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는 쉬운 책만 읽혀야 한다는 편견, 혹시 갖고 계신가요?
자폐 진단 초기 때는 더더욱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말도 못 하는데 힘들게 말을 많이 하고 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지성 작가님의 <내 아이를 위한 칼 비테 교육법>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칼 비테는 독일의 유명한 학자이자 교수입니다.
그에게는 발달이 느린 아들이 있었는데 칼 비테는 아이의 현재 수준과는 상관없이 아기 때부터 고전을 읽어주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고전 원본의 언어가 라틴어면 라틴어로, 그리스어면 그리스어로 읽어줬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자연을 많이 접하는 등 교육에 힘을 써서 결국 그 아들은 9세에 6개 국어를 하고 13세에 박사 학위를 땄다고 합니다.
또한 홈스쿨링으로 아이 셋을 대학 보내신 드림스드림의 임채종 이사장님이란 분과 단체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글을 읽기 시작한 나이부터 성경을 그것도 그림이 많고 글씨가 적은 성경이 아닌, 어른 성경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매일 읽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게 될 일인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지레짐작하지 말고 한번 시도나 해보자 싶어서 저희 아이를 붙잡고 시작했습니다.
저도 고전은 그다지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자신은 없었고 성경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냥 무작정 성경의 첫 페이지인 창세기부터 펼쳤습니다.
그리고는 우선 처음에는 아이를 옆에 앉히고 제가 읽었습니다. 작은 글씨의 글들을 엄마 따라 읽어가는 것이 어린아이로서는 쉬운 일은 아니죠. 엉덩이가 들썩들썩거리고 딴청을 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단호하게도 하다가 결국 포기하지 않는 엄마에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는 처음엔 글보다는 숫자에 더 관심을 붙였습니다. 성경에는 장과 절로 구분이 되는데 아이는 성경을 펼칠 때 첫 1장부터 우리가 읽어야 할 장까지 숫자를 세어가면서 한 페이지씩 넘겼습니다. 그거라도 어디냐 싶어서 '창세기는 몇 장까지 있어?' 등의 숫자 위주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글도 저 혼자 100% 다 읽었던 것을 조금씩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에는 '아브라함', '모세' 등 이름이 나올 때만 읽게 하다가 조금씩 더 길게 읽게 해서 지금은 한 절씩 나눠서 읽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한 장씩 읽는 것 이외에도 필사도 한 페이지씩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개발세발 쓰고 빈칸에는 숫자로 채우는 등 딴짓을 했지만 지금은 곧잘 쓰고 있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성경 암송이 나오면 '저거 내가 썼던 거야'라고 아는 척도 합니다.
물론 아이가 보고 쓰는 내용을 이해할 거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사실 성경은 어른들이 봐도 어렵지요.
당장의 효과가 아닌,
미래만 생각하며 합니다.
아직도 또래 친구들 대비 언어적으로 많이 뒤처져 있지만
매일매일의 물방울이 바위를 깰 거라는 믿음으로.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특히 아이의 발달이 느리다는 이유로,
내가 먼저 아이를 좁은 틀에 가두고 싶지 않습니다.
결국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해도 후회는 안 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저는 땅이 아닌, 하늘을 보며 갑니다.
아이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좋은 책을 읽어주는 것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그 씨앗은 언젠가 꽃을 피울 것이다.
- 칼 비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