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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것들이 남기는 것

작은 습관들이 쌓여 내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지길 바라며

by 이열 Mar 26. 2025

아침마다 약통을 뒤적인다. 한 통은 비타민, 한 통은 유산균… '1일 1회, 1정' 설명 문구에 따라, 물 한 컵과 함께 손 위에 올린 캡슐과 태블릿을 입에 털어 넣는다. 꿀꺽 삼키는 소리로 조용한 부엌을 깨운다.


창문 너머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어느덧 사십 대, 청년 시절 혈기왕성함은 사라지고 걸핏하면 몸 한두 군데가 불편한 이 나이에, 건강 관리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검진 때 나온 만성 위염이 신경 쓰여, 의사의 권고대로 유산균과 발효식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보다 경이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몸속에는 세포 수의 10배가 넘는 미생물이 살고 있으며, 특히 그중 70% 이상이 소장과 대장에 존재하는 세균이라는 것. 이 미생물들이 영양소 흡수, 면역력 강화, 심지어 정서에도 영향을 미친단다.


김치나 요구르트에 많이 함유된 유산균은 장내 미생물에 좋은 영향을 끼쳐 장 건강에 도움을 준다. WHO에서는 유산균을 “충분한 양을 섭취했을 때, 건강에 좋은 효과를 주는 살아있는 균”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만 유산균은 위에서 산 때문에 90% 정도가 죽고, 살아남은 균들도 대부분 몸 밖으로 배출된다. 유산균은 임시 방문객이다. 나의 장 속을 휙 지나가며 잠시 도움을 주고 떠난다. 그래서 매일 복용해야 한다.


유산균과 책 사이의 묘한 유사성이 떠올랐다.

책도 유산균처럼 대부분의 내용이 읽는 순간 머릿속을 지나쳐 가버린다. 가끔 인상적인 문장이나 아이디어만이 내 기억 속에 남을 뿐이다. 그래도 독서의 순간마다 책 속 사상과 지혜는 내 의식을 자극한다. 마치 유산균이 장 내 환경에 일시적이지만 분명한 변화를 일으키듯, 책 속 문장들도 생각의 흐름에 미묘한 파문을 만들어 나를 조금씩 다듬을 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의 책은 보통 하루 이틀 만에 해치워 버린다. 신작이 나올 때마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지만, 세부 내용보다는 그의 문체와 세계관이 내 안에 흐릿하게 남아있다. 아마 내가 쓰는 소설에도 반영될 테지.


서른이 넘어 처음 접한 철학 책도 마찬가지다. 한 번 읽었다고 현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사소한 선택을 할 때마다 "네가 선택한 것이 네가 될 것이다"라는 구절이 불현듯 떠오르곤 한다.


마음에 새긴 책의 구절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나이를 먹었다는 건 수많은 경험을 했다는 뜻이다. 이런 경험은 눈빛에 쌓인다. 책을 읽고, 사색을 한 사람만이 눈빛이 날카로워지고 어린아이처럼 맑아진다. 육신은 늙었지만 정신은 어려진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고명환


매일 아침 유산균을 삼키고, 매일 밤 책 한 페이지를 넘기는 일. 두 가지 모두 일시적 효과를 위해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 누적된 시간이 내 삶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작은 습관들이 쌓여 내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지길 바라며, 오늘도 불을 끄기 전 한 장만 더 넘겨야지.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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