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회사'에서 노인 한 명을 쫓고 있었다.
회사 경영진이었으나, 몇 년 전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직후 퇴직한 인물이었다. 최근 그가 홀연히 곳곳에 나타나 회사 일을 '방해'하고 있었다. 아들의 죽음에 회사가 연루돼 있다는 '오해' 때문이라고 했다. 회사는 노인을 위험인물로 정의하고 수배령을 내렸다.
아비에게도 수색 업무가 떨어졌다. 성공하면 포상과 함께 승진까지도 노려볼 수 있었다.
“뭐야, 그냥 평범한 늙은이로 보이는데?” 수배 사진을 보며 아비가 말했다.
나는 동의했다. “말라깽이네. 한주먹 거리 아냐?”
“흐음, 예전에 임원이었다고는 하나, 오래전 일이고… 뭐, 힘으로만 올라가는 구조도 아니니까.” 그는 입맛을 다셨다.
우리는 최근에 노인이 목격된 곳 주변을 탐문하며 소란을 피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 좋게 그 사람을 맞닥뜨릴 수 있었다. 동네를 들쑤시며 행패를 부리고 있자니 그가 제 발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허름한 낚시 모자를 쓰고, 빨간 조끼 아래, 체크무늬 갈색 배바지를 입은 그는 누가 봐도 구린 행색이었지만, 그 주름진 얼굴 위 형형한 눈빛은 도깨비불이 현신한 듯 서슬 퍼렜다.
"그렇게 남을 괴롭히면서 살지 마라. 아직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뭐 하는 짓이냐."
“어이, 형씨. 지금 남을 괴롭히고 있는 건 당신이라고. 할배 때문에 우리가 힘들게 여기까지 왔잖아!”
그가 위협하는 제스처로 손을 들어 올리자, 낚시 모자 할배가 갑자기 번개 같은 속도로 남자의 명치를 오른손으로 가격했다. 족히 5m 뒤로 거구가 나동그라졌다. 나는 그저 입이 떡 벌어져서 어린애처럼 ― 쪽팔리게 ― 어쩔 줄 몰랐다.
“나도 이제 늙었나? 쿨럭” 빨간 조끼 영감이 얼어붙은 나를 힐끗 보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그가 내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넌 강한 아이로구나. 네 눈을 보면 알 수 있지. 이름이 뭐냐?”
“게… 겐지다!”
“겐지? 켄지? 특이한 이름이로구나. 아무튼, 켄지야. 나도 예전에 저 치와 비슷한 놈이었다. 하지만 불꽃이 너무 강하면 언젠가 스스로를 태우지. 어쨌든 세상은 살기 힘든 곳이야. 네가 이곳을 더 지옥으로 만들 필요는 없잖니? 지금 머물고 있는 그 자리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와라. 아직 어리니까, 앞으로 넌 뭐든 될 수 있어.”
나는 무어라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할배의 눈에서 저의를 읽으려 했으나 고요한 눈동자에서 거짓을 읽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린 아비가 불꽃을 태우며 달려왔다. “이 영감탱이가 미쳤나!”
배바지를 입은 영감은 우아한 몸짓으로 사뿐하게 한 바퀴 돌며 화마를 옆으로 흘려보냈다. 그의 손날이 번개같이 아비의 후두부에 꽂혔다. 괴물이 단숨에 기절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아비를 보고 꼴좋다는 생각도 잠깐,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치밀어 노인을 향해 손을 뻗었더니, 그가 재빠르게 거리를 두며 물러났다. 영감은 나를 주시한 채 미소를 띠더니 천천히 옆으로 걸으며 말을 이었다.
“너도 능력자인가 보구나. 켄지야, 불이 항상 타오를 필요는 없지. 어쩌면 네 불꽃은 타인을 태우기 위한 게 아닐 수도 있지. 이렇게 살기엔 네 인생이 너무 아깝지… 라임 어땠니?“
갑자기 랩을 하는 할배를 보며 잠깐 어안이 벙벙했다가 금세 정신을 차렸다.
“켄지가 아니라 겐지라니까!” 나는 짐짓 기세 좋게 악을 썼다. “이 여… 영감아! 겁나냐? 이… 이리 와서 한 판 붙자!”
노인은 실소를 터뜨리더니, 이내 혀를 찼다. “어른을 공경해야지, 욘석아! 이래서 가정교육이 참…“
"가족은 건들지 마, 이 노인네야!"
그에게 달려가며 오른팔을 뻗었더니, 그가 낮은 자세로 빠르게 달려왔다. 순식간에 내 얼굴에 카운터펀치가 꽂혔다. 눈앞에 별이 보이는가 싶더니 세상이 깜깜해졌다.
“야, 이제 그만 일어나.” 정신을 차려보니 그 남자가 나를 발로 툭툭 차고 있었다. "이제 정신이 드냐? 쯧쯧. 아놔 이 영감탱이 잡히기만 해 봐라."
그는 한동안 팀원들과 함께 늙은 남자를 찾아다녔지만, 끝내 사소한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노인의 말은, 내 가슴속에 여린 불씨로 남았다.
나는 개인적인 이유로 노인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가 나에게 화마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었으니, 어떻게 하면 악을 멀리하며 살 수 있는지 방법도 함께 알려 주어야 했다. 내가 아비에게 배운 거라곤 비뚤어진 남자다움과 범죄 기술밖에 없었다. 나는 늘 독립을 꿈꾸며 자유를 갈망했지만, 아비 손아귀를 벗어나면 혼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이 두렵기만 한 어린이가 아니었지만 방향을 못 잡고 헤매긴 싫었다. 이미 잃어버린 세월이 십수 년이었으니까.
"너는 나보다 강해져야 한다."
