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재는 종민이와 놀 때 제일 신이 나 있다. 희재는 저녁 밥을 먹기 전후로 어김없이 종민이를 부른다.
“종민아, 같이 놀자.”
희재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포켓몬스터 놀이다. 희재의 포켓몬 놀이는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써 캐릭터의 기술과 능력치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물리치는 말 게임에 가깝다. 희재는 종민이와 함께 살면서 종민이와 놀고 싶은 마음에 포켓몬 놀이를 선택한 것이다. 사실, 희재가 종민이와의 놀거리를 찾았다기보다 희재는 자신이 좋아하는 포켓몬 놀이를 하기 위해 종민이를 이용한 거라고 본다.
희재는 종민이를 불러 함께 포켓몬 캐릭터와 기술을 불러내고 기술치를 계산하여 상대방을 제압한다. 포켓몬은 각 캐릭터의 종류도 방대한 데다, 각 캐릭터의 기술을 기억하고 능력치까지 계산한다는 것은 아무리 재밌고 좋아하는 게임이라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7살 때부터 꾸준히 포켓몬을 연구해 온 희재에게는 익숙한 놀이지만, 8살 종민이에게는 커다란 공부 같은 느낌일 것이다.
가끔 종민이는 혼자 놀기에 심심하거나 놀거리가 없을 때, 친구가 필요할 때는 형의 요구대로 포켓몬 놀이를 시작한다. 그러나 포켓몬 놀이는 일이십 분에 끝나는 놀이가 아니다. 한두 시간을 훌쩍 보내며 둘은 “화염방사!”라고 외치며 두 팔을 벌려 손을 뻗고 소리친다. 그러면 상대방은 화염방사에 대응할 만한 기술을 소리내어 외친다.
그나마 최근에는 놀이방식이 개선되어 종민이도 즐거워했다. 작년에는 종민이가 앉거나 서서 희재에게 지시를 내리면, 희재는 각 캐릭터로 변신하여 몸을 돌려 기술을 펼친다.
“화염방사!”
가만히 지시를 내리며 보고만 있는 종민이 입장은 괴로웠을 것이다. 신이 난 건 희재뿐이었다. 그런 놀이가 계속되자, 어느 날 종민이는 힘들다며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그럴 때마다 희재는 “그래, 그러면 너에게 티비를 보여주지 않을 거야!”라며 조건을 걸거나 “내가 아이스크림 줄 수도 있는데” 하며 회유한다. 그러면 종민이는 또 귀가 솔깃해져서 포켓몬 놀이에 참여한다. 그러기가 벌써 1년여가 되어간다.
어제도 둘 간의 놀이는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종민이는 2학년이 되었고 가족에 적응되었고 자기 주관도 점차 강해졌다.
“종민아, 나랑 놀자.”
희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종민이를 불러보지만, 종민이는 아무 말 없이 거실에 서서 책을 펼쳐 읽는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주방에서 일을 보고 있는 내게 희재가 다가온다.
“종민이에게 미디어를 너무 많이 보여주는 것 같아요. 나 어렸을 때는 일주일에 십 분을 보여줬는데,”
나는 희재가 종민이에게 불만이 있음을 느꼈다. 늘 그랬지만, 둘이 싸우고 나면 희재는 항상 내게 와서 종민이 험담을 늘어놓는다.
“희재야, 너는 지금 종민이가 안 놀아줘서 불만인 거잖아. 그리고 미디어는 네가 보여주는 거잖아.”
“나는 보지 말라고 하는데도 종민이가 계속 봐요.”
희재에게는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씩 미디어 시청을 허락했다. 희재는 그 시간을 이용해 유튜브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방송이라든가 애니메이션 영상 등을 시청한다. 희재는 혼자 보기도 하고 종민이와 함께 보기도 한다.
나는 주방에서 저녁 먹거리를 챙기고 있는데, 희재는 뭔가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는지 다시 내 옆으로 와서 중얼거린다.
“종민이는 너무 욕을 많이 해요. 엄마가 너무 오냐오냐하니까, 종민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욕을 한다고요.”
희재를 쳐다보니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다. 보다 못한 남편이 슬쩍 종민이에게 간다.
“종민아, 왜 형이랑 안 놀아.”
“난 지금 포켓몬 하기 싫다고요.”
나는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중이다.
희재는 지나가는 말투로 가족에게 공지한다.
“오늘 긴급회의를 하겠습니다.”
희재가 뭘 얘기하려는 것인지 알 듯했지만, 모른 척했다.
“그래, 다 모이세요. 희재가 회의할 게 있대요.”
나와 남편, 희재와 종민이가 식탁에 모였다. 종민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빠 옆에 앉는다.
내가 먼저 운을 떼었다.
“희재야, 얘기하세요.”
“종민이가 너무 미디어를 많이 보는 거 같아요. 애가 미디어를 보면서 나쁜 말만 배워서 욕을 너무 많이 해요. 종민이의 미디어 시간을 줄였으면 좋겠습니다.”
