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이라지만 무척 더운 밤이다. 처서(處暑)가 지나고 나서 그나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들어선다. 잘 시간이 되었지만 종민이는 통 자고 싶지 않은 느낌이다. 형 언제 와?를 계속 물어온다. 형은 저녁을 먹고 검도학원에 가서 저녁 9시 반에 끝나지만, 가끔 근처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돌아온다.
“엄마, 형 언제 와?”
“글쎄, 엄마도 모르지.”
종민이는 책을 펼쳐 들고 거실로 가서 책을 읽는다.
어느 덧, 밤 열 시가 되어 나는 종민이를 방으로 데려가 재운다. 종민이는 잠자리에 누웠지만 통 잠이 오지 않나 보다. 옆에서 자던 남편이 일어나 거실로 나가고 방에는 나와 종민이만 누워있다.
“종민아, 잠이 안 오면 엄마한테 와.”
종민이가 뒹굴어 내게 온다. 나는 종민이를 힘껏 안아준다.
“아, 더워.”
종민이는 나를 뿌리치고 뒹굴거리며 방안을 굴러다니다 자신의 잠자리로 굴러간다.
“종민아, 좋은 꿈 꾸고 잘자.”
“녜녜.”
“종민아, 좋은 꿈 꿔.”
“녜녜.”
“종민아, 엄마의 막내 아들이 되어줘서 엄마는 너무 좋아.”
“형아는 첫째 아들이고 나는 막내야?”
“그럼, 우리 막내 아들이지. 종민아, 엄마의 아들이 되어줘서 너무 고마워.”
“녜녜.”
종민이는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 같지만 다 듣고 있다는 것을 안다.
“종민아, 이제 엄마 아빠 같아?”
“무슨 소리야, 엄마 아빠지.”
“전에는 아저씨 아줌마 같았지.”
“전에는 아저씨 아줌마 같았지만, 벌써 9개월 전이야.”
문득, 종민이에게 남편과 나는 아저씨와 아줌마처럼 느껴졌을 때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와 아빠는 아줌마 아저씨 같았고 형은… 형은….”
“동네 형 같았겠지.”
“아하, 동네 형.”
불이 꺼진 방에 희미한 달빛이 들어오고 종민이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아빠랑 산 지 벌써 365일이 지났어.”
“종민아, 1년이 지나고 지금은 9월 초니까, 365일에 올해 8월을 계산하면 한 달에 30일이니까 8 곱하기 3은 몇이야?”
“21?”
“엉?”
“22?”
“엥?”
“아, 24구나.”
종민이는 최근까지 구구단을 헷갈린다. 종민이에게 구구단을 물어보면 구구단은 2학년 2학기부터 배운다고 변명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365일하고 240일 동안 같이 살았네. 그럼 총 몇 일이야?”
“605일 동안 같이 살았네. 거의 2년을 살았네.”
“그러네.”
“종민아, 이제 엄마 아빠가 엄마 아빠 같아?”
“당연하지. 지금은 그냥 엄마 아빠, 형이야.”
마침, 운동을 다녀온 희재가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며 걸어 들어온다. 희재가 발을 방바닥에 디딜때마다 쩌억 쩌억 끈적이는 소리가 들린다.
“희재야, 발 씻고 자야지.”
희재는 별말 없이 안방을 나간다.
종민이는 고개를 들고 형을 따라나서며 방문을 연다.
“종민아, 지금 나가면 내일 아이스크림은 없다.”
“안 나갈거라고요.”
종민이는 방문을 열고 문턱에 서서 힐끔힐끔 형을 찾는다. 종민이는 다시 잠자리에 누워 빈둥거린다.
종민이는 형이 방안에 들어와 잠자리에 눕자마자 말을 시킨다.
“형, 재밌는 얘기 해줘.”
희재는 아무 말이 없다.
“희재야, 종민아, 오늘도 좋은 꿈 꾸고 잘 자거라.”
아이들은 조용해진다.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나지막히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