그 남자는 늘 그렇게 말했었다. 아버지랍시고 하는 말, 어디서 주워들었을 거다. 명백한 위선이었다. 실제로는 아들의 능력을 시기하면서도 두려워했다.
내가 항상 “내가 당신보다 강해지면 복수할 텐데 두렵지 않아?”라며 바락바락 대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그는, 나에게 행사하던 무분별한 폭력을 줄이고 조용히 나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문득문득 그가 드러내는 불안감이 보였다. 아비는 동물적인 육감으로 나에게 전에 없던 위화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내 힘이 가파르게 커지고 있었으니까. 업무 중 시선을 돌리면 항상 그의 눈길이 나를 쫓고 있었다. 내가 불꽃을 휘두를 때마다, 그는 열망을 가득 담은 눈길로 바라보다 이내 얼굴을 돌렸다.
노골적으로 질투를 드러내는 늙은 괴물 앞에서 나는 자중하기로 했다. 머리 꼭대기에 서 있으려는 악마에게 내가 가진 카드를 낱낱이 보여주는 것만큼 멍청한 일이 또 있을까. 자기 보호 본능이, 피 끓는 십 대의 치기를 눌렀다.
나의 불꽃은 이미 폭발력이 어마어마했다. 감정 변화에 따라 때때로 컨트롤이 어려웠지만, 어쨌든 끝내 주는 화력이었다. 어쩌면 그를 쓰러뜨리고 자유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지만,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틈으로 그가 빠져나가기라도 하는 경우 목숨조차 담보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러나 마침내, 그의 인내심이 먼저 바닥났다.
그날 밤,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인적이 드문 곳에서 그가 말했다. "이제 확실히 해야겠지."
그는 담배를 물고, 손끝에서 불꽃을 피웠다. 공터에 어두운 그림자가 일렁였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무슨 말이야?"
"요즘 네가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진 것 같은데, 아직 누가 위인지 확실히 보여주마. 덤벼 봐."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손에서 불꽃이 일렁였다. 나는 영롱한 붉은색 기운을 차분하게 응시했다.
"자신 있다면, 네 손으로 나를 넘어서 봐라." 아비는 기선을 제압하려 하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시험이 아니었다. 그가 나를 아예 짓밟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두려워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나를. 내가 조만간 그의 그림자를 찢고 나와 얼굴을 맞대고 으르렁거릴 거란 사실을.
애초에 그가 나를 ‘아들’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생물학적 아비이긴 하니까, 부자 관계를 흉내 내고 있었을 뿐. 그래도 ‘부하’ 정도로 생각할 거라 여겼는데, 이건 뭐 그냥 들러리만도 못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서글펐다. 그러나 나는 웃었다.
"이제야 솔직해지네."
그가 씩 웃었다. 담배꽁초를 떨구고 발로 슥 비비더니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나야 늘 솔직하지. 네가 들어오지 않으면 내가 먼저 간다."
화마가 손을 들어 올려 허공에서 불꽃을 잡아챘다. 주위 공기가 일렁였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제 모든 것을 끝낼 때다.
"겐지!" 그가 불주먹을 내질렀다. 뜨겁고 강렬한 분노가 다가옴을 느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뭐, 뭐 하는 짓이야!"
“딱 한 번만 안아 줘, 아버지.”
그는 나를 사정없이 팔꿈치로 내리쳤다. 하지만 나는 그를 더욱 강하게 껴안았다. 내 팔이 그를 감쌌고, 우리는 처음처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온몸을 발화시켰다.
펑!
폭발적인 열기가 터져 나왔고, 우리는 거대한 불꽃 덩어리가 되었다. 그는 타지 않을 터였다. 나는 다만 거대한 불꽃을 통해 공기를 집어삼켜 볼 뿐이었다. 불길이 계속해서 타오르며, 주위의 산소를 빠르게 태워버렸다.
처음에 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딴 장난질로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뭐야…?"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하지만 공기가 없었다.
"하… 하아… 하…" 숨이 점점 더 거칠어졌다. 처음엔 짜증 섞인 눈빛이더니, 이제는 분명한 당혹감이 스며들었다.
"꺼, 빨리 끄라고…" 그가 나를 밀어내려 했지만, 나는 더욱 강하게 그를 붙잡았다.
"드디어 깨달았어. 당신과 나는 같이 숨 쉴 수 없음을." 나는 울부짖었다.
손이 허공을 휘젓다 점점 느려졌다. "겐지… 이거 놔…"
그는 몸부림쳤지만, 점점 무기력해졌다. "젠… 장…" 처음으로, 그의 눈에 공포가 떠올랐다.
나는 나를 감싼 채 순환하는 불길을 조종해 미세한 틈을 만들었다. 순간순간 틈을 통해 바깥공기를 들이마셨다. 하지만 아비는 다르다. 그의 영역에는 오직 연소된 공기뿐이었다. 필사적으로 숨을 쉬려 했지만, 가슴이 점점 오그라드는 듯했다. 타지 않았지만, 불길 속에서 익어가고 있었다.
그 남자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버둥대던 팔이 힘을 잃기 시작했다. "허… 흐억…" 그는 꺽꺽대며 필사적으로 숨을 쉬어보려 했다. 하지만 거대한 불꽃 안에 갇혀 공연히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나는 그를 점점 더 심연으로 끌어내렸다.
발버둥 치는 온몸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그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당신도 삶이 힘겨웠겠지. 이제 편히 쉬어.”
불길을 거두고 가만히 팔을 풀었다. 그가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완전한 두려움과 공허함을 담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더 이상 화마는 세상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 겐지도.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조용히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이제 나는 켄지다. 노인을 찾아야 한다. 나는 손바닥에 작은 불씨를 띄웠다가, 이내 주먹을 쥐어 꺼뜨렸다.
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