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시간
배우자의 선택은
장점들을 맞추어보며
가장 잘 맞는 파트너를 찾는 것이 아니라,
단점들을 맞추어보며
가장 잘 맞는 파트너를 찾는 것이 아닐까.
엄청난 뇌의 도파민 분출로 인한
뜨거운 사랑의 시기는 반드시
지나가게 되어 있는데,
그것이 지나가고 나면,
상대의 단점을 뜨거운 사랑으로
이해해줄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한다.
이 지점에서, 결혼 생활의 질이나
부부 관계가 새로 정립되는 것 같다.
단점이 보이고,
나와 극명하게 다른 점이 드러나고,
나에게 잘못한 일들이 쌓여간다.
"안 맞으면 이혼하면 되지 뭐~"
"이혼이 요즘 흉이야?"라고 말하는
요즘 세대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이혼은 반드시 큰 상처와 고통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그 지속기간은
개인마다 모두 다르다.
상처와 고통이 없다면,
가전제품 바꾸듯이
이혼하고 배우자를 바꾸면 되지만,
이혼은 이사를 가는 과정에 비유하기에도
더 고통스러운 과정일지 모른다.
살던 집을 전부 내 손으로 부순 후에,
새로 집을 지어야 하는
끔찍한 과정일지 모른다는 뜻이다.
극단적으로 상대를 비난하며
상처주기를 서슴치 않으며
결국 이혼에 이르는 과정에서
두 당사자는 대화라는 훌륭한 도구를
훌륭하게 사용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애시당초 두 사람은
힘든 시기를 만났을 때,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 성향이나
인품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대화란,
그 어느 관계에서도,
힘든 늪을 빠져나오게 해주는
마법의 도구이다.
연애하는 시절,
두 연인은 반드시 다투거나
이견으로 충돌하게 되어 있다.
이때, 상대의 대화의 수준이나
품격을 봐야한다.
혹시나, 연애 중에 한 번도 싸우지 않았음을
자랑으로 여기는 커플이 있다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둘이 너무 천생연분이고,
둘다 좋은 사람이어서,
너무 사랑하고, 너무 배려해서가 아니라,
부딪힐 상황을 아직 만나지 못해서
그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가올 수십 년의 결혼 생활은,
돈, 출산, 직장, 건강, 사고, 불운 등을
수도 없이 함께 겪는 긴 과정이다.
힘든 상황에 놓여지게 될 때,
상대와 생각이나 의견이
정면으로 배치될 때,
그때 중요한 것이 대화의 품격이다.
그러므로, 싸운 적 없는 연인이라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닐 수 있다.
힘든 상황, 부딪히는 대화에서
대화의 품격과 수준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는 '상대의 말을 듣는 시간'이다.
상대의 말을 끊지 않고,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의 길이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대화 그릇의 부피'이다.
식당에서 고객과 식당 주인의 대화가 부딪힐 때,
고객의 말을 10초도 듣지 못하고,
"그럴 거면, 다른 집 가. 난 당신같은 사람한테는
장사할 생각 없으니까. 나가."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의 대화 그릇 부피는 듣기 10초이다.
대화 품격의 그릇 부피는
듣기 시간과 비례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상대의 말을 얼만큼 들을 수 있는가가
대화가 부딪힐 때, 두 사람의 관계가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을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비난을 하든, 욕을 하든,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듣고 해도
늦지 않다.
그것만 해줘도,
기본적인 대화 품격은
갖춘셈이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고,
말을 자르는 사람과
아무리 말해도 딴짓 하는 반려견은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를 것이 하나 없으므로,
긴 결혼 생활하기에 너무 힘이 들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배우자는 쓰다듬어주고,
꼬리 흔들며 나에게 위안을 주는
반려견이 아니라,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
도와주고, 이해하는 반려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