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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

part 1

by 이열 Mar 21. 2025


아비는 화마火魔였다.


190센티미터가 넘는 거구에, 말 그대로 불을 장난감처럼 다룰 수 있는 인간이었다. 공기 중에서 불꽃을 만들어 담뱃불을 붙이고, 손아귀에서 뜨겁게 달군 돌을 재미 삼아 길거리 동물들에게 던지곤 했다. 그 짓거리를 볼 때마다 내 입은 떡 벌어졌다.


불은 생명을 꺼뜨리기도, 불붙게 하기도 한다. 그 남자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불을 단순한 도구로 사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길들이려 했다. 불꽃을 희롱하는 두툼한 손가락을 볼 때마다, 찌릿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의 능력은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혐오스러웠다.


그가 나에게 화를 낼 때면 ― 무척 자주 냈다. 양념을 살짝 뿌리면, 10분에 한 번꼴이었던 것 같다. ― 눈동자에서 불꽃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씩씩거릴 때마다 뿜는 열기로, 숨통이 서서히 조여왔다. 으레 손찌검도 따라붙었는데, 불 맛이 더해져서 그런지 매콤했다. 씁쓸한 얘기지만 아비의 폭력에 이골이 나서, 맞는 동안 눈 질끈 감고 시간아 빨리 가라 주문을 욀 정도였다.


그의 능력은 신의 축복이 아닌, 악마의 유희였다.


"넌 내 아들이야. 내 피를 물려받았잖아. 불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나도 처음엔 그랬지. 처음 불을 만졌을 때, 나는 내 손이 다 타버릴 줄 알았다." 아비의 목소리가 음험했다.

"하지만 불은 다루는 놈이 강하면 순응해. 네가 약하다면, 널 집어삼키겠지."


나는 맞받아쳤다. “무슨 되지도 않는 소리야. 불장난은 아비나 실컷 하라고, 아이한테 위험한 짓 시키지 말고. 아동 학대야!”

“이놈 버르장머리하고는. 사내놈이 또 징징대는구나. 잘 됐다. 내친김에 오늘 진짜 뜨거운 맛 좀 보자.” 그가 내 멱살을 잡더니 벽으로 몰아붙이고는 머리에 가스 토치를 들이밀었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불을 열망하는 동시에 두려워했다. 


"넌 날 닮았어, 피하지 마라. 받아들여야 해. 세상은 약한 놈들을 씹어 먹는다. 난 너를 보호해 줄 생각이 없어. 대신, 강하게 만들어 줄 거다."

이런 걸 진정한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는 거겠지. 그는 결국 내 머리를 향해 토치를 점화했다.

“야, 이 미치광이야!” 아비의 손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불꽃이 계속 쉭쉭거리며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아홉 살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제발 눈 깜짝할 새에 천국에 도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늘 어딘가에 있을 높으신 분에게 싹싹 빌었다.


분명 몇 분이나 지난 것 같았는데, 천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간지러운 느낌에 살짝 눈을 떠보니 내 몸에 불이 바짝 닿아 있었다. 나는 타지 않았다. 아비는 역겨운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나는 내가 그 남자와 닮았다는 사실이 죽기보다 싫었다.




열두 살 때였다. 그가 나를 처음으로 '일터'에 데려갔다.


"이제 네 차례야."

허름한 식당 뒤편, 검게 그을린 뒷골목에서 그는 한 남자를 짓밟고 있었다. 남자는 ‘회사’에 빚을 졌고, 이제는 갚을 돈이 없다며 애원하고 있었다. 화마는 수금을 담당하는 부서의 ‘팀장’이었다. 나는 덜덜 떨며 옆에 서 있었다. 벽돌담이 가로지르는 좁은 골목, 매캐한 휘발유 냄새와 함께 바닥에 번진 희미한 불빛이 밤공기를 잔혹하게 물들였다.


"네가 직접 해야 해."

그가 쥐고 있던 불길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뜨거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불꽃이 살랑이며 간지럽혔을 뿐이다. 불은 마치 나를 시험하는 듯이, 내 피부 위에서 고요히 일렁이고 있었다.

"이제 손을 뻗어. 그놈한테 보여줘. 네가 어떤 놈인지."


