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어디로
‘삐리릭- 철컥‘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방 안에 돌아왔다. 방에 들어가면 언제나 피로가 몸을 쑤신다. 연약한 사람의 몸으로는 사회가 너무나도 험난하니, 걸어만 다녀도 피곤하다. 챙겨야 할 것, 나를 억누르는 것과 매일같이 싸우는 삶. 항상 이기면 좋겠지만, 승패병가지상사라는 말이 괜히 있겠나. 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침대로 도망친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털썩. 나른함이 온몸으로 퍼진다. 힘겨운 날로부터 도망쳐와 눕는 침대, 그 품 안에서 나는 내일을 상상한다. 무기력한 무드가 극에 달할 때는 그저 허투루 넘겨버리고 마는 시간일 뿐이지만, 현재는 조금 다르다. ‘내일도 제대로 살아볼까?’
‘퍼질러져 살 거 같은 놈이 웬 말?’ 신기해할 독자들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가? 평소에 눅눅한 글만 계속 쓰니까… 하지만, 오해 마시길. 염세와 낙관, 나는 그 모두를 맛봤다. 따지자면 염세가 내 근본이긴 해도, 최근에는 적절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기본적인 나의 바탕은 허무에 가깝지만, 긍정적인 감정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에 가깝다. 언제 나쁘게 돌아가도 그러려니 하는 성정이니, 누구보다 냉소적인 성격일지도 모른다. 다행일지, 요즈음엔 일이 꽤 착착 풀려서, 바쁘지만 들뜬 삶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항상 이렇게 살고 싶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일도 막힘없이 잘 풀리고, 행복한 내일만 바라보면서. 그렇게만 된다면 이런 패배주의에 찌든 연재 따위는 관둬도 되겠지. 설득력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도 암울한 글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 평화와 사랑만 외치고 다니고 싶다. 정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의자에 앉아 있어도, 심지어 강의실에 앉아 글 내용을 고민하는 지금마저도, 내 손가락에서는 우울한 이야기만 나오네.
쓰는 건 손가락이지만 생각은 머리에서 나온다. 그리고 생각의 뿌리는 눈으로 들어온다. 손가락에서 눈으로, 나는 어디를 응시하고 있을까.
채 마르지 않은 옷깃의 감촉, 비 내음과 동시에 들어오는 창 밖의 가로수. 늘 파릇파릇하나,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비록 지금 비가 오고 구름이 껴서 어둑어둑하긴 하지만, 차라리 대놓고 어두운 편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 사회가 이토록 흐릿하게 보인다면, 그 까닭은 아마도 세상 속에 있지 않을 것이다. 마침 노트북 화면으로, 여러 소식이 쏟아진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청년들을 착취하려 들고, 사람들은 서로 트집 잡아서 욕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 와중에 긁어모으려는 인간까지 골고루 있지. 오래간만에 다양한 이슈가 들려오네 했더니, 하루가 파다하고 이까짓 이야기만 나온다. 예전이 더 좋았던 거구나. 2달 전도 무지막지하게 깜깜했는데, 지금이 더 팍팍하네. 손쓸 새도 없이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니. 네이버 창을 꺼버리고, 다시 저편의 가로수를 쳐다본다.
다시금 허무감이 몸을 차지한다.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까? 국민의 한 명으로서 투표권을 손에 쥐었는데, 이걸 행사한다고 해서 세상이 더 밝아질 수 있을까? 그렇다고 신경 끄고 살면, 저들은 얼마나 내 영역을 갉아먹을까? 저 가로수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다.
정치와 사회에 관심을 끊고 살기에는, 그들이 내 인생을 너무 많이 위협한다. 내가 끌어안고 싶은 취미를 짓밟고, 내가 누릴 권리를 앗아간다. 그럼에도 손가락 빨며 봐야 한다니. 내 미래가 남의 손에 팔려 나가는 꼴은 비참하기만 하다. 모두가 그 돈으로 한 탕 하면, 내 미래는 도대체 어디에 있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그냥 부딪혀 보겠는데, 희미하게나마 보이니까 오히려 절망적이다. 내일은 희망차지만, 미래가 두렵다.
ㅈ같은 미래가 기다린다.
아
이번엔 어디로 도망치지.
난 지금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그냥... 버텨야 하나.
언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