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엔 재능이 없어서요

재활병원 EP.2

by 무명독자


꿈을 꾼다.

어두운 공간 어딘가에 있다. 틈 사이로 빛 한줄기가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두 발로 일어나 빛을 향해 걸어간다. 문을 연다. 화장실 안에는 소변기 외에 어떤 물체도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다가가 바지와 속옷을 내리고 파리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곳을 향해 조준한다. 방광에서 요도로 무게감이 느껴지는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한다.

주황색 일회용 소변줄.


꿈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돌리니 간이침대에서 주무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습관적으로 아랫배를 눌러본다.

물풍선 같네?

소변통을 침대 안전바에 걸친 후 몸을 양 옆으로 움직이며 바지를 벗고 있다. 리모컨으로 침대 프레임을 세우고 있다. “지 이 이이이 잉”


아버지가 깨셨다.

“아들. 오줌 싸려고? 아빠가 소변통 잡아줄게.”

꿈속에서 나를 놀라게 한 주황색 소변줄을 다시 요도 안으로 천천히 집어넣고 있다. “쪼르르르르”




안 좋은 꿈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은 채 병실 문을 나선다. 1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휠체어를 타고 완만한 경사로를 오르고 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재활치료실 입장.


“안녕하세요~”

(이분이 내 담당 치료사인가?)

“혹시 트랜스퍼할 줄 아시나요!?”

“그럼요!”

휠체어 사이드를 분리하고 재활테이블로 슝~(멋진 척)


“만지는 거 느낌 나요?”

담당 치료사님이 발가락을 만지며 물어보신다.

“아니요.”

“그럼 이거는요?” (허벅지를 꼬집으며)

“미세하게 느껴져요. 아주 미세하게.”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내 몸상태를 체크하며 앞으로 치료를 어떤 식으로 할 건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내 마음을 읽으셨을까?)

그러면서 헛된 희망은 품지 않게 현실적인 조언도 거리낌 없이 말해주셨다.

그렇다. 걸어서 나가면 정말 좋겠지만, 걸어서 ‘못’ 나갈 수도 있다.




익숙한 얼굴의 선생님이 다가와 휠체어를 끌어주신다. (설마.)

“안녕하세요~ 저 기억나죠?! “

(우리 막둥이 또래인 것 같은 선생님! 까먹을 리가요.)

“제가 담당으로 됐네요. 아까 트랜스퍼하는 거 봤어요! “

“아하 넵.. 그, 어제 일은 잊어주세요. 창피하네요.”

“아니에요~ 인지 능력이 저하된 환자분이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환자분이 들으면 당황하죠. “

좋게 말해주신 선생님께 감사함을 느끼며 치료를 열심히 받고 있다.

“무릎 한 번 굽혀보세요. “

“(최대한 굽히며)이 정도가 끝이네요..”

내 다리가 돌덩이 같았다.

아.. 쉽지 않네..




이때 당시의 나는. 내 몸에게 되려 짜증이 난 상태였다.

타인의 잘못이 아닌 오로지 나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 온 건데. 내 몸은, 내 다리는, 내 신경은 , 무엇보다 내 짜증 다 받아주시는 아버지는 무슨 죄가 있다고..


비교가 안 되겠지만 운동선수의 재활을 예로 들어봤다.

부상을 당한 선수의 재활은 길게 걸리면 수년이 걸린다. 그 수년간 오로지 예전의 기량을 되찾기 위해 재활에만 몰두한다. 밥 먹고 재활하고 밥 먹고 재활하고의 반복. 눈에 띄지도 않는 변화와 지루함 그리고 상실감으로 인한 우울증 같은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버티지 못하고 은퇴를 결정하는 선수들이 대다수 라고 한다.


비록 내가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재활치료의 모든 과정들이 내 최고의 기량을 되찾기 위한 과정이고 진전 없는 하루에 흔들리되, 무너지진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분명하게 알았다.


재활엔 지름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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