인생에 정지 버튼이 눌린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화마의 존재가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었다. 내 안의 이성과 야성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참을성 없는 그는 이내 한숨을 쉬며 나의 불을 걷어 가더니 무심히 바닥에 던졌다. 불길이 맹렬히 달려가, 빚쟁이의 발밑을 감쌌다.


비명.

연기.

타는 냄새.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내 머리채를 휙 잡아채더니 화재가 발생한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똑똑히 봐라. 이게 힘이야, 모두가 벌벌 떠는 공포! 저놈이 감히 우리 돈을 떼어먹을 수 있을 것 같냐? 하하하하"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는 손을 거두고 길게 한숨을 내쉰 후 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태어나기 전, 난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아니? 개보다도 못했어. 내 손에서 불길이 일렁이자, 그야 다들 벌벌 떨며 존댓말을 쓰더군. 한바탕 뒤집어엎고 있는데, 우연히 사장님 눈에 띈 거야. 그때부터 난 진정한 사내가 되었다. 충성과 의리. 나는 조직에 헌신하고, 조직은 나를 보호해. 너도 회사 식구나 마찬가지다. 다음번엔 네가 직접 해야 해. 그래야 진짜 내 아들이라고 할 수 있지."


나는 목놓아 울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단박에 걷어차일까 봐 그저 추위를 타는 개처럼 파르르 떨기만 했다.


그날 이후, 그 남자는 나를 점점 더 심연으로 끌어내렸다.

차를 부수고, 가게를 털고, 돈을 뜯어내는 일. 지저분한 일이라면 모두 가르쳤다. 어떻게 사람을 겁줄 것인지, 어떻게 불을 이용해 그들을 조종할 것인지. 정상적인 부모 자식 간이라면 절대 상상도 못 해봤을 일들.


"세상은 착한 놈들을 위한 곳이 아니야. 우리 같이 우월한 종자가 군림하는 곳이지."

내가 멈칫할 때마다, 곧 그는 사정없이 나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거울 앞에 서서 퉁퉁 부은 얼굴을 바라보다 입안에 고인 피를 뱉으면, 부러진 이가 함께 나올 정도였다. 개자식. 반면 어쩌다 거칠고 과감한 모습을 보여주면, 어깨를 툭 치며 다독였다. “그래. 너도 할 수 있잖아.”


당근과 채찍에 나는 별수 없이 길들여졌다. 어느새 그와 한바탕 일을 벌이는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부당한 처사와 잦은 폭행으로 쌓인 울분을 애꿎은 다른 이에게 마음껏 토해낼 수 있었으니까. 어쩌면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루 걸러 하루 수금을 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협해서 이권을 챙기고, 회사를 골치 아프게 하는 자들을 굴복시켰다. 나는 그와 함께 일으키는 폭력과 범죄 앞에 어느덧 무감각한 얼굴을 보일 수 있었다. 불길이 허공을 가르고, 비명이 뒤섞여도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피가 튀고 타는 냄새가 나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할 수 있었다.


양심? 거기에 가까운 자아는 내가 악행을 일삼을 때마다 한 움큼씩 소각되었다. 거울을 보면, 눈동자에 박힌 불씨가 내가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말해 주었다. 


“너는 누구냐?”

“화마”

“그 아비에 그 아들이로구만.”

“피가 어디로 가겠나?”

“야, 쫌 다른 버전은 없냐? 불타는 열정맨이라든지.”

“우리 아비를 봐라. 되겠나?”

“이 시키가? 없애버린다!?”

“해보시든가”

퍽. 으악, 내 주먹. 


우리는 왜 둘로 나뉘었는가? 너는 누구인가? 나는 왜 비참한 현실에 주저앉는가? 너는 왜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부추기는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는 자주 술을 마셨다. 거나하게 취하고 나면 특별한 이유 없이 나를 때리는 날도 빈번했다. 익숙한 일이라 대체로 체념했지만, 가끔 미칠듯한 분노가 터져 나올 때가 있었다. 고주망태가 되어 바닥에 널러진 화마 옆에서, 그를 없애버릴 백만 가지 방법을 상상하며 혼자 낄낄대기도 했다. 한 번은 조심스레 칼을 쥐고 그를 내려다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끝내 관뒀다. 쿨하지 않았다. 나는 불덩이 같은 사람이지만, 반대가 끌리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가 최후를 맞는다면, 제정신일 때 누구에게, 어떻게, 왜 당하게 됐는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화마가 숙취에 시달리던 어느 날, 간단한 아침 거리를 사 왔는데 정장을 입은 낯선 남자 두 명이 집 안에 들어와 있었다.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은 채로. “당신들 누구야?!”라고 외쳤더니,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힐끗 한 번 돌아보고 다시 눈길을 돌렸다. 자세히 보니 그들 앞에 아비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사님. 전화기가 꺼진 줄 몰랐습니다.”


