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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혹시 풀수저 일지도?

내 곁에는 언제나 식물이 있었다.

by 헤아림


어린이날, 친구 중 한 명이 단체방에 본인 어릴 적 사진을 올렸다. 그러자 하나둘씩 각자의 어린 시절 사진을 찾아 나섰고 나도 클라우드를 뒤져 예전에 저장해 두었던 내 어릴 적 사진을 찾아내었다. 라떼는 디지털카메라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앨범 속 사진을 다시 휴대폰으로 찍어 저장해 둔 사진이었다.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그 사진을 찾아내어 다시 봤을 때, 나는 문득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매우 놀랐다. 그동안 '아이고, 작고 귀여웠던 어린 시절의 나.' 하며 봐왔던 사진 뒤에 지금 내가 키우고 있는 커다란 열대 식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진을 보니 그 사진 뒤에는 예쁘게 꽃을 피운 철쭉 화분이 있었다.


전에 이 사진을 볼 때는 내 모습 밖에 안 보였는데 이제는 저 뒤 커다란 잎의 셀렘부터 보인다.


철쭉색 바지를 입은 내 옆에 활짝 핀 철쭉 화분이 있다.


그제야 내 곁에는 언제나 식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정할 수 없는 식덕(식물덕후)이 되어 지금의 우리 집은 갖가지 식물들로 가득 차 있지만 어릴 때부터 쭉 내 옆에 식물이 있어 왔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늘 옆에 있지만 돌보는 주체가 내가 아니다 보니 그저 존재하는 정물처럼 대해왔던 거였다.


가만히 생각하면 엄마와 같이 다니면 엄마는 늘 퀴즈를 내고는 하셨다. 운전을 하면서 지나가는 길에 가로수를 보면서도 "저건 무슨 나무게?", 산을 같이 오르면 "이건 무슨 풀이게?", 해외여행을 가서 새로운 꽃을 만나도 "이건 무슨 꽃이게?" 이런 질문들은 일상처럼 이어졌고 나도 그 이름을 기억해 두려 애썼다. 다음번에 엄마가 같은 식물을 보고 또 퀴즈를 내서 못 맞추면 서운하고 맞추면 그게 그렇게 기뻤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져 "엄마는 왜 내가 어릴 때부터 가는 곳마다 식물 이름을 알려줬어? 내가 엄마랑 같이 좋아하기를 바랐어? 아니면 나이가 들면 다들 식물을 좋아하게 되니까 그럴 줄 알고 미리부터 알려준 건가?"라고 듣고 싶은 대답을 몽땅 넣어 묻는 말에 "그냥 엄마가 좋아하니까."


이쯤이면 식물을 향한 나의 사랑은 유전적인 건지, 환경적인 건지, 아니면 조금은 세뇌적인 건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셋 다여야 농사를 지어보겠다 마음먹은 나의 결심이 이해가 된다. 공예와 디자인을 전공한 내가, 이후로도 무언가 만드는 일을 계속해 온 내가 갑자기 농학을 공부하고 농사를 짓겠다고?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다만 늘 화분을 곁에 두고 식물을 키우던 엄마가 공직에서 퇴직하신 후, 이제는 농부가 되어 농사를 지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그렇게 될 일이었구나 싶어 진다.


워낙에 덕후 기질이 있어 한 번 파는 것은 끝까지 파는 편이다. 그러던 나도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이 덕질로 인해서 학위가 생길 줄은 몰랐다. 새로운 공부를 하며 알게 되는 사실이 재미있으면서도 실제로 농사를 짓고 계신 부모님의 실습과 내가 공부한 이론이 맞아떨어질 때 신기했을 뿐, 내가 직접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이 철이면 수확해다 주시는 채소들을 맛있게 먹어왔을 뿐 이것이 나를 버티게 해 준 힘이 되어 줄 줄은 몰랐다.


고구마가 한가득 심어진 밭의 모습


지금까지는 관찰자 1이었던 내가 이제는 농사에 살짝 발을 담가 보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채소가 자라는 과정을 관찰하고, 수확한 채소로 맛있는 요리도 해 먹고, 이 모든 이야기를 공예적으로 풀어내는 나의 일기를 응원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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