늠름한 로리의 자태를 보며 우리 가족은 환호했다
결혼 전, 엄마와 살던 집엔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이름은 구름이. 구름이는 꽤 장수하며, 16년이란 세월을 우리와 함께했다. 깊은 정을 나눌만한 시간이지만, 실제로 그 아이와 추억을 쌓은 건 주로 엄마였다. 나는 한창 밖에서 놀기 바쁜 나이였고, 자연스레 엄마와 구름이가 단짝이 됐다. 하지만 나도 나름 애정을 주었던 지라, 구름이가 노년에 접어들며 기력이 약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꽤나 슬픈 일이었다. 구름이를 보내고 나서, 다시는 반려견을 들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건 큰 행복 뒤에 그만큼 책임과 부담이 따르는 일이었다.
결혼 후, 이 문제로 소소한 갈등이 생겼다. 아내와 아이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강아지가 주는 기쁨을 제대로 누려본 적이 없어 호기심이 컸고, 아이는 자기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친구를 원했다. 결국 타협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강아지 대신 수고롭지 않은 다른 동물을 기르기로. 처음엔 소라게가 옳거니 적합해 보였다. 그러나 키우기 쉬울 거라 여긴 소라게도 예상을 벗어나 많은 정성을 요구했고, 얼마 못 가 세상을 떠났다. 이래저래 아쉬웠지만 긴 공백기를 가졌다, 어느 날 구경이나 할까 하며 파충류 샵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내와 아이 눈에 오랜만에 하트를 만들어낸 건 랜킨스 드래곤이었다. 여아로 추정되는 녀석이었다. 아이가 녀석의 이름을 ‘로리’라고 지었다.
로리의 첫인상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도마뱀의 특성인지 그저 사육장 한쪽에 얌전히 있던 터라 활기라고는 찾기 어려웠다. 거기다 먹성까지 까다로웠는데, 다른 도마뱀들이 좋아한다는 밀웜이나 귀뚜라미도 스스로 입에 넣을 생각을 안 했다. 먹이를 입 근처까지 들고 가야 겨우 눈길을 줄까 말까 했다. 이러다 탈이 나겠다 싶어 억지로라도 먹이며 지냈는데, 매번 수동적으로 받아먹는 모습에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솔직히 키우는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최근 보관 이사를 하며 로리를 샵에 맡겼다.
한 달 후, 로리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먹성 좋게 밀웜을 해치우고 활달한 몸놀림을 보였다. 샵 사장님 말씀으론 매일 귀뚜라미를 줬더니 입맛이 돌아왔고, 이제는 굳이 입에 넣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사냥해서 먹더라는 것이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사육장 안에 귀뚜라미 몇 마리를 풀어놓았더니 로리가 쏜살같이 추적해 사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늠름한 로리의 자태를 보며 우리 가족은 환호했다.
아내와 아이는 물론 나도 덩달아 로리의 활약을 즐기게 되었다. 함께 사육장 앞에 모여서 로리가 귀뚜라미를 잡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면, 이 작은 생명체가 기특하게까지 느껴진다. 물론, 이제는 귀뚜라미까지 함께 사육해야 하는데, 귀뚜라미는… 포악한 녀석이다. 먹이나 물이 부족하면, 동족끼리 잡아먹는 끔찍한 행태를 볼 수 있다. 아내는 귀뚜라미라면 질색을 하지만, 로리가 잘 먹는 모습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포용하고 있다.
사랑이란 참 신비롭다. 귀뚜라미를 추적하는 도마뱀의 움직임에서도 작은 생명의 대견함이 느껴지니 말이다. 평범한 도마뱀 한 마리가 ‘로리’가 되고, 집안에서 막내로 자리를 잡아, 가족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아직 작고 여린 로리지만, 무럭무럭 자라 언젠가 네 식구가 함께 산책도 즐길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