회사 사람들이었다.

스킨헤드 남자가 구둣발로 화마의 어깨를 걷어찼다. “똑바로 안 하냐. 내가 요즘 비상이라고 술 처먹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그가 뒤로 나동그라졌다가, 다급히 기어 와 다시 무릎을 꿇었다. 내가 보고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비의 눈에 어린 공포가 읽혔다. 괜스레 주먹이 꽉 쥐어졌다.


얼굴 한가운데 칼자국이 길게 난 젊은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무심하게 말을 뱉었다. “팀장님, 요즘 얼굴 보기 힘들어서 지나가는 길에 한 번 들렀어요. 지금 업무시간인데 술 냄새가 좀 심하네요.”


화마는 거듭 머리를 조아렸다. “이사님,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칼자국이 스킨헤드에게 눈짓을 보냈다. 스킨헤드는 쭈그리고 앉아 아비와 눈을 맞췄다. “애 앞에서 이게 무슨 꼴이냐. 잘 하자, 인마. 이따 회사에서 보자.” 둘은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섰다.


칼자국은 나에게 다가오더니 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나 네 아빠 회사 삼촌이다. 사회는 가혹해. 잘못을 하면 벌이 따르지. 네 아빠한테 별 감정은 없다.” 그는 오만 원을 건넸다. 나는 아비를 바라봤다. 그는 꼬리 내린 개 같은 표정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손으로 지폐를 낚아챘다. 스킨헤드가 으르렁거렸으나, 칼자국이 그를 제지하더니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툭툭치고 지나갔다.


직장 상사들이 떠나자, 화마는 쌍욕을 하며 주먹으로 바닥을 몇 번이고 내리쳤다. 불쌍한 등신.




그는 나를 중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충분하다, 남자는 사회에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아마 그도 초등학교까지만 나왔기 때문일 거다. 개자식.


열다섯 살, 다소 늦게 찾아온 사춘기에 여러 번 가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고, 그는 내가 어디로 튀던 귀신같이 금세 나를 찾아냈다. 마지막으로 잡혔을 땐 죽기 직전까지 맞다가 이틀 동안 지하실에 갇혀 내내 굶주렸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죽는 건가. 어쩌다 개자식한테 개자식으로 태어나 그냥 이용만 당하다 가는 것 같은데. 억울하다. 내가 불쌍해. 나는 그냥 재밌게 살고 싶은데, 삶은 왜 이다지도 나에게 무자비한가. 짜증이 치민다. 화마고 회사고 더러운 자식들, 그리고 지들끼리 행복하게 웃으며 날 비웃는 모든 사람들 그리 다 태워버리고 싶다. … 뭐,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원망할 필욘 없겠지. 아무튼 시궁창을 벗어나려면 힘이 필요하다. 나에게도 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나는 이내 작은 불씨가 일렁이는 모습을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고, 그 불에 넋을 놓고 빠져들었다. 불꽃이 점점 맹렬하게 치솟았다.


감금에서 풀려난 지 얼마 후, 몸에서 정말 불길을 내뿜을 수 있었다. 내 안에서 폭발한 분노가 어떻게든 밖으로 쏟아져 나와야 했을 테지. 영롱하게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드디어 나에게도 친구가 생겼다는 생각에 기뻤다.


치기 어린 마음에 아비에게 그 사실을 멋쩍게 자랑했다. 그는 언제나 나에게 자신보다 강해져야 한다고 했으니까. 


“이거 봐봐. 이제 나도 가능해!” 

아비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별거 아냐."

그가 짧게 뱉었다. 그리고 그날 밤엔 유난히 독한 술을 들이켰다. 


인적 드문 놀이터에 홀로 앉아, 내 손 위 기세 좋게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화마가 유독 기분이 가라앉은 이유를 헤아렸다. 내 불꽃이 더 커서 질투가 난 걸까, 아니면 내가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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