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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막하는 사람 비키자는 사람

삶이라는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우리가 공존하기 위해 꼭 가져야 할 자세

by 이열

걷다 보면 가끔 만나는 존재가 있다. ‘길막러’들.

※길막러 : 길을 막는 사람

혹시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곳을 성역처럼 생각하는 걸까? 그곳이 마치 은하의 중심인 것처럼, 다른 사람은 변두리로 돌아가야 하고 중심부는 지나칠 수 없다는 듯이.


몇 주 전 일이다.

작은 음식점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려는데, 방금 식당에 들어온 대여섯 명의 무리가 키오스크 앞에서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출입구를 막고 섰다. 신경이 온통 화면에 쏠린 듯했다.


슬며시 옆으로 다가가 길을 비켜주기를 기다렸다. 약 5초가 지나도 반응이 없길래 (실제로는 더 짧았겠지)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의 일행 중 한 명이 눈치를 채고 그에게 비키라고 일렀다.


상반된 인상을 받았다.


이유가 있다면 통로에서도 잠시 머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나가려는 사람이 오는지 신경은 쓰고 있어야 한다. 낌새가 보인다면 재빨리 물러나야 하고.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다른 사람의 앞길에 장애물이 되어 그에게 고통을 더하면 안 된다. 무신경이 불러오는 악행이다.


나의 일행이 무감각하게 길을 막고 있을 때, 지나가려는 사람이 있음을 알리며 비키자고 하는 사람. 그는 항상 남을 돌보고 배려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애초에 통로에 서지 않는다. 길을 막고 있는 동행이 있다면 마음이 불편하다. 감도 높은 마음 센서로 길막하는 사람과 지나가려는 사람 모두를 구원하는 자다.


그로 인해 길막러가 자아낸 불쾌함이 깨끗이 사라졌다.




아내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최근 딸아이와 딸 친구 두 명을 데리고 사탕 가게에 갔었단다. 그곳에선 수많은 종류의 사탕 중 골라 원하는 만큼 봉지에 담으면, 무게에 따라 가격을 매겼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살 테니 적당히 채우라고 했다. 가득 담으면 한 봉지에 만 원 이상도 나올 수 있는 곳이었다.


한 아이가 과하다 싶을 만큼 사탕을 눌러 담았다. 당황한 아내가, “너무 많이 담은 것 아니니?”라고 물었다.


아이가, “저는 여기 오면 원래 이렇게 담아요.”라고 뻔뻔하게 말했다. 아내는 순간 욱했지만, 딸 친구를 나무라기도 뭣하고 그 정도 일을 탓하면 쩨쩨해 보일까 봐 그냥 넘어갔다. (잘했어 여보)


반면, 다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아줌마가 사주시는 건데, 그렇게 많이 넣으면 안 되는데...”

사랑 많이 받고 많이 나눌 아이다. 아내도 그 친구 덕분에 마음이 풀렸다.


누구는 많이 누구는 적게 사줄 수가 없어 모두 맘껏 담게 했다. 4만 원 가까이 나온 사탕 값에 아내는 결국 분개했다.




길막하는 사람, 비키자는 사람.

꾹꾹담는 사람, 아니라는 사람.


같은 상황 속에서 나온 완전히 다른 모습이 묘한 울림을 주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모든 시간과 공간을 자기만의 무대로 여긴다. 행태를 반복할수록 도리어 입지가 좁아진다.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자리도 기꺼이 내어준다. 반대로 품은 점점 커진다.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내 의견이나 행동만 고집하며 요지부동한 적이 있었는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황을 살피고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이었는지.


우리는 타인의 행동에선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지만, 정작 자신의 행동은 가볍게 합리화한다. 어쩌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길막러였던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키자는 사람, 그건 아니라는 아이를 떠올리며 다짐한다.

나도 막아서는 자가 아니라, 내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내 아이에게도 '길을 막지 말라'는 말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싶다.

단순히 물리적인 길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고 상대의 상황까지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야말로, 삶이라는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우리가 공존하기 위해 꼭 가져야 할 자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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