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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봉사활동에서 만난 사람들

사차원 대학생, 이발사 왕언니, 밥 해주는 센터장

by 땡자랑

7박 9일의 캄보디아 봉사활동 기간 중에 소중한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대학생과 일반인 그리고 자원봉사 센터 담당자들 전체 16명이다. 대학생들은 젊고 풋풋해서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일반인들은 다양한 봉사 단체에서 오랜동안 나눔을 실천하고 있었다. 자원봉사 센터 담당자들도 봉사활동을 추진하고 운영하면서 많은 지원을 해 주었다. 참가자 16명이 각자 성격도 다르고 개성도 넘치고 담당하는 역할도 달랐지만, 그중에서도 사차원인 대학생 아지, 이발사 왕언니, 새벽마다 아침밥을 해주던 자원봉사 센터장과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 이야기- 사차원 대학생 송아지


아지는 대학생 중에 평범하여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사전 준비날에 아지를 처음 만났을 때 머리는 짧고 키가 크고 말라서 남학생 같아 보였다.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시연을 할 때 세심한 만들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조별로 떡볶이를 만들어 먹을 때에는 자기네 떡볶이는 맛이 없다며 우리 조에 와서 맛있게 먹었다. 다 같이 공연할 때 춤추는 '행복합니다!' 플래시몹과 대학생들만 추는 댄스 연습에서 아지는 몸치였다. 대부분 노래에 맞추어 예쁘게 춤을 추는데, 아지는 뻣뻣하게 서서 처음 춤을 춰보는 학생처럼 보였다. 선머슴아 같아 보이는 대학교 1학년 스무 살 아지였다.


봉사활동 기간 내내 아지는 아빠와 통화를 했다.

"지금은 어디냐?, 무엇을 하냐?, 건강은 어떠냐?"

아지 아빠는 매일 딸이 아무 탈없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지 상태를 체크하였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로밍을 하지 않고 와이파이가 터지는 숙소에서 카톡을 하고 있는데 아지는 달랐다. 지나치게 가족의 보호를 받고 있는지, 아니면 봉사활동 기간 중에 매일 통화하기로 약속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지는 캄보디아에 있어도 항상 가족과 함께 있는 것처럼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였다.


현지 초등학생들과 수영장 체험과 체육대회를 할 때 아지는 빛이 났다. 아지는 수영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과 함께 놀아줬다. 수영장에서 튜브 타기, 물속 달리기, 공놀이 등 체력이 소진되는 놀이였다. 현지 아이들은 너무 신나서 물속에서 놀기를 원했고, 대학생들은 하나, 둘씩 물속 밖으로 빠져나오는데, 아지는 지치지 않았다. 수영장 놀이를 마치는 시간까지 물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었다.


"난 공 가지고 하는 스포츠 말고는 다 잘해." 아지가 한 말이다. 농구, 배구는 못해도 달리기 등의 육상 종목에는 자신 있다는 것이다. 명랑운동회에서도 아지는 체육부장처럼 뛰어다녔다. 공 던지기에서는 키 큰 아지는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팔자 줄넘기에서는 긴팔로 줄을 넘겨주었다. 이어 달리기에서도 바통을 쥐고 치타처럼 질주하여 달렸다. 아지는 건강하고 체력이 강한 아이였다.


"선생님! 쓱쓱 싹싹할 때 너무 재미있어요." 내가 보건교사를 담당하여 양치 교육을 할 때, 윗니 아랫니를 '쓱쓱 싹싹!' 하며 닦으라고 교육한 것을 흉내 내며 말했다.

"선생님! 유튜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제가 구독해 줄게요."라며 그 뒤부터는 나를 '땡자티비'라고 불렀다. 명랑하고 건강한 대학생이었다. 더위에 지치고 힘들 땐 건강하게 젊음을 선사해 준 아지였다.





두 번째 이야기- 이발사 왕언니


최옥순 님은 올해 70세인 왕언니로 봉사활동에 참여하였다. 처음에 왕언니를 만났을 때 밝은 갈색 파마머리를 하고 통통한 얼굴에 환한 보살 미소가 눈에 띄었다. 허리가 반듯하고 엉덩이가 볼록하여 뒷모습은 오십대로 보여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왕언니는 전직 미용실 사장님이다. 미용기술이 있어서 이번 봉사활동에도 가위를 준비하였다. 봉사를 떠날 때면 언니 짐 속에는 항상 미용 도구를 챙겨 다닌다고 했다. 내가 아는 분이 평생교육원에서 미용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따서 퇴직을 하고 머리를 깎아주고 다닌다고 아는 체를 했더니,

"요즘은 어린아이들도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깎아달라고 안 해."라며 초보 미용사에게는 머리를 맡기지 않는다고 왕언니는 미용 기술을 은근히 뽐냈다.


왕언니는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매일 아침 단원들을 위해 기도를 했다. 왕언니는 1억 기부 단체 모임인 '아너쏘사이어티'에 속해 있다. 2023년부터 5년 동안 작정하여 매년 2천만 원씩 기부하고 있다. 현재 3년째 기부하고 있으며, 2027년이 되면 1억을 모두 기부할 수 있다고 한다. 미용실을 그만둔 후라서 빠듯한 생활비에서 매달 1백만 원씩을 저축하고, 보너스가 생기는 달에는 조금 더 모으면 연간 2천만 원을 채울 수 있다고 했다.


나도 평생을 직장 생활하면서 바쁘게 살아왔다.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 타인을 위한 봉사활동은 생각도 못했다. 정년을 하고 나니 시간 여유가 생겼고, 해외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왕언니는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바쁜 와중에도 평생토록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온 것이다.


