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왜 이렇게 속이 병들어 있지?' 요 근래 글을 자주 쓰게 되면서 깨달은, 나의 내면이다.
정말로 그렇다. 회상해 보면, 여태 비뚤어진 채로 사물과 사람을 관찰해 왔다. 옛날부터 장점보단 단점을 강박적으로 캐서, 득달같이 물어뜯으려 했다. 머리가 굵어진 지금은 그러진 않지만, 불만이 있으면 묵혀뒀다가 글에 탈탈 털어놓는다.
최근 글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장 등을 애용하는데, 가끔 메모장을 켜서 읽어보면 글에 분노가 가득하다. 핸드폰 보느라 비키지도 않는 행인부터, 흡연 부스 밖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 아무렇게나 붙은 포스터까지... 하루에 한 번 꼴로 불만이 쌓인다.
오늘도 그랬다. 유쾌하고 행복한 척하는 인간들이 유달리 싫은 날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목표는 행복이라고 떠벌리면서, 그러는 것들은 정작 그걸 위한 환경은 만들려 들지 않는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어떠한 장치도 넣지 않았으면서 행복을 추구하라니. 무책임하다.
본인은 즐거운 수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하루하루 부담감만 가득한데 뭐가 재미있단 말인가. 경험으로 얻은 성공이 곧 행복이라는 말, 부탁이니까 제발 내 그릇에 뿌리지 마라. 밥맛 떨어지니까. 성공을 잡지 못했지만 나는 매일 고통스러운 삶의 틈새에서 작은 행복을 찾고 있다. 그러니까, 성공하면 정말 행복한지는 내가 쟁취하고 나서 결정한다.
꾸준히 증오하는 대상이 존재하기는 하나, 필자는 이처럼 매일 거슬리는 상대를 째려본다. 하지만 그 시선은 나 자신 또한 갉아먹는다. 해로운 행위인 걸 알지만, 그러나 성정 때문인가, 환경의 탓인가.
세상에 불만을 품고 깎아내리는 삶이 철학이 된 오늘이다. 비단 나 혼자 그리 되어버린 건 아니다. 못난 세상은 그리 하도록 강요한다. 노력을 업신여기며 남을 비웃고 희생시키기 급급한 사회, 쓸데없는 감성 노래 깔고 어쭙잖게 위로하려 드는 또 다른 풍경. 둘 다 냉소를 불러일으킨다. 순수한 악의와 모자란 선의, 둘 다 흔한 지금의 한국. 나에게 있어, 어느 쪽이든 지겹고 숨 막힌다.
그럼에도 나 자신이 넘치도록 예민하게 세상을 힐난하는 게 아닌지 드는 의구심, 어쩔 수 없는 생리다. 가끔 에세이로 울분을 표출하며 풍족함에 닿는 필자를 보면, 누구라도 그리 여기지 않겠는가. 눈을 뜨니 하루아침에 희망찬 사회가 열린다면, 나는 그때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봄날의 맑은 햇빛이 내리쬐는 도로 위에서, 습관적으로 메모장에 어두운 감정을 끄적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두 속에 병 하나씩은 앓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사는 게 워낙 팍팍하니, 자연스레 서로를 각박하게 대하는 풍경이 낯설지만은 않다. 하지만 다들 나름 분노가 익숙해진 듯, 평범해 보인다.
나는 평범한 겉, 그리고 화난 속을 품고 그들 속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