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희망을 버려라'
어제와 오늘, 나는 용인을 떠나 타지로 향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옥에 발을 내딛는다. 모험은 즐기지 않는 타입인데도.
대학생이 되어 경기도에 상경한 이후로 끊임없이 그래왔다. 경기도는 고향과 달리 어디 다니기가 참 간편하다. 정류장에서 손 놓고 기다리다 보면 차가 도착한다. 아무리 길어봐야 20분 안에 온다. 진짜 친절하게도, 대부분의 정류장에는 의자와 알림판까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마치 삼도천 건너기 전, 입 속에 넣어 둔 노잣돈 같다고 해야 할까?
처음부터 지옥 같았다는, 괴상하고도 어린 소리는 하지 않겠다. 한동안 좋았다는 사실은 인정하겠다는 말이다. 부모님의 차, 아니면 두 발로 거닐어야 했던 거리를 남의 차로 다니는 건 편리하다. 속도 편하고, 몸도 편하다.
용인시 수지구 전체를 활달하게 꿰고 다닐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내 세상 안에서만 박혀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 어둠에 발을 담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촌동네에서 걸어 다닌 기억 탓인지 처음에는 마치 천국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주위를 둘러보기 전에는, 정말이다.
내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수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는 걸 알아챈 순간부터, 천국은 지옥으로 변한다. 차 안이 이렇게 복잡했나? 내가 화물이 되어 버리다니! 뒤 사람이 내 가방에 손대지는 않을까? 왜 저 사람은 나를 밀치고 새치기하려 들지?
풍요로운 천국과도 같은 공간이 사실은 인간의 손에 더럽혀진, 모순된 장소임을 알아챈다면, 그걸 과연 천국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끄는 이는 유일신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은 전혀 선하지 않다. 모두 나와 같은 인간이며, 감정에 의해 뒤바뀌는 자들이다.
나는 왜 항상 불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까. 모험심이 충만한 성격도 아닌데 말이다. 그것은 필연적인 강제성에 가깝다. 뒤에 서있는 대기열에 떠밀려 억지로 문턱에 발을 내딛는다. 그 줄은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탄탄한 인프라와 편의를 누리기 위해 좁디좁은 땅덩어리에 모인 투명 인간들, 그들이 나를 지옥으로 내몬다.
그리하여 나는 <신곡>의 단테처럼, 두려움이 그득한 지옥에 희망을 버리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굴 탓하겠는가. 나 역시 누군가를 재촉하는 악한 인간인 것을.
나는 지옥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가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야 한다. 무고한 삶을 위해서는 당연하다. 잠깐, 무고한 삶이라니? 지옥은 으레 생전에 잘못한 사람들이 가는 장소 아니던가? 이런, 잘못한 게 없음에도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니. 나는 참 불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니, 말만 산 거지 이미 죽은 건가?
지옥은 죽어야지 갈 수 있는 곳인데, 나는 왜 매일 지옥에 올라타고 있는 거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고향에 다다름과 동시에 혼돈에서 빠져나오니, 오히려 상쾌하다. 동시에, 언젠가 다시 엮이게 되리라는 사실에 막막하다.
“엄마도 지하철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거기는 얼마나 편할까?”
“엄마, 그런데 거긴 진짜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