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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풍경

by 고진예 Jan 3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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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7시쯤 눈을 뜨니 거실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희재가 일어난 걸까.’

거실로 가니 희재가 서성이고 있다.

    나는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오늘은 입맛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남편이 냉동 새우볶음밥을 사 왔다. 새로운 맛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식욕이 당겨 아침을 좀 더 먹지 않을까. 팬을 예열하여 새우볶음밥을 넣고 3분여 볶아 주었다. 끈끈한 밥알이 열기에 졸아지면서 제법 달달 해져서 입맛을 당긴다. 김치와 장조림을 그릇에 담아 식탁에 올려놓았다.


“희재야. 볶음밥 먹자.”


희재는 별말 없이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다.


“희재야. 맛이 어때?”

“맛있어요.”


희재는 표정에 변화가 없어 정말 맛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종민이가 거실로 나온다.


“나도 밥 주세요.”     


희재는 어젯 밤부터 부쩍 군대 얘기를 꺼낸다.


“엄마, 군대는 몇 살부터 갈 수 있어요?”

“글쎄, 희재는 군대 가려면 아직 멀었어.”


종민이는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다.


“난 군대 안 가. 박사를 해서 군대 안 갈 거야. 아니면,”

“금메달을 딸 거야?”


종민이가 머쓱하게 웃는다.


“금메달은 못 딸 거 같아. 박사도 못 할 것 같아. 난 40살에 군대에 갈 거야.”

“종민아, 군대는 서른 살 까지만 갈 수 있어. 서른 살 이전에 모두 가야해. BTS의 RM도 서른 살에 군대 갔어.”

“아, 그럼 난 서른 살에 가야겠다.”

“그 사람들은 10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며 공연하다가 군대에 간 거야. 종민이도 아이돌이 될 꺼야?”


듣고 있던 희재는 퉁명하게 말한다.


“종민이는 아이돌이 아니고 돌아이 겠지.”

“그래, 형은 만화땡이야. 만땡이 되겠지. 만땡도 안될 거야.”

“종민아, 다른 사람 말에 신경 쓰지 마.”


    요즘 들어 종민이는 유독 형의 지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말대꾸를 한다.      

종민이와 희재가 밥을 먹는 사이, 나는 서재로 가서 메일을 확인하였다. 그 사이 희재는 가방을 메고 현관에 서 있다.


“다녀오겠습니다. ”


나는 부랴부랴 희재를 배웅한다.


“그래. 희재야, 잘 다녀와.”


종민이는 혼잣말하듯이 말을 던진다.


“형은 너무 예민해.”     


    희재를 보내고 다시 일을 잠깐 보는 사이, 종민이가 서재로 들어오더니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엄마, 축구 선수 중에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선수가 누굴까요.”

“글쎄.”

“할로 시작해요.”

“글쎄.”

“호날두예요.”

“그렇구나.”


나는 모니터로 메일을 확인하느라 건성으로 대답했다.     


“엄마, 나 똥 싸는 거 봐주세요.”

“엉?”


나는 모니터를 보면서 대답했다.


“똥 싸는 거 봐주세요.”

“그렇구나. 2학년이 똥 싸는 거를 봐달라고 하는구나. 책에다 써야겠다.”

“그래요, 책에다 쓰시고요. 일단 나 똥싸는 건 봐주세요. 할 얘기도 있다고요.”


    희재가 학교 가고 난 후, 종민이가 허전함을 느끼는 것 같아 종민이와 화장실 앞으로 갔다. 종민이는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변기에 앉는다.


“어이구, 똥 냄새.”     


나는 종민이가 나를 볼 수 있게 화장실 문 옆에 앉아 커피잔을 들었다.


“커피 냄새를 맡고 있어야겠다.”


종민이는 재밌다는 듯이 웃는다.


“엄마 축구 선수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가 누굴까요.”

“글쎄, 누굴까.”

“팰레요.”

“아하.”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선수는 누굴까요.”

“손흥민?”

“아니요.”

“모르겠는데,”

“조현우요.”

“아하, 그렇구나.”

“그럼, 네 번째로 좋아하는 선수는 누굴까요. 한국 선수예요.”

“글쎄.”

“엄마가 금방 말했어요.”

