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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을 떠나서(12)

ep. 12 뚜벅이의 삶

by 에미꾸 Feb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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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 때 친구와 함께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나는 한 번에 합격했고 친구는 기능시험에서 한 차례 고배를 마셨다.(웃음) 여든까지 내 놀림 버튼이다. 대학교 졸업식날 본 면접에 합격해서 3월부터 바로 일을 시작했다. 내 첫 직업은 고등학교 기간제 음악 선생님이었다. 사회생활은 둘째치고 나는 여고를 나왔기 때문에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게다가 같은 지역이지만 집에서 학교까지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한 시간 반을 들여 출근을 했어야 해서 피로도가 만만치 않았다. 이 당시 일을 마치자마자 성악단체의 연습생으로도 출근하듯이 나갔어야 했기 때문에 한 달이 지나자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았다. 다행히 중간에 친한 교직원이 생겨 중간지점에서 카풀을 해주셔서 30분이 단축되었다. 짧은 3개월의 기간제 교사를 마치고 교회 성가대의 지휘자일이 바로 생겼는데, 아침에 교회를 가는 것은 애써서 가보겠지만 토요일 저녁 10시 반에 성가대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방도가 없었다.


당시 아빠는 산타모라는 차를 타고 계셨는데 눈 오는 날 사람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가던 중 언덕길에서 차가 힘이 없어 오르지 못해 이것을 계기로 차를 바꾸셨다. 아빠도 중고차를 구입하셨으니 내가 중고의 중고를 물려받은 것이다. 운전연수도 없이 교만하게 바로 차를 끌고 나갔다가 주차해 놓은 차를 긁기도 했고  한창 운전이 익숙해졌을 땐 학교 수업을 부랴부랴 나가다가 고속도로에서 운전 실수로 대형 트레일러랑 사고가 났었다. 트레일러는 워낙 크니 속도를 멈추어 갓 길에 주차를 했지만 나는 차가 뱅글뱅글 돌아 1차선에서 반대방향으로 멈췄는데 맞은편에서 차가 '쉬-잉'소리와 함께 달려오다 2차선으로 차선변경을 하던 그 광경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 날 아빠에게 물려받은 산타모는 폐차를 했다. 젊은 혈기로 목깁스를 하고 택시를 타고 다음 수업을  마치자마자 병원에 입원을 했다. 엄마는 차 상태를 보시고 살아난 게 기적이라며 교회에 감사헌금도 하셨다. 대부분 이렇게 큰 사고가 나면 트라우마로 운전을 못하기도 하던데 2년 정도 힘들긴 했지만 어찌어찌 버텨냈다. 무슨 마가 낀 건지 이다음 차도 내가 낸 사고도 당한 사고도 무지하게 많았는데, 아마 인생을 통틀어 가장 정신없이 살고 운전도 워 많이 해서 그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1년에 4만 킬로를 넘게 운전했다. 16만 킬로에 중고차로 구매한 뉴프라이드는 44만 4000킬로까지 몰고 더 이상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아 기념사진을 찍고 폐차했다.


택시 아저씨께서 게으른 택시 운전사보다 운전을 더 많이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이동하며 차에서 하루에 두 끼를 해결하곤 했다.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테지만 덕분에 나폴리에서도 운전을 하는 엄청난 운전실력과 담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몸무게도 10킬로나 얻었다.(10킬로 중에서 5킬로만 차 탓을 하겠다.)




이탈리아에 비자를 받아서 나오면 8일 이내에 Permesso di soggiorno_뻬르메쏘 디 쏘쪼르노(체류허가증)를 신청해야 하는데 우체국에 이 서류를 접수하고 나면 경찰서에 지문을 찍으러 가는 날짜를 받는다. 그럼 그 날짜에 맞춰서 가서 지문을 찍고 체류허가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스템이다. 우체국에서 이 서류를 받는 것부터 이미 챌린지가 시작된다. 금방 동이 나기도 하고, 취급을 하지 않는 곳도 많다. 또 서류 봉투를 받으면 서류내용을 채우고 내 서류를 동봉하여 우체국에서 접수를 하는데 이것 또한 쉽지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똥개 훈련'을 경험했는데, 작년에 나는 운이 좋아 '똥개 훈련'없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었고, 이번엔 한차례의 똥개훈련을 했다. 서류봉투는 한 번에 잘 받았으나 제출하러 간 다른 우체국에서 이 서류는 토요일 오전 10시에만 받는다 말했다. (나는 목요일에 방문하였다.) 밑져야 본전으로 내가 서류를 받은 우체국에 가보았다. 이 우체국도 오전만 체류허가증 서류를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안되면 내일 오전에 다시 오려고 했다. 내가 서류를 내밀자마자 별다른 말 없이 빠르게 일을 처리해 줬고 내 큰 시름도 끝이 났다.


이 날 나는 오전에만 14킬로를 걸었다. 요 며칠 많이 걷고 또 무거운 짐을 들고 걸어서 종아리는 땅땅해졌지만 오랜만에 실컷 걸으니 기분이 좋았다. 아반떼를 타고 다니다가 이제 BMW(Bus, Metro, Walking)를 탄다. 교통패스를 구입하기 전까지는 걸어 다니며 지리도 좀 익히려 한다. 뚜벅이로 돌아가고 나니 진짜 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아 괜스레 머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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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인쇄를 위해 방문한 인쇄소 바로 앞에 있는 빨간 대학교. (Universita Bicocca Scienza_비꼬까 과학대학교), 점심시간이 겹쳐 관공서가 일하지 않아 가는 길에 있는 식당에서 나도 점심을 먹었다. 11유로에 3가지 코스가 나오고 메뉴도 코스당 4가지씩 있어 선택의 폭이 넓었다. 한 끼 호사스럽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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