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봉사가 있구나.
미국의 여름방학은 거의 3개월.
운 좋게도 코로나 이후 매년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내 생일이 여름에 있다는 것.
생일이 왜 문제지?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1년에 한 번 오는 상황에서
나의 '생일' 은 양가 부모님들의 신경을
다 쓰이게 하는 날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생일 때 뭐허냐.
엄마가 토종닭 잡아 놨다.
애들하고 들러서 먹고 가그라이.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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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야, 생일 파티 미뤄야 쓰겄다.
그날 엄마가 성당 봉사가 있어야.
첫 영성체 날인데 내가 없으면 사진 찍을 사람이 없다네.
어쩌지? 야야 일단 끊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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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뭐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엔 미국에서 같이 온 가족들이 서운해하는 눈치였다.
아참, 생일 파티는 땡겨서 해야제.
야야, 다음 주 토요일 날 어떠냐.
그날 고기 먹으러 가자
엄마가 사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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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세 군데 식당이 만석이라
그냥 눈에 보이는 데 들어간 우리.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고기를 툭툭 구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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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생일 당일날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과 생일이면 들리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야야 생일날 미역국은 챙겨 먹었냐-?
고달픈 유학생 시절
생일이면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엄마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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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소리 위로
내 앞에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식사하시던 엄마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에휴, 이 집은 고기가 질기단 말여.'
'야야, 느그들 냉면 안 먹을래-?'
어느샌가 생일 선물 받기보다는
'낳아 주시고 길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용돈을 드리게 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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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와- 짝짝짝!
'무슨 소원 빌었어?'
'아, 나는 소원 필요 없어.
여기 선물도 있고 엄마 아빠도 있잖아.'
4살 때인가.. 생일에 첫째 아이가 남겼던 말.
지금은 중학생이 되었지만
첫째의 생일날이 되면
이 순간이 생생히 떠오르며 웃음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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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생일 때 뭐 사줄 거야?'
'나 돈까스 먹고 싶어.'
'혁대 사줄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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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어쩌면
우리 엄마도
이렇게 말하던 어릴 적 내 모습을
떠올리셨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