줄지 않아요,라고 묻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하지만 그 의뢰는 거절했다. 흡연자에게 그런 의뢰를 하다니, 바보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