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폐 판정을 받으면서 괴로운 시간도 인내해야만 했지만
되돌이켜보니 좋은 변화를 이끌어낸 것도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자녀 교육관입니다.
요즘처럼 '아이 존중'이라는 키워드가 많이 떠오르는 시대에 저 역시도 딱히 저의 주관이 없이 흐름대로 따라갔을 것 같습니다.
자폐 판정 후 여러 가지 교육관에 대한 책이나 자폐 치료 특히 ABA를 경험하면서
자폐 여부와 상관없이 자녀 교육의 목적과 자세에 대해서 많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와 같은 부모가 아닌,
이 아이가 스스로 서게끔 도와주는...
설령 그것이 엄할지라도 책임을 지는 부모가 되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손흥민 아버님 등 여러 롤모델들을 보다가
아주 어릴 적에만 접해서 흐릿한 기억 속에 있는 헬렌 켈러의 설리반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6세의 헬렌을 만났을 때는 시각과 청각 장애로 인해 세상과 단절되었습니다. 이에 소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심한 탠트럼도 모조리 받아주던 부모로부터 아예 격리를 시켜 본인의 말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집요한 훈련에 몰입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물" 사건이 있죠. 설리번은 헬렌의 손에 물을 흐르게 하며 "w-a-t-e-r"를 손바닥에 반복해 썼고, 마침내 헬렌이 단어가 사물을 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헬렌은 30개 단어를 배웠고, 이후 학습 속도가 빨라졌다고 합니다. 또 다른 예는 일상 속 반복이다. 설리번은 "인형(d-o-l-l)"이나 "컵(c-u-p)" 같은 단어를 헬렌이 물건을 만질 때마다 손에 써주며 수십 번 반복했고, 헬렌이 이해 없이 따라 하다가 점차 의미를 파악하게 했습니다.
설리번은 헬렌의 저항도 극복했습니다. 헬렌이 처음엔 난폭해 음식을 손으로 집었지만, 설리번은 2주간 가족과 떨어뜨려 규칙적인 식사와 구조를 가르쳤고, 헬렌은 숟가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적 보상도 중요했습니다. 헬렌이 옷을 접는 법을 배웠을 때 설리번은 포옹과 미소로 기쁨을 나누며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헬렌은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 강연자로 활동했습니다.
앤 설리번은 그렇게 약 50년간 헬렌 켈러의 삶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사실 설리번 선생님이 그렇게 헌신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본인 스스로도 어린 시절 시력을 거의 잃을 뻔했던 끔찍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다녔던 맹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을 직접 관찰하고 경험하면서 그녀만의 교육관이 뿌리내렸을 것입니다.
이렇게 설리번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치 ABA 창시자 같기도 합니다. ABA와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는 없지만 기본적인 철학과 방법론은 유사한 것이 많지요.
요즘처럼 우리 사회에 위계질서가 많이 무너진 건
어쩌면 교육 현장에서 권위가 떨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든, 가정에서든.
계속 공부하고 먼저 꿈꾸는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기댈 수 있지만 만만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혹독해지겠습니다.
아이보다 먼저 저에게.
내일,
저와 하선이와의 연재를 마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