종민이는 바로 맞받아쳤다.
“내가 무슨 욕을 해. 나 욕 안 했어.”
“무슨 너 아까 나한테 욕 했잖아.”
“안 했어.”
둘 간의 실랑이를 차단하기 위해 내가 사회를 보았다.
“종민이는 일주일에 미디어 시간이 토요일 30분 밖에 없어.”
“나 어릴 때는 일주일에 미디어 십분 봤다고요.”
“라떼를 얘기하면 안 돼. 그러면 아빠의 라떼가 있고 엄마의 라떼도 있잖아.”
남편은 고개를 끄떡인다.
“나 때는 말이냐. 어렸을 때 게임이 없었어. 늘 밖에서 친구들이랑 놀았지.”
“아, 좋겠다.”
종민이가 남편을 부러운 듯이 본다.
“그리고 희재 어렸을 때 생각나니. 희재가 잠을 못 잘까 봐. 엄마 아빠가 잠자기 전에 누워서 희재에게 옥토넛 영상을 일이십 분씩 보여주던 거.”
남편은 눈을 굴리며 계산한다.
“하루에 이십 분씩이고 일주일이면 140분.”
“아, 나도 옥토넛 좋아하는데, 나도 옥토넛 영상을 보고 싶어요.”
종민이는 입맛을 다시며 나를 본다.
희재는 입을 오므리고 궁리 중이다.
“희재야, 종민이가 미디어를 보는 시간은 희재가 티브이 볼 때 같이 보는 시간이잖아. 그리고 네가 보는 미디어가 종민이에겐 맞지 않아. 희재가 시청하는 영상에 욕이 나오니까 종민이가 배우잖니.”
“그러니까 종민이가 안 보게 해달라고요.”
“그래서 넌 어떻게 하면 좋겠니.”
“나도 미디어 시간을 30분 줄일 테니까 종민이도 미디어 시간을 줄여 주세요.”
“음.”
“그럼, 희재가 월요일에 미디어 볼 때 종민이는 30분 옥토넛 영상을 보자.”
종민이는 말이 나오자마자 얼굴을 반짝거리며 약 올리듯이 형을 본다.
“좋아, 좋아요. 난 그게 더 좋아.”
그런 종민이가 얄미웠던지 희재는 종민이를 쏘아본다.
“그리고 종민이는 욕을 많이 해요. 욕 못하게 해야 해요.”
“나 안 했어! 형이 했지.”
둘은 서로 욕을 한다며 맞받아친다.
“종민아, 상대방이 말할 때는 3초 뒤에 말하는 거야. 바로 말을 받아치면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알았어요. 하나둘셋!”
“어휴.”
나는 또 시작이구나 하고 싶어 대화를 중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재야, 더 할말 없니?”
“네.”
“이것으로 오늘 회의를 끝내겠습니다.”
나는 일어나 다시 주방으로 가서 나머지 정리를 마친다.
희재는 거실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간이칠판을 집어 닦고 뭔가를 쓰고 피아노 위에 올려둔다. 그리고 혼잣말하며 으쓱인다.
“‘어쩌면 그냥 사과보다 썩은 사과가 맛있을지도.’ 나의 명언으로 삼아야겠어.”
“명언이 뭐야.”
종민이가 바로 끼어들어 형에게 물어본다.
주방일을 마치고 거실에 나오니 피아노 위에 희재가 빼곡히 적어놓은 글이 보인다.
1. 희재 월 TV 1시간 수TV 30분 토일 게임 1시간
나종민 월 옥토넛 30분 토 게임 30분
2. 생각하고 말하기
3. 3초 생각하고 말하기
어쩌면 그냥 사과보다 썩은 사과가 더 맛있을지도?
한 시간이 흘렀을까. 검도 학원에 다녀온 희재는 아이 방에 엎드려 간식을 먹으며 만화책을 본다.
“종민아, 이제 자야지.”
“여기까지만 보고!”
안방에서 만화책을 보던 종민이는 잠자라는 말에 후다닥 아이 방으로 들어가 형아 옆에 바짝 엎드려 만화책을 본다. 그리고 아이들은 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형아, 재밌는 얘기 해줘.”
종민이는 잠투정하느라 뒤척인다.
“엄마, 종민이는 사람이 얘길 하면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해요.”
희재는 아직도 불만이 풀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재야, 다른 사람을 평가하면 행복도가 떨어진대.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자기만 잘 하면 돼. 노르웨이라는 나라는 행복 만족도가 가장 높은 나라인데, 우리나라 사람이 노르웨이 사람에게 비상식적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봤대. 그 사람 말로는 비상식적인 사람이란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이라고 했대. 왜냐면 사람은 모두 달라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척이던 종민이가 말을 건다.
“사람을 평가 안 할 수 있어요?”
“노르웨이가 어디예요?”
희재의 목소리도 들린다.
“북유럽”
종민이와 희재의 질문이 쏟아진다.
아, 나는 해성처럼 쏟아지는 질문에 잠이 들어 버렸다.
“얘들아,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