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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18 b : 이삿짐 더미 위에 피어난 나의 행성

그 순간 마음 한구석엔 우주와 닿은 고요한 바다가 펼쳐질 테니까

by 이열

이사라는 건 참 묘하다. 처음엔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막상 짐을 싸고 푸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정리할 물건이 끝도 없이 나오는 데다, 정리한 물건도 배치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자리를 고민하게 된다. 어느 순간, 속이 뒤집어져 내적 고함을 지르다 문득, ‘내가 이렇게 예민했나’ 싶은 생각에 놀라기도 하고.


마음이 불편할 때 나는 종종 우주로 도피한다. 지금 스트레스가 우주적 관점에서 얼마나 사소한 일인가 싶기도 하고, 또 새로운 차원의 상상으로 시름을 덜 수 있으니까.


최근 ‘K2-18 b’라는 외계 행성에 대한 뉴스를 발견했다. 제임스 웹 망원경이 발견한 이 행성은 지구에서 약 120광년 떨어진 곳에 있고, 지구보다 8배나 큰, 일명 ‘하이시안’ 행성이라 불리는 곳이다. 그곳 대기에서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감지되었다고 한다. 물로 덮인 바다를 품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도키도키 했다.


※하이시안 행성 : 수소가 풍부한 대기를 가지며, 바다로 덮여 있을 가능성이 있는 외계 행성.


이 행성은 중심 별인 적색 왜성 가까이 공전하며, 대기에 수소가 풍부해 푸른빛이 감돈다. 내 상상 속 K2-18 b의 자연은 경이롭다. 뜨거운 별이 가깝더라도 이를 등지면 끝없는 어둠이 물처럼 덮이겠지. K2-18 b에서는 밤낮의 시간 개념이 지구와는 많이 다를 테니, 빛이 닿는 날에만 푸른빛 바다를 만날 수 있을 거다.


인간과 닮은 외계인이 그 바다 위 해변을 따라 산책하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들은 인간이랑 비슷하게,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을 경험하고 있을까? 외계인은 삶에서 어떤 일에 감탄하고, 또 무엇에 짜증을 낼까? 거기서도 나름의 갈등과 고민이 있겠지만, 역시 우주라는 커다란 공간 안에선 그 모든 것이 티끌만 한 일일 테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사를 완전히 마친 집에서도 또 새로운 갈등이 생기고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그 스트레스는 한평생에서도 찰나일 텐데, 무한에 가까운 우주에선 아예 흔적도 없을 만큼 미미할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K2-18 b엔 실제로 생명체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만약 바닷가에서 별을 보는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상상하면, 그것 자체가 나에게 소소한 위안이 된다. 무한의 우주가 있고, 그 속에 지구도 있고, 또 그 안에 나의 작은 인생이 있음을 생각하니, 사소한 스트레스는 이내 허공에 흩어지는 느낌이다.


이 작은 생에서 누릴 수 있는 소중한 순간들, 특히 사랑할 수 있는 시간들은 모자라기만 할 뿐이다. 한동안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K2-18 b의 상상 속 외계인들을 떠올려 보려 한다. 그 순간 마음 한구석엔 우주와 닿은 고요한 바다가 펼쳐질 테니까.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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