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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으로 배우는 마음의 랠리

다정한 말 한마디가 우리 사이를 더 끈끈하게 만들어 주었다

by 이열

주말 오후, 집 안은 고요했다. 와이프는 외출했고, 딸아이는 내게 배드민턴을 치자며 채를 흔들었다. 학교에서 배웠다면서, 은근히 진지한 눈빛이었다. 마치 올림픽 국가대표라도 된 듯 허리에 손을 얹고 당당하게 말했다.


"아빠, 진짜 제대로 해야 해!"


아이와 배드민턴을 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둘이서 족히 두 시간은 셔틀콕을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자세가 점점 몸에 익숙해지고, 랠리가 이어질 때마다 딸의 눈빛이 반짝였다.


생각보다 오래 이어진 랠리에 딸도 나도 점점 흥이 올랐다. 몇 번 주고받다 보면, 둘 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오~!" 하고 감탄했고, 기막힌 타이밍에 셔틀콕을 받아치면 서로 "나이스!"를 외쳤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게 늘 좋은 순간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친 공이 높이 뜨거나 장애물 쪽으로 가면 당연히 받기 어려웠다. 공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어김없이 들리는 말.


"아니이~!!"


눈썹을 모으고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귀여웠다. 처음엔 웃으며 넘겼다. 그러다 몇 번 반복되자 슬슬 신경이 쓰였다. 공을 못 받았다고 저렇게까지 원망해야 하나? 마치 내가 일부러 어렵게 친 것처럼 말이다.


"그 말, 금지~."


부드럽게 타일러 봤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공이 다시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아니이~!!"는 자동 반사처럼 튀어나왔다. 마치 게임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딸의 입술은 점점 더 삐죽해졌고, 내 마음 한편도 불편해졌다.


이걸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떠올랐다. 어차피 감탄사라면, 조금 더 긍정적인 걸로 바꿔보면 어떨까?


"'아니이~!!' 대신 '괜찮아~^^'라고 해보자!"


딸은 처음엔 "에이~ 이상해."라며 시큰둥했다. 하지만 내가 먼저 공을 놓칠 때마다 "괜찮아~^^"를 외쳤다. 조금 어색했지만, 딸도 따라 했다. 실수해도 서로 다독이니 게임이 더 즐거워졌다.


"괜찮아~^^", "쏘리~", "아까비!!"


몇 번 주고받다 보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서로 짜증 섞인 말 대신, 웃으며 격려의 말을 전했다. 실수도 그저 즐길 거리가 되었다. 어느새 우리는 승패보다 서로의 표정과 반응을 더 기대하게 되었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었다.


그날 저녁, 밥을 먹으며 딸이 말했다.

"아빠랑 하루 종일 같이 있어서 좋았어!"


가볍게 주고받던 셔틀콕 랠리처럼, 다정한 말 한마디가 우리 사이를 더 끈끈하게 만들어 주었다. 결국, 작은 변화 하나가 분위기를 바꾸고, 좋은 기억을 하나 더 쌓았다.


돌아보면 우리 삶도 배드민턴과 닮았다. 때론 높이 뜨는 공처럼 벅차고, 때론 외곽으로 빠지는 공처럼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서로를 다독이며 "괜찮아"라고 말해준다면, 모든 순간이 즐거운 게임이 되지 않을까.


세상이란 경기에서 중요한 건 공을 잘 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주고받는 말과 그 안에 담긴 감정. 감정들이 모여 소중한 추억이 된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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