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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끝자락 여행

by 고진예 Jan 23. 2025

“엄마, 다음 주면 개학이야. 와아. 망했다!”

“너무 좋겠구나. 친구들도 만나고.”

“아아, 더 놀고 싶은데.”     


    마냥 놀고 싶고 놀아도 더 놀고 싶은 종민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 희재는 초등시절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보내는 중이다. 나의 가족은 남편과 두 아들이 있다.

  첫째 아들 희재는 6살에 입양되었고, 둘째 아들 종민이는 7살에 가정위탁 되었다. 가족이 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 많이 닮았다. 첫째는 예민하고 피아노를 잘 치고 그림을 좋아하는 예술적 성향이 엄마를 닮았다. 둘째 아들은 자전거와 운동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무척 많은 점이 아빠를 쏙 닮았다. 주변에서도 아들이 부모를 무척 닮았다고 신기하게 쳐다본다. 아마도 우린 이미 가족이 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조그맣게 접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은 우리 귀여운 아들 덕에 여름 방학 기간 동안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냈다. 방학은 엄마들에게는 무척 힘든 시간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무럭무럭 나무처럼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이 때로는 아쉽지만, 다행한 마음과 뿌듯한 마음이 든다.

방학을 일주일 남겨두고 놀고 싶어 하는 둘째의 한숨을 듣는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나는 큰 계획을 세우지 않고도 예정에 없던 여행비용을 감당하면서 여름 방학 끝자락에 아이들과 신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문화누리카드가 떠올랐다. 문화누리카드는 차상위계층이나 소외계층 아이들의 문화경험을 위해 문화체육부에서 만든 문화복지제도로 한 해에 13만 원을 지원한다. 종민이에게 지급된 카드로 작년에도 아이들과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보고  좋아하는 책을 사주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터였다. 문화누리카드는 당해 년에 사용하지 않으면 금액이 소멸된다.

    

    다음날 오후 3시경, 나는 부랴부랴 아이들의 간식과 저녁거리를 준비해 보냉 가방에 넣었다. 우리 가족이 택시를 타고 도착한 광주야구장에는 벌써부터 멋진 야구상의를 입은 관람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흥겨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한 둘째는 나를 재촉한다.

“엄마, 표를 빨리 사자요.”

    나는 번잡한 인파 속에서 종민이의 손을 잡고 현장매표소로 부랴부랴 이동했다. 생각보다 현장매표소에는 대기자가 많지 않았다. 다행히 내가 미리 봐두었던 105열로 좌석을 발권했다. 종민이는 표를 받아 들고 긴장한 전투사의 표정으로 형에게 티켓을 번쩍 들어 보인다. 우리는 경기장의 반 바퀴 가량을 돌아 제1 출입구 계단으로 향했다. 광주야구장의 규모는 생각보다 아담했다. 관람석에는 사람들이 들뜬 표정으로 노란 응원봉을 들고 앉아있거나, 경기장을 구경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멀리 치어리더들은 응원할 준비를 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우리는 좌석을 찾아 앉아, 집에서 가져온 과자, 음료수, 유부초밥, 과일 등을 먹으며 경기를 관람했다. 희재와 종민이는 전광판과 운동장을 보며 선수가 아웃되면 아쉬워하고, 안타를 치면 신나게 환호성을 지른다. 나와 남편은 야구에 관심이 없었지만, 신이 난 아이들 모습에 덩달아 즐거워진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짙게 내리더니 조금씩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최근 들어 태풍의 영향으로 소나기가 자주 내렸지만, 나는 ‘괜찮겠지.’라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객석에 앉은 사람들이 하나, 둘 우산을 편다.


  ‘후드득!’


    빗방울이 굵어진다. 경기는 4회 초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결국, 쏟아지는 비로 경기는 중단되었고, 운동장에는 파란 비닐이 깔리었다. 빗줄기는 점차 세차게 쏟아져 사람들은 실내로 들어가 비를 피한다. 우리도 일어나 경기장 복도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해도 지고 비도 많이 내려서 귀가하기로 결정하였다. 거세게 내리는 비를 맞고 야구장 출입구로 빠져나오니 옷은 다 젖어 있었다. 둘째는 나를 좇아오며 소리친다.


“엄마, 조마조마해!”

“맞아, 엄마도 조마조마해!”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져서 모두 물에 빠진 생쥐처럼 움추리고 겨우 건물 입구로 피신했다. 거리에는 경기장에서 빠져나온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우리가 인파를 피해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비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나는 아이들과 비를 맞으며 함께 걷는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무사히 집에 돌아와 따듯한 물로 샤워를 끝내고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문득, 나는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공간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희재와 종민이는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 비록, 아이들은 각자의 환경에서 살다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조금 늦게 들어왔지만, 가족의 품에서 신나고 행복한 추억이 차곡차곡 채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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