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언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주를 방문했을 때, 다양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사는 여러 언니들을 만났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준비해 주신 체험들을 했다.
그중에서도 막걸리를 만드는 와산 언니를 만났던 날, 막걸리를 이용하여 제주의 전통빵인 상외빵을 만들어 먹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빵으로 샌드위치까지 만들어 먹는 것이 그날의 계획이었다. 사실 술빵의 맛을 모르는 게 아니니 만드는 동안에도 맛에는 큰 기대가 없었다. 그러나 완성된 샌드위치를 먹어보니 왠 걸, 너무 맛있다! 따끈하고 폭신한 빵이 속재료들과 잘 어우러져 너도나도 하나씩 더 먹겠다고 나섰다. 결국 준비해 주신 속재료까지 싹 비우고 왔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육지로 돌아온 후에도 종종 그날 먹었던 상외빵 샌드위치가 생각났다. 몇 날 며칠을 앓다가 내가 그대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상외빵 레시피는 그날 주셨었고, 머스터드소스와 치즈, 햄 등은 사면되는데 문제는 마지막 재료, 그게 바로 당근 라페였다. 사실 그날 당근 라페의 존재를 처음 알았는데 충격적일 만큼 맛있었다. 제주의 당근이어서 더 그랬겠지만 당근에서 이렇게 달콤하고 상큼한 맛을 느낄 수 있다니. 결국 그날 당근 라페를 준비해 줬던 와산 언니에게 다시 연락하여 레시피를 물었다.
"당근을 채 썰어서 소금에 절였다 꼭 짜고, 올리브유, 꿀, 홀그레인 머스터드, 레몬즙을 넣었는데 계량은 딱히 안 하고 그냥 맛보면서 넣었어요."
그렇지, 고수는 계량하지 않는 법이지. 결국 이 두께로 이렇게 채 썰면 먹기가 좋은지, 다른 재료들은 이 정도 넣으면 달콤 상큼한지 가늠해 보며 첫 당근 라페를 완성했다. 그리고 몇 번의 실패 끝에 상외빵도 만들어 내 나름의 상외빵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그 이후로 상외빵 샌드위치를 다시 만들어 먹을 여유는 없었지만 당근을 수확하는 계절이면 라페는 꾸준히 만들어 먹어왔다. 덕분에 고정된 나의 레시피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오랜만에 먹고 싶어 시장에서 사 온 술빵 위에 당근 라페를 얹어 먹었더니 잠시 잊고 있었던 제주에서의 그날이 생각났다. 우연히 술빵을 사 온 날 당근라페도 만들었을 뿐인데 같이 먹고 나서야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술빵 위에 당근 라페. 얼핏 들어서는 무슨 맛일까 싶지만 이 낯선 조합이 어느새 우리 가족의 최애 메뉴로 등극해 버렸다.
재료
- 당근 (약 500g)
- 굵은소금 1T
- 올리브유 3T
- 꿀 2T
- 레몬즙 2T
- 머스터드 2T
만들기
1. 당근을 가늘게 채 썬다.
2. 소금을 넣고 잘 섞어 20분 절인다.
3. 면포에 싸서 물기를 꼭 짠다.
4. 분량의 재료를 넣고 손으로 조물조물 무친다.
5. 통에 담아 최소 반나절 이상 냉장고에서 숙성시킨다.
Tip
1. 크기가 좀 큰 당근을 사용해야 채칼 사용 시 손 다칠 위험도 줄고, 길이도 길어져 보기에도 좋다.
2. 굵은소금 대신 가는소금을 사용할 시, 소금양을 줄여도 된다.
3. 차게 먹어야 맛있으므로 꼭 냉장고에서 숙성시키는 시간을 갖는다.
4. 빵 위에 얹어서 오픈샌드위치로 먹기도 하고 달걀지단과 함께 말아 키토김밥을 만들기도 한다.
5. 피자나 파스타를 먹을 때 피클 대용으로 먹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