왕언니는 에티오피아 선교 봉사를 2번이나 다녀왔다. 에티오피아는 캄보디아보다 환경이 훨씬 더 열악하다고 했다. 아프리카 현지인의 집을 방문하여 같이 잠을 자기도 했는데, 작은 움막 안에서 온 가족이 모여 생활하는 모습은 정말 안타까웠다고 했다. 현재 왕언니는 기도 제목으로 남편과 아들도 1억을 기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바탐방 오지 학교에서 왕언니의 미용 기술은 인기 절정이었다. 운동장 한편에 의자 하나 달랑 놓고 임시 이발소가 차려졌다. 이발소 앞에는 순식간에 아이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였다. 손님은 주로 남자아이들이었다. 여자 아이들은 긴 머리를 묶고 다니면서 자르기를 원하지 않았다. 왕언니는 쉬지 않고 이발소에서 7-8명의 아이들의 머리를 깎다 보니 하교 시간이 다 되었다. 안타깝게도 두세 명의 아이는 줄을 섰지만 머리를 깍지 못했다. 한 아이는 학교에서 집까지 두 시간이 넘는 먼 곳이라 아빠가 오토바이로 태워다 준다. 그날도 아빠가 하교 시간에 맞추어 데리러 왔기 때문에 머리를 깍지 못했다. 왕언니는 다음날 아침 일찍 오면 깎아주겠다고 약속하고 아이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 간이 이발소는 차려졌고, 어제 그 아이는 깔끔하게 머리를 깎을 수 있었다. 밝게 웃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며 우리 모두는 미용실 언니의 기술을 부러워했다.


왕언니는 나랑 같은 조여서 왕언니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왕언니의 보살님 미소와 오렌지빛 미용실 앞치마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눔과 기부를 실천하는 왕언니와 가까이 지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세 번째 이야기- 밥 해주는 자원봉사 센터장


센터장은 두 번째로 캄보디아 해외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작년 봉사활동을 생각하면 밥 만하다 온 것 같아."

주부들이라서 밥을 많이 했나 보다고 생각했다. 도착한 첫날 아침은 우리 조가 오므라이스를 하는 날이다. 잠들기 전에 센터장은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했다.

밤늦게 프놈펜 공항에 도착하여 숙소에 도착하니 열두 시가 다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숙소는 강당에다 침낭 12개가 깔려 있었다. 그런데도 아침밥 준비를 하려면 잠을 자 둬야 했다.

"다섯 시에 일어나면 되겠지."

센터장에게 물었더니,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할 거야."라고 말했다.

잠자리가 바뀌어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아 뒤척이다가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옆에서 자고 있는 센터장과 눈이 마주쳤다. 좀 더 자자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새벽 4시였다. 한 시간은 더 자야 한다. 그런데 센터장은 조용히 일어나 잠자리를 정리하고 부엌으로 나갔다. 나도 서둘러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다른 조의 주부들도 하나 둘 일어나 부엌으로 나왔다. 한 개밖에 없는 가스불 위에다 프라이팬을 놓고 이십여 개가 넘는 계란 지단을 부치는데 땀이 줄줄 흘렀다. 센터장과 함께 준비한 노란 계란 지단 위에 빨간 케첩으로 하트모양을 장식한 오므라이스를 맛있게 먹었다.


센터장은 아침 식사조와 무관하게 봉사활동 기간 내내 제일 먼저 일어나 밥을 했다. 아침밥은 주로 대원들을 위한 상차림이어서 간단하다. 점심식사는 현지인과 대원들이 같이 밥을 먹기 때문에 백여 명 분을 준비해야 한다. 메뉴는 삼겹살 굽기, 김밥 만들기, 주먹밥 만들기, 잡채 등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점심 식사 준비에도 센터장이 중심이 되어 땀을 흘리며 밥을 했다.


삼겹살을 먹는 점심에는 천막을 쳐서 만든 임시 야외 식당에서 다섯 대의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고기를 구웠다. 화력이 좋지 않아 고기가 빨리 익지 않았다.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줄을 서니, 고기 굽는 손이 더 빨라지고 땀도 더 많이 흘렀다.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게 고기를 넉넉하게 주고, 더 먹고 싶은 아이들에게는 두세 번씩 고기를 더 줬다. 야외에서 먹는 삼겹살은 최고로 맛있었다. 고기 굽는 센터장과 대원들의 땀방울과 노고가 있었기에 더욱 맛있는 점심이었다.


식사 후에 수돗물을 콸콸 틀고 설거지를 했더니 깜짝 놀라며,

"여기서는 물을 아껴야 해. 물을 받아서 두세 번 사용하고, 마지막에 흐르는 물로 씻으면 돼."라며 현지 사정을 알려준다. 신혼 시절에 수도꼭지를 콸콸 틀어 놓고 설거지를 하는 나에게 수도꼭지를 반으로 잠그고 물을 아껴 설거지하라던 시어머님이 생각난다고 했더니,

"캄보디아가 한국의 삼십 년 전의 상황보다 더 열악해."라며 안타까워했다.


바탐방의 오지 초등학교는 익산시 자원봉사센터와 협약식을 맺었다. '온벚 초등학교'라는 명패를 걸어주고 현판 입관식을 하였다. 현지 교장선생님과 센터장이 나란히 서서 협약식을 개최하는 데 감동이었다. 센터장이지만 몸소 모범을 보이고, 최고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센터장이 자랑스러웠다. 또한 대원들의 건강한 식사를 위해 매일 아침밥을 해 준 센터장과 함께여서 행복했다.





캄보디아 해외 봉사활동에 참여한 대원들 모두 각자 담당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였기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세 가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사차원의 아지, 이발사 왕언니, 밥 해주는 센터장을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무엇보다도 젊은 대학생들, 일반인 지원자들, 자원봉사 센터 직원들과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여 나눔을 실천한 것에 감사드린다.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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