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 그리고 느낌표
”너 지금 몰골로 가면 재활병원에서 치료도 받기 전에 쫓겨나겠다.ㅋ“
퇴원 하루 전날의 어머니께는 지금의 내 몸상태보다 얼굴상태에 더 걱정이 많은 거 같다. 거울을 보니 기름기는 둘째치고 수염이 얌생이처럼 자라나 있다. ‘한 달 동안 면도를 안 하면 수염이 이렇게 자라는구나..’ 남자의 로망인 수염과 장발머리 중 하나를 과감 없이 지워버렸다.ㅋ
“너 이대로 보내면 엄마 마음 쓰여서 안 되겠다. 그래도 사람처럼은 하고 가자. 아무리 병원에 치료받으러 간다 해도 그렇지. 첫인상이 정말 중요해 아들.”
병원 안의 파라다이스. 지하 1층 세븐일레븐에 들어가서 빠르게 과자코너를 지나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21년도 5월. 얌생이 수염이 마스크로 인해 가려져서 정말 다행이었다.
“엄마. 바디워시보다 면도기가 우선이야.”
6중 날 도루코 면도기를 바구니에 담고 바디워시부터 차례대로 하나씩 구매한 다음 병실로 올라가 새 병원복을 챙겼다. 용량이 크니 재활병원에 가서도 써야지.
“하나 둘 셋!” 샤워실 안에 있는 환자용 목욕의자로 옮겨 앉았다. 어머니께서 적당한 물온도를 찾기 위해 손을 왔다 갔다 하며 체크하고 있다.
”이제 물 뿌린다.! “
이 정도 온도면 됐다 싶어 샤워기 헤드를 내 몸 쪽으로 틀었다. 따뜻한 물줄기가 정수리부터 차례대로 흘러내려지는 순간, 몸 안에서 엔도르핀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뿜어져 나오다 못해 넘쳐흐르고 있다. 물티슈와는 비교불가한 상쾌함이었다. 가끔 이 기억을 회상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샤워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영원할 거 같았던 대학병원에서의 마지막 밤이 왔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라고 표현해야 하나? 신경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대학병원에 계속 있어도 되는 줄 알았다. 내일이면 오늘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 찾아온다. 퇴원을 준비해야 할 거 같다는 얘기를 들은 순간부터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 보다 두려운 마음이 컸다. 장애를 가지게 된 지 이제 한 달 지났다. 다리는 여전히 안 움직이고 감각도 없다. 발바닥에 뜨거운 물줄기가 왔다 갔다 해도 아무 느낌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에선 앞으로의 나의 삶이 그려지고 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바지 안에는 속옷 대신 성인용 기저귀가 채워져 있을 것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 가족들에게 피해만 입힐 것이다.
외출할 때마다 대변 실수를 할까 봐 조마조마하며 다녀야 할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내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분명 안쓰럽게 쳐다볼 텐데..
앞으로 연애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 상태로는 직장에 복귀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 앞으로 뭐 먹고살지?
모두 부정적인 장면들 밖에 없었다. 왜 정신은 멀쩡한 거지? 그냥 머리부터 떨어져 죽어버리지..
(정신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