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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또 농사덕후가 되는 건가?

by 헤아림


솔직히 내가 농사를 거들기로 한 데에는 엄청난 계기나 결심 같은 게 있던 건 아니었다.


농학과 졸업을 코앞에 두고 원래 전공이었던 공예와 농사를 더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한 우물만 파야 성공을 한다는데 하나만 취하기에는 내가 둘 다 너무 사랑했다. 문제는 접점이 없는 이 둘을 어떻게 엮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다 우연히 인스타그램 광고를 만났다. (가끔은 무섭고 귀찮게 여기던 알고리즘이 이럴 땐 참 고맙기까지 하다.)




시골언니 프로젝트.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최하는 청년 여성의 귀농과 귀촌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전국의 시골(비수도권 지역)에서 먼저 자리 잡고 있는 언니들(이 안에서 "언니"라는 말은 나이와 상관없이 나보다 먼저 경험하고 있는 여성 선배를 칭하는 말이었다.)이 본인과 주변 친구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실제 그 지역으로 이주했을 때 그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기 위해 나섰다.


내가 참여했던 2023년에는 고르기도 힘들 만큼 매우 많은 지역에서 참여자를 모집했었다. 최대 2개 지역에 참여할 수 있었기에 나는 엄청난 고민 끝에 당진과 제주 두 곳을 신청했다. 당진에는 꽃을 키우는 언니들이 있었고, 제주에는 토종 씨앗을 지켜내고 있는 언니가 있기 때문이었다.




당진에서의 하루는 원하는 농가를 선택해서 농부님들의 일을 도왔다. 나는 농약 없이 꽃을 키우고 있는 <꽃양꽃색> 언니들의 농장에 지원했다. 드디어 농학과에 지원할 때부터 꿈꿨던 화훼 농장의 일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모든 농사가 그렇지만 예쁘고 향기로운 꽃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쁘고 향기롭지만은 않았다.


농장 일이 끝나고 신발에 흙과 지푸라기가 덕지덕지 붙었다.


예년보다 더웠던 9월의 어느 날, 사방이 꽉 막힌 비닐하우스 안에서 키가 나만큼 큰 백일홍의 뿌리를 뽑고 정리하는 것만으로 이미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농장 바닥이 질어서 신발도 온통 진흙투성이었다.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 말 그대로 무거워진 발을 끌고 그다음 받은 일은 봄에 수확할 프리지어 구근을 심는 일이었다. 마카다미아 같이 작고 귀여운 프리지어 구근을 각자 상자에 나눠 담고 한 줄에 4~5개씩 심었다. 계속 쪼그려 앉아 심다 보니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힘들면서도 이 안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어난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마카다미아 같은 프리지어 구근을 심고 있는 모습


사실 언니들의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직접 먹는 것도 아니고 꽃을 농약 없이 키우는 게 뭐가 좋을까 싶었다. 더 품이 많이 들 텐데 귀찮고 성가신 일을 하고 계신 거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마음껏 만지고 향기를 맡아도 무해하다는 얘기에 그제야 "아하!" 남들이 보기에 귀찮고 성가신 일을 굳이 하는 데에는 늘 보이는 것보다 넓고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제주에서 <씨앗바람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언니는 우리나라 토종 씨앗을 지키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짓고, 그렇게 수확한 씨앗을 나누고 있었다.


제주 여성 농민들의 우영팟과 그 안의 우리들


제주 여성 농민들의 우영팟(텃밭)에 수눌음(품앗이)을 하러 갔다.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눠서 각각 다른 일을 했는데 나에게 주어진 건 검질을 매는(잡초를 뽑는) 일이었다. 일이 힘든 건 아니었지만 배추 모종도 아주 작은 상태라 잡초와 구분하는 게 어려웠다. 게다가 중간중간 날아들어 자리 잡은 이름 모를 작물들은 또 뽑지 않고 남겨둬야 했다. 그렇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배추와 그 외 작물, 잡초를 확하게 구분하고 그중에서 잡초만 쏙쏙 골라 뽑아내는 일이었다. "잡초를 뽑는" 건 고작 1초 남짓한 순간이었지만 그걸 구분해 내야 하는 머리가 훨씬 복잡했다. 그렇게 한참을 각자의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자 한 곳에 모였다. 잠깐이었지만 땀 흘려 일하고 나서 동그랗게 모여 앉아 들밥(빈 밭에 돗자리를 펴고 바닥에 앉아서 먹는 밥)을 먹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룸메이트가 눈물이 날 만큼 좋았다고 표현했던 들밥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대형 종자 회사에서 판매하는 씨앗을 구입하여 사용한다. 그 씨앗들은 수확량이 많게 또는 병충해에 강하게 개량된 씨앗들이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는 농민들이 계속해서 씨앗을 구매하고 사용하도록 한 번 기르고 수확한 씨앗에서 똑같은 형질이 나올 수 없도록, 혹은 아예 발아할 수 없도록 한다. 토종 씨앗은 몇 번을 수확하고 다시 심어도 계속 같은 작물을 수확할 수 있기에 매번 씨앗을 살 필요가 없다. 하지만 농민들도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매번 업데이트되는, 그래서 애써서 키운 농작물의 판매가 더 수월한 작물의 씨앗을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소수 작물의 품종만이 남고 나머지는 사라진다.


19세기 아일랜드의 대기근은 한 가지 품종의 감자만을 심은 것에서 시작했다. 가장 수확량이 많기 때문이었다. 이는 많은 양의 식량을 수확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병충해가 돌면 전부 피해를 입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수확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일랜드에서도 감자 잎마름병이 삽시간에 번졌고, 이는 곧 그들의 주식인 감자의 흉작으로 이어졌다. 인구의 100만 명 이상을 굶어 죽게 했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미국 등의 해외로 이주해야 했다. 생명다양성을 지킨다는 것은 그저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결국은 우리의 생사가 달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토종 씨앗을 지킨다는 것은 바로 이 생명 다양성을 지키는 일이었다.




당진과 제주에서의 시간은 농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더 가까이서 만나는 경험이었다. 과정에서 단순히 농사를 짓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지켜내야 할 신념을 만났다. 그들이 돌보고 있는 어린이를 생각하며 친환경 꽃 농사를 짓는 일, 토종 씨앗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심고 수확하며 이를 나누는 일. 그들을 만나면서 나도 농사를 통해 무언가 지켜내고 싶어졌다. 아직은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렵지만 해나가다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나는 또 농사덕후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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