“누구지?”

“손흥민이요.”

“아하, 그렇구나.”

“그럼, 팰래 아빠 이름이 뭘까요.”

“맞을래?”

종민이가 크크 거리며 웃는다.

“맞을래? 진짜예요?”

“아니야. 정재호?”

“아니잖아요.”

“그래, 정재호는 나종민 아버지지. 엄마는 모르겠는데,”

“그럼, 손흥민 아빠는 누굴까요.”

“손웅정인가.”

“맞아요.”     


    나는 갑자기 옛날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종민이는 외할머니 이름은 알고 있니? 종민이는 할머니 이름은 모르면서 남의 아버지 이름은 잘 알고 있구나.”

“손흥민 아버지 이름은 매일 읽고 있자나요.”


축구를 좋아하는 종민이는 손흥민 위인전을 자주 읽는다.


“할머니 이름이 뭐예요.”

“윤소원 할머니야. 소원이 있어요.”


종민이는 두 손을 모은다.      


“할머니, 소원이 있어요. 밥은 억지로 다 먹게 하지 말아 주세요. 할머니가 주시는 밥은 맛있지만, 다 먹는 건 어려워요.”


종민이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기도한다.


    종민이는 재잘거리며 얼굴을 씻고 양치를 한다.


“양세영 코치는 양세영이 어렸을 때, 공부는 잘 하지 못해도 배드민턴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줬대요. 그래서 양세영이 배드민턴에 집중할 수 있었대요.”

“그렇구나.”

“배드민턴을 잘하려면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생각했다.


“순발력? 스피드가 좋아야겠지. 손힘도 있어야 하고.”


종민이는 고개를 길게 끄덕이며 나를 가르치듯이 말한다.


“감각이 좋아야 해요.”

“그렇구나.”

“빠른 공을 치려면 공을 잘 볼 수 있는 감각이 있어야 하고 상대방을 잘 보고 공이 어디로 오는지 판단해야 해요.”

“그렇구나.”


    오늘따라 종민이는 아침부터 운동 얘기를 계속 꺼내 놓는다.  종민이는 옷을 입다가도 해먹에 앉아 몸을 움직이며 그네를 탄다.


“엄마, 나는 우리 반에서 힘이 제일 쎄, 친구들은 나보고 이상하대.”

“왜”

“친구들이 왜 나는 보육원에 있었는데 힘도 세고 똑똑하녜.”

“그래?”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종민이는 가르쳐주듯이 억양을 높이다 내린다.


“타고 난거야!”

“그래, 타고 난거지.”     


    나는 오늘따라 종알종알 말이 많아진 종민이를 제촉 한다.


“종민아, 이제 학교 가야지. 가방을 잘 확인했니?”


종민이의 가방을 들어보니 꽤 묵직해서 가방을 열었다.


“종민아, 오늘 쓰지 않는 책은 놓고 가자.”


종민이는 가방 안에서 한자책과 불필요한 종이들을 꺼내 놓는다.


“가방이 무거운 이유는 연필통 때문이예요.”


연필통에는 열 개 이상의 작은 지우개 조각이 잔뜩 모여 있다.


“종민아. 김경원 이모가 말했잖니. 제일 소중한 지우개만 들고 다니라고.”

“난 다 소중해.”


결국 종민이는 지우개를 한 개도 빼지 않고 연필통에 그대로 담아 가방에 넣었다.      

여분의 마스크를 가방 앞 지퍼에 넣어주려고 열었다. 카드 만한 묵직한 지우개가 두 개가 나온다.


“종민아, 이렇게 큰 건 두고 다녀야지.”

“안돼요. 길이 재기 할 때 쓸 거예요. 넣어주세요.”


 나는 할 수 없이 가방에 넣었다.


“우리 아들이 건축가가 되려고 길이 재기를 좋아하는구나.”


    종민이는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는다. 나는 종민이의 구겨진 신발 뒤축을 펴주려고 신발을 잡았다.


 “내가 할 수 있어요.”


종민이는 두 손가락으로 능숙하게 신발 뒤축을 펴고 발을 넣는다.


“종민아, 오늘도 재밌게 보내.”


종민이가 엘리베이터에서 손을 크게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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